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첫번째 수도는 워싱턴 DC가 아니라 뉴욕이었다. 미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1789년 4월 뉴욕에서 집무를 시작했다. 그러나 연방 헌법은 연방 의회에 새 수도를 정할 권한을 줬고 이에 따라 1790년 ‘수도법’이 제정되면서 1790년부터 10년은 필라델피아, 그 후는 버지니아와 메릴랜드 경계에 있는 ‘연방 지구’에 수도를 정하게 됐다.
당시 황무지나 다름없던 ‘연방 지구’가 수도가 된 것은 워싱턴을 비롯 토머스 제퍼슨, 제임스 매디슨 등 미 독립 운동을 주도한 최대 세력인 버지니아 주요 인사들이 수도를 자기 세력권에 두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초대 재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해밀턴은 1790년 제퍼슨, 매디슨과 저녁을 먹으며 독립 전쟁을 벌이느라 주 정부가 진 빚을 연방 정부가 떠안는 조건으로 이곳을 수도로 하는데 합의했다.
수도는 정해졌지만 지금 대통령 집무실이자 그 상징과도 같은 백악관은 아직 지어지지 않았다. 1792년부터 공사가 시작, 1800년 완성돼 2대 대통령인 존 애덤스가 처음으로 그 곳에서 집무를 시작했다.
워싱턴은 정작 자기 이름이 붙은 수도에 있는 집무실에 발도 디뎌 보지 못했지만 그가 원하기만 했다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독립 전쟁 발발 당시 미 대륙 최대 지주의 하나였던 그는 가만히 있어도 여유있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런 그가 총사령관이 돼 목숨을 걸고 싸워 승리를 쟁취했다. 당시 그가 새 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돼야 한다는데 이견이 없었으며 그를 왕으로 추대하려는 움직임까지 있었다. 또 당시 헌법에는 임기 제한이 없었기 때문에 하고 싶으면 죽을 때까지 얼마든지 대통령을 할 수 있었다. 1788년과 1792년 두 차례 선거에서 유세를 한 번도 하지 않았음에도 그는 각각 선거인단 69명과 132명 만장일치로 선출됐다. 미 역사상 만장일치로 당선된 대통령은 워싱턴뿐이다.
그는 1796년 다시 대통령직을 맡아달라는 간곡한 부탁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권좌를 내놓고 고향으로 돌아가 농사 일을 시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영국 왕 조지 3세는 그게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지난 주말 댈러스에서 열린 전국 라이플 협회 모임에서 루저 도널드는 자기가 올 대선에서 이기면 재선이냐 3선이냐를 지지자들에게 물었다. 그의 이 발언은 상식이 있는 사람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는 말이다. 그는 2020년 대선에서 졌기 때문에 이번에 이기면 재선이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번이 3선이 되기 위해서는 2020년 선거에서 그가 이겼고 지난 4년간은 불법으로 바이든이 백악관을 점령했어야만 한다. 미국 헌정 질서를 부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게 아니고 올 대선에서 이긴 후 4년 뒤 다시 한번 더 해 3선을 채우겠다는 말이라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미국 헌법은 대통령의 3선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날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4선을 해 거의 16년을 집권했다는 말도 했는데 이는 사실과도 다를 뿐 아니라 지금 현실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루즈벨트가 4선을 한 것은 맞지만 임기를 수행한 것은 12년뿐이다. 그가 4선을 하게 된 것은 대공황의 여파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 1937년 일본이 중국을, 1939년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하며 유럽이 전화에 휩싸이는 등 언제라도 세계 대전이 벌어질 수 있는 비상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 장기 집권의 위험을 깨달은 미국 국민들은 수정 헌법 22조를 통과시켜 대통령의 임기를 두번으로 제한했다.
그런데도 3선 운운한다는 것은 헌법을 고치거나 이를 무시하고 장기 집권을 하겠다는 속내를 비친 것이라 의심 받을 수 있다. 그는 2020년 대선 때도 위스콘신 유세를 하며 자기 캠페인에 스파이가 잠입했다며 대선에서 이겨 4년을 한 후 또 다시 4년을 더 하겠다는 황당한 주장을 했다. 그 후 3선은 하지 않겠다는 말을 하기도 했으나 재선에 성공하면 취임 첫날 하루 독재자가 되겠다는 말까지 한 그이고 보면 안심할 수 없다.
그가 이번에 재집권하면 자기 말을 듣지 않는 군과 검찰 등 연방 공무원을 모두 해임하고 그 빈 자리를 충복으로 채워 자기를 박해한 모든 인간들에게 무자비한 보복을 할 것이라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그의 집권 2기가 1기와는 전혀 다를 것임을 예고한다
애국적 헌신으로 나라를 세우고 깨끗이 권좌에서 내려온 워싱턴과 온갖 스캔들에 휩싸인채 네차례 기소되고도 권력을 사욕과 보복의 수단으로 쓰려는 루저 도널드와의 거리가 너무나 커보이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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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