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계의 거목 오현경 선생님이 지난 3월1일, 88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는 비보를 접하면서 문득 2016년 마지막으로 뵈었던 선생님과의 만남이 생각납니다.

미국에서 반가운 분이 왔다고 약수동 자택으로 저를 불러 손수 점심을 요리해서 대접해주시고 오후에는 대학로 동숭아트센터 뒤편에 자리잡은 연극인들의 발음과 화술 연기 노하우 전수를 위해 사비로 개관한 ‘송백당’을 안내하시면서 “지난 3년간 송백당을 거쳐간 배우가 100명이 넘는다”고 어린애처럼 웃으시며 기뻐하시던 선생님이 생전에 본 마지막 모습이 되었습니다.

오현경 선생님! 생각해보면 선생님은 LA 연극인들을 무척이나 사랑하셨던 분이었습니다. 부인 윤소정 선생님과 함께 2~3년에 한번씩은 LA 한인사회를 방문하셨는데, 그때마다 생생한 고국 연극계의 소식을 전해주시고 때로는 극단들과의 가교역할도 해주셔서 저는 한국의 수준 높은 연극을 초청하여 한인사회에 소개하는 기쁨을 누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또한 LA 방문 중에 한인 연극인들의 공연이 있으면 꼭 찾아오셔서 축하해주시며 격려금도 주시고, 배우들의 발음을 위해 워크샵도 열어주셨던 자상하신 모습을 이곳 연극인들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오현경 선생님! 연극 인생 66년 동안 무대에서 활동하시며 대한민국연극대상 남자연기상, 한국문화대상 연극부문 대상, 서울시 연극상, 동아연극상, 서울연극제 남자연기상, KBS 연기대상 등 많은 상을 수상하시고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으로 활동하신 행복한 연극인이셨습니다.

선생님과 나눈 얘기 가운데 건강이 좋아지고 주변 여건이 조성되면 한미합작으로 정통해학극 ‘맹진사댁 경사’를 오현경/연출 에이콤/기획으로 LA 무대에서 올리자며 전무송, 이호재, 정동환 등 연극계 스타들과 LA 연극인들이 함께 무대를 만들면 뜻 깊을 것이라는 바램은 미완으로 남은 채 2023년 출연하신 마지막 유작 ‘한여름 밤의 꿈’ 속 마지막 대사처럼 “자, 저는 이만 갑니다.”를 남기고 먼 길을 떠나셨네요.

연극을 종교처럼 가슴에 품고 살았던 오현경 선생님! 이제 대한민국 연극은 자랑스런 후배들에게 맡기시고 7년 전 먼저 떠나신 윤소정 선생님과 함께 대학로 마로니에 거리와 LA 코리아 타운 밤하늘을 환히 비추는 큰 별이 되어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광진 문화기획사 에이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