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AI, 열악한 투자·인력 환경
▶ 한국, 투자금보다 조달액 적어
▶그마저도 국내자본에 92% 의존
▶정쟁에 밀려 AI법 지지부진
▶인적경쟁 우위에도 처우 뒤처져
▶과감한 지원·고급 인재 필요
한국이 글로벌 인공지능(AI) 시장에서 매력적인 투자처가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여러 지표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은 전체 AI 산업에서 투자한 금액보다 조달한 금액이 더 적었다. 기술 경쟁력의 핵심인 AI 인재 또한 유입보다 유출이 많은 상황이다. AI 산업 발전의 양 날개인 자본과 인재 모두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는 의미다. 투자와 인력 측면에서 경고음이 울린 만큼 기존 전략을 재점검하고 촘촘한 실행 계획을 다시 세울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글로벌 관심 밀린 ‘K-AI’
16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AI 정책관측소의 ‘AI 분야 국가별 벤처캐피털(VC) 투자 흐름’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전체 AI 스타트업 분야에 27억9,800만 달러를 투자했다. 하지만 국내 AI 기업이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서 끌어모은 투자금은 22억1,100만 달러에 그쳤다. 그나마 한국 기업이 조달한 자금 중 92%에 달하는 20억3,500만 달러가 국내 투자였다. AI 관련 산업 전 분야에 걸쳐 미국·중국에서 국내 기업으로 향한 투자금은 각각 6,500만 달러와 4,000만 달러에 그쳤다.
특히 최근 글로벌 투자 경쟁이 불붙고 있는 생성형 AI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은 국내 투자 자금 1억3,400만 달러의 절반 수준인 7,500만 달러만 유치했다.
전 세계 AI 산업에서 선도적 입지를 굳게 다지고 있는 미국은 458억9,600만 달러를 투자하고도 89억 달러나 더 많은 548억3,600만 달러를 유치하면서 흑자를 기록했다. 중국과 캐나다 또한 투자 대비 각각 45억6,700만 달러, 3억6,800만 달러를 끌어들였다.
국내를 벗어나 세계 투자시장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AI 산업에서 변방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다. 이경전 경희대 경영학·빅데이터응용학과 교수는 “국내 기업과 자본의 힘만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AI 분야 주도권을 가져오기는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우수 인재 키우고도 해외에 뺏겨
국가의 기술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지표인 AI 인재에서도 현상 유지조차 못하는 상황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가 최근 발간한 ‘AI 인덱스 2024’에 따르면 한국의 지난해 1만 명당 AI 인재 이동 지표는 -0.3명을 기록했다.
AI 인재가 한국으로 유입되는 숫자보다 해외로 빠져나가는 숫자가 더 많다는 의미다. 2020년 0.3이었던 이 지표는 AI 투자 경쟁이 불붙기 시작한 이래 큰 폭으로 악화되면서 3년 만에 마이너스 전환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지난해 0.4였다.
HAI 자료에서 한국은 2022년 기준 인구 10만 명당 AI 특허 수가 10.26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높았고 지난해 AI 인재 집중도에서도 0.79%로 이스라엘(1.13%), 싱가포르(0.88%)에 이어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AI 분야 인적 경쟁력은 우월하지만 정작 처우 문제 등에서 뒤처지면서 두뇌급 인재를 지키는 데 실패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미혜 한국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적어도 글로벌 수준에 맞춰 인재를 대우해줘야 이탈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약한 지원에 ‘AI G3’는 요원
전문가들은 자본·인재 유출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하고 현재 상황을 뒤집을 컨틴전시 플랜(위기 관리 계획)을 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각종 지원책으로 기업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돕고 글로벌 자본이 국내 기업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규제를 과감히 개선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우리 정부가 2027년 ‘AI 3대 강국(G3)’ 도약 의지를 강하게 내비치고 있지만 해묵은 정쟁에 밀려 정작 AI의 정의와 발전 방향을 담은 AI 기본법조차 국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폐기 처리된 이 법안은 22대 국회에서 발의부터 아예 새로 시작해야 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을 포기하지 않고 있는 만큼 정부가 예산 지원을 늘리는 등 과감한 지원책을 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병훈 포항공대 반도체공학과 교수는 최근 전격 합의된 리벨리온과 사피온의 합병 추진을 언급하면서 “리벨리온 정도의 회사라면 해외에서 훨씬 더 좋은 제안을 받았을텐데 애국적인 결정을 한 것이 아닌가 싶다”며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을 위해 과감한 결정을 내린 만큼 정부가 통 큰 지원을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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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진동영·양지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