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필자의 외조부이시기도 한 박목월 시인의 미 발표 시 290 여 편이 발견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서정 시인이기도 한 박목월 시인(1915~1978)이 남긴 시작 노트 80 여 권이 동리목월문학관과 장남 박동규 교수의 자택에서 발견된 것이다.
위에 쓴 제목은 언론에 공개된 ‘수샨보오이’의 한 대목이다.
6.25 때
엄마 아빠 다 돌아가신
슈샨보이.
길모퉁이의 구두를 닦는 슈샨보이
(중략)
이 밤에 어디서 자나 슈산보이
비가 오는데, 잠자리나 마련했을가 슈샨보이
박목월 시인이 말년인 1970년대에 쓴 작품으로 구두닦이 소년을 칭하는 말이었다.
참으로 가슴이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발견된 작품은 193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두루 포함되어 있는데 창작 초기 에서 부터 중기를 거치며 역사적 격동기, 한국 전쟁 등을 지나 시인이 작고 직전까지의 창작 시편들이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필자는 어린 시절, 외가에서 오래 살았고 더욱이 박목월 시인이 돌아가시던 날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기에 이번 발견에 대한 기대와 감회가 새롭다.
박목월 시인 타계 후 45년 만에 세상에 공개되는 작품.자손으로서의 감회보다는 부끄럽지만 같은 시인으로서 이 일련의 과정들이 삶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드는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속담이 있다. ‘호랑이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사실 필자는 그 삶 이후의 남겨지는 것에 대해 별 미련을 가지지 않았다. 지금 살아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고 그 이후의 과정은 자신이 어쩌지 못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크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지만 다만 나를 알고 나를 아끼는 누군가가
있어서 또 그렇게 나를 기억함으로써 그런 이어짐이 가능하리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박목월 시인의 육필 원고가 온전히 보관되어진 것은 그의 아내이자 필자의 외조모이신
유익순 장로의 공이라고 생각된다.‘시인을 시인으로 살게 했고 또 시인으로 남게 한 아내’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그녀에 대한 기억들을 꼭 소개해보고 싶다.
이번에 더욱 가슴이 뜨거워지는 부분은 그의 육필 시작 노트이기에 시인의 창작, 첨삭,
수정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다.정말 감격스러운 일이다.장남이신 박동규 교수와 많은 한국의 학자, 문인들이 뜨거워지고 있는 이유 역시 그러한 것 이리라 생각한다. 긴 시간을 건너 다시 박목월 시인의 호흡을 느낄 수 있다는 것.
우리는 무엇을 남기기보다는 누구와 살아가고 있는 지를 되새겨야 한다는 생각이다.
‘나를 나로 살게 해 주고 또 나로 기억될 수 있도록 해 주는 누군가’가 있는지, 또 나
역시 그런 사람일 수 있는지……
<
김준철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