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이름 석 자가 중요한데

2024-05-23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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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라는 이름은 고색창연하게 들릴 수 있다. 요즘 신생아 중에 이 이름을 가진 아기를 찾기 어렵다. 작고한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부인이 바버라 여사인데 당시는 인기있는 여자 아이 이름이었다. 한 때 에이프럴, 메이 등 달 이름이 인기이던 적도 있었다. 한국말로 옮기면 사월이, 오월이 정도 될 것 같으나, 지금 아이들 중에 그런 이름을 들은 적이 없는 듯하다. 몇 년 전부터 Mae 라는 이름이 보이기 시작하자 지난 날을 그리워하는 이들은 반가워하기도 한다. 매, 혹은 메이로도 불리기 때문이다.

영어는 같은 이름인데 다르게 불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Reagan이 대표적인 예. 대통령과 비서실장의 이름이 같았다. 처음 한국 언론은 두 사람 모두 리건이라고 불렀으나 대통령이 자신의 이름을 레이건이라고 부른다는 것을 안 후 철자가 같은 두 사람의 이름을 다르게 불렀다. 아마존 창업자 Bezos도 비슷한 예다. 일부에서는 아직 베조스라고 하지만 본인 스스로 베이조스라고 하는 한 그렇게 부르는 것이 맞다. 한국 대통령 이름도 ‘성열’ ‘석렬’ 두 발음이 다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발음하기 쉬워서 인지 ‘성열’이 더 많이 들리는 듯하다.

한국 이름처럼 미국 이름에도 유행이 있다. 매년 소셜 시큐리티국이 발표하는 등록된 아기 이름 순위 발표는 그래서 흥미롭다. 지난해에는 마테오(Mateo)라는 이름이 주목을 받았다. 지난 95년 랭킹 1,000위, 20년 뒤 100위권이었던 이 남자 아이 이름이 랭킹 6위로 성큼 도약한 것이다. 지난해 신생아 1만1,000명 이상이 이 이름을 가졌다. 마테오는 신의 선물이라는 뜻, 매튜의 스패니쉬 이름이다. 미국내 라티노 인구 급증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소셜 미디어 스타의 이름을 따라 지은 이름도 등장하고 있다. 유튜브와 틱톡의 인플루언서인 Kaeli가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Kaeli라 쓰고 케일리(Kaylee)라고 발음되는데 케일리는 자신 말고 이런 스펠링을 가진 케일리는 처음 본다며 본인 스스로 놀라워한다. 넷플릭스 시리즈 ‘코브라 카이’가 인기를 끌면서 이 드라마에 등장하는 영웅 초즌(Chozen)의 이름을 딴 아이도 꽤 된다. 스펠링을Chosen으로 쓰기도 하지만 발음은 여전히 초즌으로 한다.

여자는 제니퍼, 제시카, 에밀리 전성 시대를 거쳐 지금은 올리비아 시대. 5년째 여자 아이 이름 1위에 올라 있다. 다음은 엠마, 샬롯, 아멜리아, 소피아, 미아 등의 순이다. 남자 아이는 오랫동안 마이클이 부동의 1위였다. 데이빗이 한 해 잠시 1위에 올랐을 뿐이다. 지금은 리암이 최애 이름, 5년째 1위라고 한다. 다음은 노아, 올리버, 제임스, 일레이지아 등의 순. 사랑받던 이름 벤자민은 10위권 밖으로 밀려 났다.

한인 이민자들은 미국에 오면 한 번쯤 이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한국 이름을 그대로 쓰자니 미국인들에게는 발음이 어렵다. 퍼스트 네임을 부르며 스스럼없이 어울려야 하거나, 특히 마케팅 직종에 있다면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은 손해다. 그래서 많은 케이, 제이 등을 보게 된다. 케이는 ‘경숙’ 등 경자가 들어가는 이름, 제이는 ‘정숙’등 정자가 있는 이름, 큐는 ‘규혁’ 등의 이름을 가진 이들이 이름의 첫 자를 이니셜처럼 부르다 고착된 예가 많다.

이 기회에 마음에 드는 미국 이름을 골라 가지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이름 그대로 영어로 써도 발음하기 좋고, 기억하기도 좋다면 더 좋을 것이다. 사람은 이름 석자가 중요하다는데, 한자도 모르는 2세들의 이름을 한자의 뜻 보다 이런 점을 고려해 궁리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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