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배양육’ 산업에 지레 질색하는 공화당

2024-04-10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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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을 수 있는 버거를 만들려면 먼저 살아서 트림을 하는 동물을 죽여야 한다.”

공화당이 이제 막 날개짓을 시작한 ‘배양육’ 산업(lab-grown meat industry)을 금지하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식용육은 산 짐승의 도축과정을 거쳐 나오는 고기로 한정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반면 과학자들과 사업가들은 동물체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해 식용육을 만드는 신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지는 배양육은 채식주의자용 식자재를 이용해 만든 ‘비욘드 밋’이나 두부 등의 대체육과는 완전히 다르다. 실제로 살아있는 동물의 세포를 채취한 후 아미노산과 같은 영양분을 공급해가며 실험실에서 식용육으로 배양한다. 대체육과 달리 배양육은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고기의 식감과 맛, 영양성분을 그대로 갖고 있다.


지난해 농무부는 일부 업체의 실험실에서 만들어낸 닭고기의 판매를 허용했다. (쇠고기, 돼지고기와 참치 등) 다른 배양육은 개발단계에 있다. 현재 세포배양 치킨을 메뉴에 올린 미국내 식당은 단 두 곳뿐이고, 고객에게 제공되는 분량 또한 소량으로 제한된다. 아직 태동단계인 배양육 산업이 앞으로 얼마나 커질지 현재로선 예견하기 힘들다.

그러나 배양육 산업이 가져올 잠재적 혜택은 상상을 초월한다. 지난 수세기 동안 동물복지 옹호론자들은 이들에 대한 인도적 취급을 강력히 촉구했다. 배양육 기술은 이들의 요구를 충족시킨다.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을 도축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전부가 아니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식용육을 생산하자면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 배출이 불가피하다. 사료 생산, 퇴비관리 과정에서 다량의 온실가스가 발생할 뿐 아니라 소가 트림을 할 때마다 상당량의 메탄가스와 이산화탄소가 배출된다. (게다가 되새김질을 하는 소는 수시로 트림을 한다). 유엔의 추산에 따르면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배출되는 ‘인위적 온실가스’의 12%가 농축산 시스템에서 나온다.

솔직히 필자는 식료품의 원산지나 원료, 제조방식 등에 전혀 관심이 없다. 좀 더 지각이 있는 소비자라면 아마도 달리 행동할지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의 소비자들은 필자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은 ‘지구 구하기’와 같은 추상적인 원칙보다 가격과 맛을 기준으로 먹거리를 구입한다.

이제 막 날갯짓을 시작한 배양육 산업에 기대를 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지구를 구한다든지 무기력한 생물을 보호하는 등 넓은 의미의 인류애적 행동을 촉진시키기 위해 정부가 해야 할 역할은 도덕적 영향력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재정적 인센티브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인류애적 행동을 유도할 수 있다. 새로운 배양육 생성기술은 궁극적으로 비도덕적인 기업과 나태한 소비자들의 구미에 맞는 고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이 신기한 기술은 육류 가격을 떨어뜨리고, 도축에 따른 생명 손실을 없애며, 기후변화 요인을 줄이는 한편 항생제 사용을 낮추면서도 영양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게다가 맛 역시 자연산과 다를 바 없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는 아직 목표지점에 도달하지 못했다. 상업적인 경쟁력과 환경보호에 보탬이 되는 상품이 나오기에 앞서 심각한 재정적, 기술적 난관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신기술이 성공을 거둘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아낌없는 응원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 전체가 배양육 기술을 응원하지는 않는다. 공화당이 장악한 한줌 남짓한 레드 스테이트는 배양육의 미래를 잘게 잘게 토막 치려 한다. 앨라배마, 애리조나, 테네시와 플로리다 등지의 공화당 정치인들은 배양육 판매와 유통, 혹은 대중의 소비를 목적으로 ‘세포를 배양해 만든 모든 식료품’의 수입 금지를 골자로 하는 법 제정을 검토 중이다. 이를 어길 경우 주에 따라 100만 달러에서 실형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처벌을 받게 된다.

테네시주 하원의원인 버드 헐시(공화)는 “빌 게이츠와 함께 벌레(bug)를 먹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는 모양이지만, 나는 아니다”며 배양육 기술에 투자한 억만장자 사업가이자 박애주의인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의 이름을 입에 올렸다. 헐시는 배양육 판매허용은 인간의 생체실험을 제한한 누렘버그 코드 위반이라고 주장했다. 플로리다 주 의회는 이미 배양육 판매를 형사법으로 다스리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론 디샌티스 주지사는 아직 이 법안에 서명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가짜 고기를 먹지도 만들지도 않을 것”이라며 “배양육은 우리 사회의 여러 중요한 가치를 위협하는 이념적 의제”라고 비난했다.

분명히 말해 문제는 배양육의 판매나 섭취를 강요하는 좌익 ‘내니 스테이트’(개인의 선택에 정부가 개입하는 주)가 아니라 (대부분 시장에 나오지도 않은) 상품의 자발적 섭취와 판매를 금지하는 보수적 내니 스테이트이다.

승자와 패자는 자유시장이 결정한다던 공화당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 제한된 정부를 옹호하던 정당은 어디로 간 걸까? 몇몇 공화당 강세주의 배양육 금지조치는 야구경기에 빗대어 말하자면 전통적인 적색육을 1루에 던져 땅볼을 치고 나간 배양육 타자를 아웃시키려는 꼼수다. 헐시가 빌 게이츠를 언급한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익 음모론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하는 게이츠는 극보수주의자들에겐 음침하고, 반미국적인 ‘이념적 의제’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진보 타파’에 적합하게 변형된 일부 정치인들의 뇌는 재래식 육류 생산이 기후변화에 끼치는 부정적 영향을 버그(bug: 의도하지 않은 착오)가 아닌 피처(feature: 의도된 순기능)로 간주한다. 이런 정치인들은 배양육과의 경쟁에 위협을 느낀 막강한 이익집단의 우려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농업분야의 로비스트들은 새로운 육류제품을 완전히 금지하거나 최소한 배양육에 오명의 낙인을 찍게끔 디자인된 라벨 부착을 요구한다. (최근 이탈리아 정부는 축산농가의 집단반발에 굴복해 배양육의 제조와 판매를 금지했다.)

새로 떠오르는 유망산업분야에서 앞으로 누군가는 반드시 성공을 거둘 것이다. 안티-마켓 불량배들이 이 분야에서 미국의 성공을 가로막는 것을 좌시해선 안 된다. 게임의 판돈(stake)으로 엄청난 스테이크(steak)가 걸려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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