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스타트업 본사 해외로…“한국 규제 벗고 나스닥 목표”

2024-04-23 (화) 서울경제=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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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립 직후부터 ‘본 투 글로벌’

▶ “기술가치·시장성 더 인정받아” 센드버드 등 성공 사례 줄이어
▶개발 단계부터 글로벌시장 염두
▶“철저한 준비로 성공 확률 높여야”

한국에서 손꼽히는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을 설립한 김 모 대표는 최근 미국으로 근무지를 옮겼다. 그는 “설립 초기부터 미국 시장에 진출한다는 목표가 확고해 개발 단계부터 현지에서 통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며 “5년 내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미국에 계속 머무를 예정”이라고 말했다.

센드버드와 쿠팡 등의 성공 사례에 힘입어 나스닥 상장을 목표로 해외 창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최근 증가하고 있다. 현지 법인 설립은 물론 본사 이전까지 감수할 정도로 공격적인 경영을 펼치는 사례가 업종을 불문하고 확산되고 있다.

스타트업들이 해외 본사 설립을 선호하는 것은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높은 기업가치를 인정받고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기업용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국내 창업 기업이 해외 법인으로 전환하는 플립 사례가 많이 나타나는 이유도 국내보다 해외에서 기술 가치와 시장성을 더 평가해주는 분위기와 관련이 깊다. 플립에 성공한 사례로 손꼽히는 ‘스윗’과 ‘알로’ 모두 북미 기업간거래(B2B) 영역에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SaaS 업체다.


매각 경험이 있는 연쇄 창업가일수록 해외 본사 설립에 더욱 적극적이다. 자신의 과거 성공 경험을 발판 삼아 창업 직후 해외 벤처캐피털(VC)로부터 투자를 받은 뒤 해외시장을 겨냥한 제품 및 서비스를 내놓는 것이다.

특히 최근 들어 미국 외 지역에서 성공한 사례가 하나둘 나오는 것도 창업가들에게 고무적인 분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인도 핀테크 1위 업체로 부상한 밸런스히어로가 대표적이다. 코로나19 시기인 2021년 흑자 전환에 성공한 이 회사는 지난해 인도에서 연간 취급액 4000억 원을 달성했다.

각종 규제 리스크도 창업가들의 눈을 해외로 돌리게 만드는 요인이다. 디지털 자산 시장의 발달에 따라 토큰 발행 법인들이 많고 가상자산공개(ICO) 허용 등 규제가 덜한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기는 기업들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한 액셀러레이터 대표는 “블록체인, 디지털 헬스케어 등은 현행법상 사업을 펼치는 데 제약이 많고 나중에 어떤 리스크가 떠오를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창업가들 사이에 만연하다”면서 “최근 싱가포르로 회사를 옮긴 기업들은 대부분 블록체인과 관련된 업종인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주목할 점은 본사가 해외에 있더라도 한국에서 오히려 고용을 더 많이 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AI 기반 여행 추천 솔루션 업체인 글로벌리어는 본사는 미국에 있지만 직원 대부분은 한국에서 일하고 있다. 2012년 미국에서 설립된 교육 스타트업 에누마도 한국과 중국, 일본 등에 지사를 두고 있는데 현재 회사 인력의 약 80%인 100여 명의 직원이 한국에서 기술개발 업무를 맡고 있다. 2020년 미국으로 본사를 이전한 스윗테크놀로지도 미국 현지보다 한국에서 더 많이 고용하고 있다. 미국 본사는 30여 명, 서울은 6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해외 진출 및 해외에 본사를 둔 스타트업들의 증가로 인해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도 긍정적 효과가 커지자 불필요한 규제를 줄여 스타트업이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 창업진흥원이 작성한 ‘스타트업 글로벌 진출 관련 규제 애로 현황 및 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에서에 따르면 기업인들은 플립 실행 시 양도소득세 부과에 대해 부담을 느낀다고 답했다. 주식이 거래되거나 양도차익이 실현되지 않는 데도 스타트업 가치 평가액의 20% 이상이 플립 실행 시점에 양도소득세로 부과돼 창업가와 주주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한 컴퓨터 보안 스타트업의 대표는 각종 세금 부담이 플립을 중단하게 되는 데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해외로 본사를 이전하려는 스타트업들이 철저한 준비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실제로 기대와 다르게 당장 현지 투자 유치부터 어려움을 겪는 경우도 많다. 디지털 헬스케어 기업 휴이노는 미국으로 플립했다가 다시 한국으로 역플립하기도 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더 큰 규모로 투자 받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투자 유치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작 큰 돈을 들여 해외로 진출했지만 국내 VC에 의존하는 경향도 여전하다. 더브이씨와 함께 해외에 진출한 한국 스타트업의 투자 유치 현황을 분석해보니 최근 3년 기준으로 한국 투자자가 125건으로 가장 많았다. 미국은 48건으로 뒤를 이었다. 그 다음은 영국(9건), 싱가포르(8건), 일본(7건) 순이었다. 해외 투자를 바라봤던 기업 상당수가 국내 자금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서울경제=박진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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