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금이 증시 안전판
▶ 밸류업 후 두달간 5000억 순매수
▶당국 발맞춰 증시 체질개선 시동
▶스튜어드십 코드에 밸류업 추가
▶노르웨이·일본의 공적연금처럼 목표의식 갖고 주주환원 나서야
수익률 제고를 위해 해외 투자 비중을 확대해오던 국민연금이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도입 이후 국내 증시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2055년 기금 고갈에 대비하면서도 금융 당국과 발맞춰 한국 증시의 점진적인 체질 개선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당국이 밸류업 공을 시장 참여자와 주주에게 돌리면서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국민연금의 직접적인 역할도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김민국 VIP자산운용 대표는 “생존과 가입자 수익 환원을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러 나라 연기금처럼 국민연금도 목표 의식을 갖고 주주 환원에 나서야 한다”며 “현금 창출력이 높으면서 저평가된 기업에 투자해 밸류업을 시키고 결과적으로 수익률을 높이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외국인투자가들에게 우리 증시가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1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국민연금 기금은 정부가 올 1월 하순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 추진 의지를 내비친 후 2월과 3월 코스피 시장에서 2581억 원, 2493억 원 순매수했다. 이 기간 저 주가순자산비율(PBR) 종목들이 순매수 상위 종목에 등장했다.
국민연금은 여당의 총선 참패에도 당국이 밸류업 추진에 속도를 내자 이에 발맞춘 움직임을 보였다. 연기금은 지난달 11일부터 이달 10일까지 코스피에서 5130억 원을 사들였다. 같은 기간 금융투자(5965억 원), 보험(930억 원), 사모(2449억 원) 등 기관투자가들이 순매도한 것과 상반된 행보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점진적으로 밸류업의 마중물 역할을 하는 것이라는 시각이 나온다.
국민연금의 올해 자산군별 목표 비중에서 국내 주식은 15.4% 정도이지만 실제 투자 규모는 2월 말 기준 13.8%(148조 원)에 그친다. 비중만 놓고 보면 1.6%포인트 정도의 투자 여력이 남은 것으로 보이지만 몸집이 점점 더 커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절대적인 투자 규모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 정부의 재정추계에 따르면 적립금은 지난해 1036조 원을 기록했고 2040년 1755조 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연금은 2055년으로 예정된 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 해외 투자 비중을 늘려왔다. 연기금의 지난해 국내 주식 수익률은 22.12%로 해외 주식(23.89%)을 밑돌았다. 국내 주식 수익률은 2018년 이후 해외 주식을 넘어선 적이 없다. 1988년 이후 지난해 11월까지 국내 주식 장기 수익률은 5.2%, 해외 주식은 8.5%를 기록했다. 국민연금이 보유한 국내 주식과 해외 주식 자산 규모는 2018년에만 해도 각각 109조 원, 113조 원으로 비등했지만 불과 6년 사이 해외 주식 규모는 168% 커진 반면 국내 주식은 29% 증가에 그치며 두 배가량 벌어졌다.
밸류업 가이드라인이 ‘기업과 주주, 시장 참여자의 소통’에 초점이 맞춰졌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국민연금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직접 나설 가능성도 높다. 기업과 비공개 대화를 하거나 공개적으로 밸류업을 독려하는 의견을 표명하는 식이다. 기업 밸류업 자문단 위원장인 조명현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국민연금이 투자한 회사의 가치가 높아져야 수익을 내고 수익자들에게 돌려줄 수 있다”며 “투자한 회사들이 밸류업 노력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같이 논의하며 독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민연금은 국내 상장사 281곳의 지분 5% 이상을 갖고 있다. 기관투자가들의 투자 지침서인 ‘스튜어드십 코드’에 밸류업이 추가되면서 연기금의 관심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올해에도 정기 주주총회를 개최한 84개 기업의 주총 안건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했다. 국민연금은 한미사이언스(008930)·고려아연(010130) 등 경영권 분쟁이 일어나는 기업들과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연대가 주주 제안을 내놓은 삼성물산(028260)·DB하이텍(000990), 그리고 주인 없는 기업으로 불리는 소유 분산 기업 가운데 대표가 바뀌는 KT&G·포스코홀딩스 등의 주총에서 ‘플레이어’ 역할을 자처했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일본의 공적연금(GPIF)이 맏형 역할을 하며 도쿄 증시를 높이는 데 기여했다는 점에서 국민연금도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노르웨이 연금의 경우 핵심 기업에 대해서는 직접 의결권 행사 방향을 시장에 제시하는데 이것이 기업가치 상승에 큰 효과를 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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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현ㆍ박시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