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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세습체제의 종말이 오면

2024-06-22 (토) 써니 리 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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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만 명의 아사자를 낸 1990년대 대기근 이래 최악이라는 식량부족사태 속에서 북한의 세습체제가 3대를 끝으로 막을 내릴 전망이다. 전 세계 공산국가들 중 유일하게 세습체제를 유지하며 독재정권을 이어온 북한의 명이 다한 것이다.

그러므로 김정은의 건강 이상설보다 더욱 주목을 받는 것은 과연 누가 차기 권력을 쥘 것인가이다. 권력승계 과정이 순조롭지 못하면 권력투쟁과 쿠데타로 북한은 일대 혼란을 겪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김정일 시대에 김경희는 권력의 2인자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승계구도에서 배제되었다. 김정일이 여러 명의 아들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후계 구도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김정은 사망 시 2인자인 김여정이 전면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이설주가 서둘러 김주애를 등장시킨 것이란 설이 신빙성을 갖는 이유다.


김정은은 권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삼촌 장성택을 숙청했고 한때 권력 승계 1위였던 이복형 김정남을 암살했다. 김여정이 권력을 잡을 경우 화근을 없애기 위해 이설주와 그의 자녀들을 제거하는 것은 북한체제의 특성상 예정된 수순이다. 김정은의 후손들은 멸문지화를 당할 것이고 김여정의 자식이 권력을 승계하며 독재세습을 이어갈 것이다.

김일성은 젊은 시절부터 방탕하고 문란한 생활을 하며 엽기적인 행각을 벌이던 김정일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오히려 성실하고 충성심이 강한데다 자신의 외모를 빼닮은 김평일을 염두에 두었다. 권력 승계의 야망을 가진 김정일은 일찌감치 김평일을 해외로 추방하여 평생 외교관으로 전전하며 북한에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었다.

김일성은 1990년 국가주석에 재 선출되었고 국방위원장에도 재추대되었다. 중국의 성공적인 경제개방에 자극받은 김일성은 북한의 개방의지를 공식 표명하고 외국과의 무역을 허용하며 1993년에는 평화통일을 위한 10대 강령을 발표하였다.

1994년 7월 남북정상회담을 준비하며 김일성은 권력에 복귀하려했다. 비록 1993년에 국방위원장직을 이양 받았지만 권력에서 배제될 것이 두려웠던 김정일은 김일성을 도발했고 응급조치를 하지 않아 사망하게 했다. 공산주의 독재세습을 고수하려던 김정일이 개방정책에 불만을 품었기 때문이다. 만일 김일성이 사망하지 않고 개방정책이 성공했다면 북한은 중국과 함께 경제 강국이 되었을 것이고 통일도 앞당겨졌을 것이다.

만약 북한이 세습체제를 유지하려 한다면 김정은이 급사할 경우 어린 김정은의 자식들보다 파리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김정남의 장남 김한솔이 유력하다. 김여정이나 김주애 같은 여성 지도자의 출현을 거부하는 권위적인 독재세습체제에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제3의 시나리오는 당과 군부에서 권력의 암투과정을 거쳐 제3의 신진세력이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다. 이 경우 김일성 가는 막을 내리고 북한은 왕조국가에서 변형된 사회주의국가로 전환될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의 사회주의 시스템을 롤모델로 개혁과 개방이 전격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김씨 일가의 세습체제에서 인권 탄압과 피비린내 나는 정적 숙청은 물론 수백만 명이 굶어 죽는 대참사를 겪으며 주민 대다수가 갖고 있는 불만을 잠재우는 길이기도 하다.

이 경우 북한은 핵무기의 폐기는 물론 국제사회의 규범을 따르게 될 것이다. 북한에 가해졌던 각종 경제제재가 풀리고 정상적인 외교관계와 무역관계가 형성될 것이다. 극심한 경제난이 해소되는 것은 물론 해외투자를 유치하고 무역특구와 무역항구들을 활성화하여 동북아의 새로운 경제 강국으로 떠오를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은 높아질 것이고 자유와 인권에 기초한 성공한 사회주의 국가로 거듭날 것이다.

북한사회를 변화시킬 새로운 지도자가 출현하여 3대에 걸친 김씨 독재정권을 종식시킨다면 한반도 평화통일의 길도 그만큼 빨라지게 되는 것이다.

<써니 리 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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