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전 오늘 수많은 미군 장병들이 유럽을 폭군의 손에서 구해내기 위해 숭고한 희생을 치렀다. 그들이 남긴 자유와 민주주의 유산을 지켜내는 것이 우리의 책무다.’
2024년 6월 6일. 한국으로서는 69회째 맞는 현충일,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80주년의 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프랑스 노르망디 현장에서 열린 기념식에서 한 선언이다.
바이든을 비롯해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찰스 3세 영국 국왕, 트뤼도 캐나다 총리 등 2차 대전 전승국 지도자들은 물론, 숄츠 독일 총리,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이날 자리를 함께했다.
러시아의 푸틴은 초대받지 못한 그 자리에서 바이든은 우크라이나는 ‘지배에 집착하는 폭군에 의해 침략 당했다’는 성토와 함께 미국과 나토, 그리고 50개 이상의 국가로 구성된 동맹국은 우크라이나를 강력히 지지하고 있고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정황에서 AP와 로이터 통신이 긴급 뉴스를 타전했다. 러시아가 전함, 핵잠수함, 항공기 등을 카리브 해에 전개, 기동훈련에 들어갈 것이라고 보도한 것.
전황은 시시각각 악화되고 있었다. 오래 주저하던 끝에 미국 등 서방국가들은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타격이 가능한 공격용 무기를 제공하고 마침내 러시아 영토 내 군사 목표물에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자 푸틴의 입에서 또 다시 튀어나온 게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다. 그리고 `비대칭적 조치’도 예고했다. 그 가운데 나온 것이 러시아군 전함의 카리브해 전개 소식이다.
‘일단의 러시아국적 소지자들이 군사시설에 대한 공격을 계획하다가 체포됐다.’ 비슷한 타이밍에 독일 발로 전해진 소식이다. 영국에서는 러시아 요원들이 우크라이나로 보내질 군사물자 보관 창고에 방화를 한 혐의로 기소됐다. 에스토니아에서, 또 스웨덴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고 폴란드에서는 방화에 의해 쇼핑몰이 전소됐다.
‘전 유럽을 대상으로 푸틴 러시아는 그림자 전쟁(shadow war)을 벌이고 있다.’ 관련해 카야 칼리스 에스토니아 총리가 한 말이다.
러시아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럽 곳곳에서 이 같은 그림자 전쟁을 해왔다. 2014년 크름반도 침공과 관련해 러시아요원들은 우크라이나로 보내질 체코의 탄약 집적 장을 파괴했다. 또 몬테네그로에서 독일에 이르는 유럽 나라들에서 쿠데타기도, 암살 등을 사주해왔다. 폭력조직, 심지어 난민까지 정치무기로 이용해 온 게 푸틴 체제다.
유럽에 대한 러시아의 도발은 그러면 그림자 전쟁으로 그칠까. 많은 유럽정부들은 푸틴이 이미 새로운 전쟁들을 계획,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앞으로 3~5년 내에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국가들을 공격할 수도 있다는 것이 덴마크 국방상의 예측이다.
그러니까 그림자 전쟁도 모자라 미국의 턱밑에서 도발을 해온다. 그리고 일부 나토국 침공…. 왜 푸틴은 그토록 난리일까. 초조감의 반영이 아닐까.
바로 그런 이유에서 일부 나토회원국 침공 시나리오를 결코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블룸버그지의 진단이다.
푸틴은 전 러시아 사회의 병영화와 함께 전시 경제체제로 바꾸어가고 있다. 각종 군수물자 생산을 기록적으로 늘리면서 전쟁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주시하고 있는 것이 미국의 정치동향이다.
나토를 조롱거리로 삼는 그런 대통령이 선출될 경우 진열장을 깨고 귀중품을 순식간에 탈취하는(smash-and-grab) 방식으로 발트 해 3국에 대한 기습공격을 해올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거다. 다름에서가 아니다. 러시아에게 주어진 기회의 창은 닫혀가고 있기 때문이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군은 엄청난 손실을 입었고 이는 바로 대대적인 인구감소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날로 악화되고 있는 인구문제는 푸틴의 야망 실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이 월 스트리트 저널의 분석이다.
우크라이나전쟁 러시아군 전사자는 최소 15만, 최대 50여 만에 이르는 것으로 서방은 추산하고 있다. 전쟁이 발발하자 해외로 탈출한 인구는 2023년 7월 현재 92만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대부분이 전문직의 고급 두뇌인 그들은 되돌아오지 않고 있다.
전쟁과 함께 또다시 급증한 것이 알코올, 마약 중독 등과 관련된 이른바 절망사(死)다.
여기에다가 출산율 하락이 겹쳐지면서 대폭적 인구감소에, 심각한 노동력 부족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한 유력 경제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부족 되는 인력은 지난해 12월 현재 480여 만에 이르고, 노동연령 인구의 격감과 함께 인력난은 앞으로 더 가중될 전망이라는 것.
문제는 그 약해진 러시아가 강한 러시아보다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이 존스 홉킨스대학의 할 브랜즈의 진단이다.
뭐랄까. 수 천 개의 핵탄두를 보유한 깡패국가(rogue state), 다시 말해 ‘북조선의 확대판’으로 변모해가고 있다고 할까. 툭하면 핵 공갈을 해대며 ‘막가파’식 도발을 해오는 그런 위험한 체제가 되어가고 있다는 거다.
그 러시아의 푸틴이 미국 대선을 바로 앞둔 오는 9월의 시점에 김정은을 만난다는 소식이다. 뭔가 합작 도발을 통한 ‘선거막판 깜짝 쇼(October Surprise)’음모라도 꾸미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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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