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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말라 해리스, 대통령?

2024-07-10 (수)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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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후보 사퇴 여론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2주전 도널드 트럼프와의 첫 TV토론을 처참하게 망친 바이든 대통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능한 주님이 관두라고 한다면 모를까, 나만이 트럼프를 이길 수 있다”며 대선 완주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하지만 계속되는 말실수와 만천하에 드러난 고령리스크를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민주당 지도부는 그가 품위 있게 물러날 수있는 방도를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모으고 있다.

민주당과 바이든 편이었던 뉴욕타임스조차 토론 바로 다음날 사설에서 “나라를 위해 바이든 대통령은 대선에서 사퇴해야한다”고 촉구했고, 엊그제 8일 다시 한 번 사설을 통해 “민주당은 대통령에게 명백한 진실을 말해야한다”며 “시간이 지체될수록 트럼프가 재집권하여 미국의 민주주의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릴 가능성이 커진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바이든 대통령은 4년 전과 확연하게 다른 모습이다. 걸음걸이와 자세가 눈에 띄게 구부정해졌고, 말할 때면 단어들이 뭉개져 명료하게 들리지 않는다. 얼굴에서도 노련한 정치인의 이미지는 간 곳이 없고, 파파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강하게 전해진다. 노인은 하루가 다르다는데, 4년 후 아니 1년이나 2년 후에 그가 어떻게 될지는 전능한 주님만이 알 것이다.


그렇다면 대체후보는 누가 될까? 대선이 4개월밖에 남지 않은 현재로서는 카말라 해리스(59) 부통령이 0순위라는 것이 민주당의 입장이다. 물론 당내 미니 경선을 통해 새로운 후보를 선출하는 방법도 있다. 이 경우 물망에 오르는 인물들은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그레첸 위트머 미시건 주지사, 조시 샤피로 펜실베니아 주지사, 피트 부티지지 교통부 장관,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 등이다. 하지만 경선에 시간과 에너지를 소비하기보다는 검증된 한 사람에게 힘을 몰아주는 것이 트럼프와의 대결에서 승산이 있다는 것이 민주당의 판단이다.

아울러 그동안 바이든-해리스 캠프가 모아들인 선거자금이 2억 달러나 되는데 이 자금을 다른 후보에게 양도하기가 법적으로 어렵다는 점, 또 8월19일 시카고에서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바이든과 해리스가 이미 확보한 대의원들의 유효표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러닝메이트가 후보직을 승계하는 것이 가장 무리 없고 자연스럽다는 것이다.

문제는 해리스가 과연 트럼프 대항마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의구심이다. 우선 그는 여성이고, 흑인(자메이카인 아버지)과 아시안(인도인 어머니) 혈통을 가진 유색인종이다. 아직도 백인남성 우월주의가 판을 치는 미국에서 흑인여성이 대권을 따내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2016년 대선 당시, 완전히 준비된 대통령후보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다들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트럼프에게 패배한 요인도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또 그 이전 8년을 흑인 오바마 대통령이 통치한 데 대한 보수백인들의 극심한 거부감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 문제에 관해 미국은 서방의 거의 모든 나라보다 뒤져있다. 유럽 국가들은 물론이고 얼마 전 멕시코에서도 첫 여성 대통령을 선출했는데 미국은 아직도 그럴 준비가 안 돼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성별과 인종장벽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는 해리스 부통령의 인기가 대단히 저조하다는 사실이다. 처음 러닝메이트로 나섰을 때의 젊고 활기차고 카리스마 넘치는 아우라는 부통령이 되고 난 후 사라져버렸다. 상원의원 시절 ‘청문회스타’로 떠오를 만큼 청문회 때마다 보여주었던 송곳처럼 날카로운 저돌성도 찾아볼 수 없다. 트레이드마크인 박장대소하는 웃음도 이제는 트럼프가 ‘래핑’ 카말라 해리스라고 조롱하는 별명이 되었다. 최초의 여성이자 유색인으로서 역대 어느 부통령보다 많은 주목을 받았던 그녀는 빠른 속도로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물론 부통령이란 자리는 빛이 날 수 없는 자리다. 미국의 초대 부통령이자 2대 대통령을 지낸 존 애덤스가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하찮은 자리”라고 투덜댔을 정도다. 역대 부통령 가운데 존재감을 갖고 직무를 수행했던 사람은 알 고어 한사람뿐, 딕 체니 같은 이는 ‘얼굴마담’ 부시(아들) 덕분에 주어진 권력 이상을 남용한 사례로 꼽힌다.

한편 카말라 해리스의 경우, 지난 4년간 바이든 행정부에서 별다른 존재감이나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가는 어쩌면 공평하지 않다. 그 자신의 역량 부족보다는 바이든 행정부가 그를 키워주지 않았다는 비난도 있기 때문이다. 바이든은 오바마와 8년간 ‘브로맨스’를 유지하며 국제관계 및 외교, 안보 분야에서 많은 영향력을 행사했던 부통령이었다. 그런 그가 왜 자신의 부통령에게는 좀처럼 빛날 기회를 주지 않았는지는 알 수 없다.

해리스에게는 처음부터 국경의 불법이민 문제라는 고난도 과제가 맡겨졌고, 그는 가시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초기의 과도한 기대 탓에 실패가 강조됐을 뿐 그녀는 이후 수년간 조용히 열심히 바이든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보좌하는 역할에 충실했다. 특히 2년전 연방대법원이 낙태권을 뒤집는 판결을 내린 후에는 전국을 돌며 여성들의 자유를 위해 뛰는 캠페인을 전개해왔고, 투표권과 노동문제에서 약자를 대변해왔다. 특히 연방 상원의장으로서 민주공화 양당이 동수를 이룰 때 행사하는 캐스팅보트를 미 역사상 최다인 33회나 사용한 기록을 갖고 있다.

만일 카말라 해리스 부통령이 새로운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그를 응원하고 싶다. 샌프란시스코의 검찰총장,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이었던 시절 그녀는 수많은 범법자를 기소하고 감옥으로 보냈다. 미국의 차기 대통령으로 검사를 택할지, 범죄자를 택할지는 유권자의 몫이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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