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우리도 연방상원의원을 가져보자

2024-04-12 (금)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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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디 김’ 하면 2020년 1월6일 연방의회 난입사건이후 난장판이 된 의사당 바닥에 무릎을 꿇고 쓰레기를 줍던 모습이 생각난다. 파란 양복 차림으로 다른 직원들과 함께 홀 로툰다 지역의 쓰레기를 맨손으로 집어 커다란 비닐봉지 안에 넣는 것을 보면 미국을 바로 세우려는 사람이 있네 하게 된다. 이 모습은 언론매체에 보도가 되었고 당시 입었던 푸른색 양복은 2021년 스미소니언 박물관에 기증되었다.

그는 제이 김(김창준, 공화당)이 1993년부터 1999년까지 3선 하원의원을 지낸 후 20년간 끊어졌던 연방의회 한국계 의원의 맥을 이었다. 김창준은 22세 때 미국으로 온 이민 1세인데 비해 앤디 김은 1982년 보스턴에서 출생한 이민 2세다.

앤디 김은 민주당 후보로 뉴저지주 연방 상원의원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난해 8월 현직인 밥 메넨데스가 뇌물수뢰 혐의로 기소되고 경쟁 상대였던 필 머피 현 뉴저지 주지사의 아내 태미 머피가 선거운동을 중단하면서 그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졌다. 6월4일 예비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최종 확정되면 뉴저지주는 민주당이 압도적이어서 오는 11월5일 실시되는 본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를 손쉽게 물리치고 당선이 유력하다.


앤디 김의 어록을 살펴본다.

“내 부모는 50년 전 기회를 갖기 위해 미국으로 이민 왔다. 부모님이 이민을 오도록 영감을 주었던 그런 미국을 만들고 싶다.”

“한인사회뿐 아니라 미국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 되겠다.”

“두 아들 생일파티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아이들에게 더 좋은 미국과 미래를 주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해 정치를 하고 있다.”

“우리를 향한 풀뿌리 유권자들이 에너지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두려움과 압박 없이 자유롭게 투표할 때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 또다시 증명됐다.”

“당선되면 보다 많은 한인들이 건강보험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또 많은 한인 스몰 비즈니스들을 지원함과 동시에 미국과 한국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하고 싶다.”

현재 미연방상원으로는 대만/태국계, 일본계 의원이 있다. 앤디 김이 상원에 입성하면 한국계로는 최초이다. 그야말로 미국의 다양성을 보여주게 된다.


현재 연방 하원의원으로 뉴저지주 앤디 김, 워싱턴주 메릴린 스트릭랜드, 캘리포니아주의 미셸 박 스틸과 영 김 4명이 있다. 뉴욕주 하원의원. 시장, 시의원 등등 선출직 한인 공무원이 제법 많아 한인정치인의 이름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는 다문화 사회에서 한인 문화의 중요성도 높아간다고 할 수 있다.

앤디 김이 연방 상원의원이 된다면, 한국계 처음으로 상원에 진출하는 것이고 미동부지역 전체를 통틀어 첫 아시아계 상원의원이 탄생하는 것이다. 121년 전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첫발을 디딘 우리 이민 선조들이 먼 훗날 자신들의 후손 중에 미국 연방 상원의원이 탄생할지 상상이나 했을까.

1902년 12월 인천항에서 하와이로 떠난 102명을 시작으로 오늘날 미주한인은 250만 명으로 늘었다. 국내의 혼란과 흉년으로 인한 배고픔에서 벗어나고자 낯선 이국땅에 와서 고된 노동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뜨거운 태양아래 호미와 괭이로 농장을 일구고 억센 수숫대를 칼로 잘라내고 700여 명의 사진신부들은 강인한 정신력으로 가정을 건사했다.

이민 2세 앤디 김의 미연방상원의원 출마변을 들으니 1965년 이민법 개정으로 본격화된 한인이민 시기나 한인이민이 정점을 찍은 1985~1987년 시기보다는 이민 초창기 하와이 이민자들이 더욱 머리에 떠오른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일은 우리가, 내가 할 수 있다. 일단 6월4일 열릴 뉴저지주 예비선거에서 상원의원 후보로 확정되어야 한다. 10만 명에 달하는 한인 유권자들의 결집이 필요하다. 드디어 우리도 이민 121년 만에 연방 상원의원을 가져보자. 재정적 지원은 물론 반드시 투표하여 힘을 실어주자.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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