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세지는 차이나 쇼크
▶중국발 쩐의전쟁 ‘글로벌 뉴노멀’
▶3년 전 디스플레이 패권 내준 韓
▶ 초격차 기술확보 시급한데 ‘멀뚱’
▶수출규제·관세 ‘눈에는 눈’ 필요
“중국의 추격을 단념시킬 정도의 ‘초격차 기술’을 확보하는 데 재정 지원 등 전력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
중국이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쉬인 등을 통해 주요국의 유통망을 교란하고 철강과 석유화학 등에서 밀어내기 식 덤핑을 지속하는 가운데 제조업 위기를 막고 경제안보를 다지기 위해서는 정부가 파격적인 지원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도체 보조금과 연구개발(R&D), 인력 등에서 기존과는 차원이 다른 방안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저가를 무기로 ‘1차 차이나쇼크’를 발생시켰던 중국이 진일보한 기술력과 가격 경쟁력으로 ‘2차 차이나쇼크’를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세관 당국인 해관총서 등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총 수출액은 3조 4217억 달러로 집계됐다. 2001년 수출액(2667억 달러)보다 13배 가까이 늘었다. 최근 20여 년간 중국의 연평균 수출 증가율은 약 13%에 달한다. 같은 기간 전 세계 국가의 연평균 수출 증가율(약 6%)의 2배가 넘는다.
중국의 전기차 비야디(BYD)는 출고가 1만 달러도 되지 않는 가격으로 판매되는데 테슬라의 저가 모델과 비교해도 3분의 1 수준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장을 지낸 김흥종 고려대 국제대학 특임교수는 “중국이 지난해부터 경기 부양을 위해 자국 기업에 투입하는 보조금 규모를 늘리며 과잉생산이 이뤄졌다”며 “현재 자국 내 수요로는 물량을 감당할 수 없어 해외로 재고 밀어내기를 하고 있고 이 가운데는 첨단 제조품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는 2015년 ‘중국 제조 2025’를 발표하면서 제조업 육성에 주력해왔다
중국이 성장 사다리를 올라오는 동안 한국은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국은 3년 전 디스플레이 시장의 ‘세계 챔피언’ 자리를 중국에 내준 데 이어 메모리반도체 가운데 낸드의 경우 중국 업체들과 한국·미국 등 글로벌 선두 기업 간 기술 격차가 2년 안팎까지 줄어들게 됐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국가 주도의 산업 육성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에서 2500개 이상의 산업 정책이 쏟아졌으며 새로 도입된 산업 정책은 △2019년 632건 △2020년 852건 △2021년 1594건 △2022년 1568건 등이다. 글로벌트레이드얼러트에 따르면 전 세계 신규 보조금 사업도 2019년 559건에서 2021년 1941건, 2023년 2021건으로 폭증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2008년 11월부터 2023년 4월까지 총 3770건의 산업 보조금 정책을 발표했는데 이 중 97%가 재정 보조금 유형이었다. 중국이 촉발한 ‘보조금 전쟁’이 이제 ‘글로벌 뉴노멀’이 되고 있는 셈이다.
이 같은 글로벌 추세 속에 한국 역시 반도체 분야에서 보조금 도입이 불가피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이규석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생산 및 고용 유발 효과, 투자 난이도 등 차등화한 보조금 지급 요건과 비율을 세우면 뒷말이 없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중국 정부의 노골적인 자국 첨단전략산업 밀어주기에 대항해 ‘팃포탯(tit for tat·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의 전략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미국은 최근 첨단 반도체에 이어 범용(legacy) 반도체까지 수출 규제에 포함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했다. 또 중국산 범용 태양광 패널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EU는 무역 관세와 더불어 탄소 장벽을 높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다. CBAM은 EU가 수입하는 제품의 탄소 배출량이 유럽 내 동일 제품의 배출량보다 많을 경우 추가 배출량에 비용을 매기는 제도다. EU의 계획대로 CBAM이 2026년 본격 시행될 경우 중국산 철강 수출 가격은 기존 대비 4~6%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초격차 기술 확보를 위한 R&D와 우수 인력양성과 같은 산업 기반 정책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에 따르면 2031년에 국내 반도체 산업 인력은 5만 명 이상 부족할 것으로 우려됐다. 송영관 한국개발연구원(KDI) 산업·시장정책연구부 선임연구위원은 “우리가 취약한 반도체 설계 부문에서 인력을 늘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반도체 설계 인력의 처우 개선 등에 힘쓰는 게 한국 반도체 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데 실질적인 방안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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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경제=유현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