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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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인력 뽑으려 시작한 연금… 이젠 젊은 층에 부담

2024-06-03 (월)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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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인과 장애인이 우선 고려된 연금의 역사

▶ 37년 옥살이 보상… 연금, 구원의 의미로 시작
▶노령자 내보내고 젊은 층 뽑으려는 의도로 변화
▶1889년 독일 비스마르크, 현대적 공적연금 시초
▶저출생·저성장, 공적연금의 지속 가능성 위협

국민연금 개혁안 공론화가 한창이다. 오늘날 상당수 나라는 정부예산에서 가장 많은 액수를 공적연금에 사용한다. 이와 달리 우리나라는 근로자와 고용인이 적립한 기금으로 국민연금을 운용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기금 적립금은 현재 1,069조7,000억 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공적연금기금 중 기금 규모로는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로 크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으로는 세계 1위다. 연금 개혁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상황에서, 오늘날 연금제도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역사적으로 살펴보고 함의를 도출해 보기로 한다.

인류가 연금의 필요성을 느껴 이를 활용한 것은 2,000년도 훨씬 더 되었다. 연금의 역사는 비공식적이기는 하나 성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호야긴은 열여덟 살에 왕이 되어 유다를 석 달 통치하다 바빌론에 포로로 끌려간다. 그는 죽지 않고 긴 세월 동안 감옥에 갇혀 지내다 37년 만에 기적적으로 풀려났다. 바빌론 왕(월므로닥)이 즉위 기념으로 베푼 시혜의 결과였고, 그는 종신연금까지 받았다(기원전 562년). 평생을 고통받은 자에게 죽을 때까지 생활비 걱정 없이 해주었기에 연금이 구원의 의미로 다가온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군인들이 퇴직한 뒤 주는 퇴직연금과 관련된 기록이 남아 있다. 전쟁이 잦았던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군인들이 전장으로 나가도록 유가족을 책임질 방안을 고안했다. 아테네 민주정에는 장애인 연금제도의 흔적이 있다. ‘아두나토이(무능력자)’라고 불린 장애인들에게 매일 2오볼(그리스 은화 단위)을 지급했다. 당시 재판에 참여하는 시민에게 준 배심원 수당이 하루 3오볼이었다. 이를 고려하면 기초생활비 정도는 족히 됐다. 리시아스라는 변론가의 법정 변론문을 모은 ‘리시아스 변론집’에는 부정수급자로 고발당한 장애인을 위해 쓴 글이 나온다. 평의회(50인 위원회)가 장애 판정 기준에 따라 해마다 장애를 심사했다. 생계 노동이 불가능할 정도의 신체적 손상, 연금이 없으면 생계가 불가능할 만큼 가난한지 여부, 부양할 다른 가족의 유무 등 세 가지가 판단 기준이다. 현대 장애인 복지 서비스 심사 기준과 그리 다르지 않은 역사가 기원전 400년에 있었다.


그 후 200년이 더 흐른 기원전 201년경 로마 시대를 초기 연금의 기원으로 보는 이도 있다. 그때 나라의 생존을 담보한 것은 군사력이었다. 지중해 도시국가 중 하나인 미르토스는 군사력 강화를 위해 결단을 내린다. 시민들로부터 강제로 군비를 징수하는 대신 이를 나중에 연금 형태로 갚았다. 로마 공화정 당시 마리우스가 사비로 군인에게 연금을 지급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전쟁으로 영토를 확장할 때까지는 지급할 땅을 연금으로 주었다. 영토의 무한 확장이 가능하지 않자, 과도한 연금 지급으로 재정이 악화해 한계에 봉착했다.

로마 제국 창시자는 카이사르이다. 그가 암살당한 후 로마제국 건설의 막중한 임무는 19세의 어린 후계자 아우구스투스(존엄자, 옥타비아누스)에게 맡겨졌다. 카이사르의 양자였던 그는 특유의 리더십으로 로마제국 초대 황제에 올랐다. 토지가 아닌 군인 금고(aerarium militare)를 만들어 군대의 충성을 확보하려 했다. 군인으로 20년 근무하고 예비역 5년을 마치면 평생 연금 수혜자가 됐다. 일종의 퇴역 군인에게 연금을 지급한 것이다. 재원 마련을 위해 상속세(5%)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지급 금액은 3,000데나리온(로마 은화 단위)으로 10년치 연봉 수준이다.

중세시대에는 군인연금 외에 왕이나 귀족이 가신 또는 시종(侍從)이 은퇴하면 종신연금을 지급했다. 퇴직한 신부나 신도는 재직 중 기여도에 따라 영국교회 등에서 ‘코로디(Corrody)’라는 사적연금을 받았다. 급여 수준은 퇴직신부의 경우, 재직 때 소득의 3분의 1 정도였다. 연금 산정 계리사가 수도원에서 일했다. 코로디로 생활하는 ‘코로디언’은 노후가 편안한 유한계층을 상징했다. 당시 국가 주도의 복지정책이 제한적이라 종교기관과 민간조직이 지원 프로그램 운영에 나섰다. 장인(匠人) 조직인 길드나 18세기 이후의 우애조합(노동자들의 자생적 상호부조 조직)도 사적연금을 주도한 주체였다.

영국 국왕 찰스 2세가 1667년 네덜란드 해전에서 패한 후 해군 사기를 높이려 했다. 국가 차원에서 군 복무 후 퇴역 시 기본급의 50%를 종신토록 지급하는 해군장교연금을 개시한 것이다. 미국은 1799년 남북전쟁에 참여한 상이군인에게 연금을 지급했다. 이후 1857년 뉴욕주(洲) 정부 공무원과 경찰관을 대상으로 연금지급을 확대했다.

1653년 프랑스에서 도입된 톤틴연금(tontines, Tontine Annuity)도 주목할 만한 제도다. 체계화된 사적연금의 유형으로 이탈리아 출신이 고안했으나 프랑스에서 시행했다. 이탈리아 의사 출신 은행가 로렌조 톤티(Lorenzo Tonti)가 고안한 이 제도는 생명보험의 시초가 된다.

근대적인 개념의 연금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18세기 산업혁명 이후이다. 임금 노동자는 은퇴 후 생계가 어려워졌고, 자본가는 연금제도를 만들어 노동력의 유인 수단으로 사용했다. 나이 든 노동자에게 은퇴연금을 주어 내보내고 대신 젊고 유능한 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게 됐다.

국가가 나서 국민 전체를 위한 공적연금을 만든 건 1889년 독일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노령·장애보험이 시초다. 그 배경은 사회주의로부터의 보호에서였다. 러시아발 사회주의가 물밀듯이 밀려 들어와 이를 탄압하는 정치적 분위기가 태동했다. 노동자들이 나이가 들거나 장애로 인해 더 일하지 못하면 생계비를 받을 수 있도록 주당 연금을 지급하는 제도를 마련했다. 법률로 반드시 연금에 가입하도록 정해 개인의 의사에 따라 가입·탈퇴가 불가능했다. 독일 공적연금과 유사한 연금을 이후 유럽 국가들이 속속 도입했다. 영국(1908년), 프랑스(1910년), 스웨덴(1913년), 이탈리아(1919년), 네덜란드(1919년) 등의 순이다.


이민자 사회인 미국은 유럽 국가와는 달리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발생한 소득으로 노후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대공황을 겪고 실직과 빈곤이 현실화하자 변화가 발생했다. 193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사회보장법을 제정해 국민 연금제도를 도입했다.

영국의 사회보험은 1942년 발간된 ‘베버리지 보고서’에 기반해 발전했다. 경제학자 윌리엄 베버리지는 영국 정부에 ‘생존 수준의 정액 급여’와 ‘급여의 적절성’을 제시하며 보편적 복지를 통해 전 국민이 사회보장 혜택을 받고 그 비용은 국가, 고용주, 노동자가 분담할 것을 원칙으로 했다.

이후 각국은 앞다퉈 공적연금을 도입했다. 대부분은 적립기금이 없는 부과 방식 연금이었다. 오늘날 적립기금을 지닌 나라는 일본, 캐나다, 미국, 싱가포르, 한국 정도다. 많은 나라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저출산·고령화 위험에 노출돼 부과 방식을 부분 적립 방식으로 바꿨다. 공적연금을 줄이고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비중을 늘렸다.

우리나라는 1960년 공무원연금 도입 후에 1963년 군인연금을 공무원연금에서 분리했다. 1975년에는 공무원연금에 준하는 사학연금이 도입됐다. 국민연금이 시행된 것은 1988년이었다. 당초 국민연금 적용 대상은 종업원 10명 이상 사업장이었다. 이후 1992년 5명 이상, 1995년 7월 농어촌지역, 1999년 4월 도시지역으로 확대해 취업 중인 대다수 국민에게 적용했다. 보험료율은 1988~1992년 3%, 이후 5년간 6%, 1998년부터 9%다. 급여 수준은 40년 가입 평균소득자 기준으로 소득대체율(가입기간 평균 소득 대비 연금액 비율) 40%다. 초기 소득대체율은 70%였다. 1998년 말 개정으로 60%, 2007년 7월 개정으로 2008년 50%, 이후 단계적 인하를 거쳐 2028년에는 40%다.

현재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어떻게 할지가 연금개혁의 핵심 쟁점이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가속화, 경제성장률 저하는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한다. 인구와 경제성장률 변화를 주시하며 선제적으로 연금급여와 보험료 수준을 조정해야 한다. 조속히 법제 개정에 나서야 재정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다.

<조원경 UNIST 글로벌산학협력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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