“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차베스의 동상이 부수어진다. 막대기로 냄비, 프라이팬을 두드리는 소리가 진동하는 가운데 시위는 국민적 저항 형태로 변모, 확산되고 있다. 사망자는 속출하고 있고.” 베네수엘라의 상황이다.
‘이스라엘 공군 전투기가 베이루트 지역에서 헤즈볼라의 최고위급 군 지휘관이자 전략부대의 수장인 푸아드 슈크르를 제거했다’ 이 같은 이스라엘 군의 공식발표가 나온 지 불과 수 시간 후 또 다른 뉴스가 전해졌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야가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됐다는 거다.
그리고 뒤이어 전해진 것은 서방 국가들과 러시아가 냉전 이후 가장 큰 규모로 수감자들을 맞교환했다는 소식이다.
뉴스가 튄다. 성하(盛夏)의 계절. 폭염이 절정을 향해 치닫고 있던 지난 한 주간에 벌어진 상황이다.
파리의 하늘아래에서 펼쳐지고 있는 올림픽제전. 금빛 뉴스가 연일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지급으로 타전된 이 뉴스들. 각각 별개의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방향성은 한 곳을 향하고 있다.
테러리스트, 암살전문 킬러, 그리고 스파이. 서방측이 맞교환 조건으로 석방한 수감자들이다. 반체제인사, 언론인, 양심수, 러시아 측이 석방한 수감자들이다. 무엇을 말하나. 추구하는 가치관이 상반된다는 사실이다.
서방 자유진영 대 중국-러시아-이란-북한으로 이어지는 권위주의 독재세력 축의 대결, 그 제 2 냉전의 성격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고 할까.
몇 시간 간격으로 베이루트와 테헤란에서 이루어진 헤즈볼라와 하마스 수뇌급 제거. 이 역시 같은 맥락의 사건으로 보인다. 이 중동 버전의 양 진영 대결에서 이스라엘은 조용한 승리를 거두고 있다는 것이 외교 안보 전문지 내셔널 인터레스 등 주요 언론들의 지적이다.
특히 테헤란에서 이루어진 하마스 정치 지도자 하니야 제거가 그렇다. 그가 암살된 곳은 ‘정부위의 정부’로 불리는 이란혁명수비대의 안가(安家-safehouse)다. 그러니까 특별경호를 받는 곳이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곳으로 밀반입 된 폭탄이 터져 하니야는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런 곳이 뚫렸을까. 관련해 한 광경이 떠올려진다. “거리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이란의 딸들과 어머니들. 그리고 몸을 던져 경찰폭력으로부터 그들을 막아주는 젊은 남성들…” 회교혁명정권의 무차별 폭행에 저항해 정권타도를 외치고 나선 시위자들의 민주투쟁. 2년 전 테헤란 거리의 모습이다.
이란의 수도에서, 그것도 혁명수비대 안가에서 정부 VIP로 초청된 하마스의 수장이 암살됐다. 이는 그 자체로 시아파 맹주를 자처하는 이란 혁명정부로서는 일대 망신이다. 이는 그리고 동시에 자유를 갈구하고 있는 민심을 억누르고 있는 그 체제가 얼마나 취약한가를 알려주고 있는 한 단면이기도 하다.
‘이번에는 다르다’- 대선을 통째로 도둑질 당했다. 차비스모의 나라 그 베네수엘라에서 반정부 시위가 한 주 너머 계속 이어져오면서 들려오는 소리다.
발단은 지난달 28일 치러진 대통령선거다. 좌파 포퓰리스트 사회주의자 우고 차베스의 후임으로 정권을 잡은 니콜러스 마두로의 3연임이 걸린 게 이번 선거로 부정선거에, 부정개표 의혹이 속속 드러나면서 반정부 시위는 날로 격화되고 있다.
출구조사 결과 야당 후보가 두 배 이상 표차로 승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선관위는 개표상황도 공개하지 않고 마두로 승리를 선언, 상황은 걷잡을 수 없게 번져가고 있는 것이다.
부정선거가 이번만이 아니다. 그러나 이번 부정선거의 후유증은 여간 심상치 않은 게 아니다. 부정선거도 부정선거지만 26년간 포퓰리스트 좌파 정권의 부정부패로 나라 전체가 결딴나고 있다. 이에 분노의 민심이 폭발해서다.
베네수엘라 버전의 ‘개딸’이라고 할까. 주로 기층민으로 구성된 차비스모(Chavismo - 차베스식 사회주의 복지 정책인 차비즘(Chavism)의 스페인어 표기) 추종세력들조차 총을 들고 나와 시위진압에 나선 마두로 갱단들과 싸우고 있다.
이미 전체 인구의 1/4이 넘는 800만에 가까운 베네수엘라 국민이 차베스에서 마두로로 이어지는 촤파정권의 학정을 피해 해외로 탈출했다. 선거 전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두로가 3기연임에 성공할 경우 해외로 나갈 것이라는 응답을 한 국민은 1/3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뭐랄까. 나라가 와해될 상황을 맞아 절망의 몸부림을 치고 있다고 할까.
이는 무엇을 말하고 있을까. 민주주의냐, 좌파 사회주의냐. 가치관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게 그 한 측면이다. 동시에 ‘자유진영 대 독재세력 축’의 대결이라는 게 또 다른 양상이다. 러시아 용병과 쿠바 고문관까지 시위진압에 나선 가운데 마두로 체제는 러시아, 중국, 쿠바, 이란의 지원으로 그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어서 하는 말이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차비스모의 베네수엘라를 이상향(理想鄕)인 양 찬양하고 또 흠모해 마지않던 문재인을 비롯한 한국의 좌파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
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