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재주’는 바이든이 부리고 ‘돈’은 트럼프가 챙긴다(?)

2024-03-13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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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이 반길 희소식과 고개를 가로저을 나쁜 소식이 있다.

희소식은 미국인들이 경제가 잘 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반면 나쁜 소식은 유권자들이 모든 공로를 트럼프에게 돌린다는 점이다.

미국 경제는 바이든 집권 이후 저속 성장을 이어가며 전문가들의 침체 전망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아니, ‘저속 성장’이란 표현은 취소해야한다. 미국 경제는 벌써 1년 이상 선전을 거듭하고 있다. 실업률은 기록적인 저점 근처로 떨어졌고, 국내총생산(GDP)은 빠르게 증가했으며, 인플레이션은 수그러들었다. 일부 경제수치는 팬데믹 이전에 예상했던 것보다 양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인들은 잔뜩 찌푸린 얼굴로 지난 1년을 흘려보냈다. 미국 경제가 ‘경기 대침체’(Great Recession) 시기에 버금갈 만큼 나쁘다는 볼 멘 평가도 종종 제기됐다. 수치상으로만 보아도 당시의 경제상황은 지난 1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엉망이었다.

최근 몇 달 동안 경제가 각종 수치와 지수가 보여주는 그림과 얼추 맞아떨어진다는 대중의 인식이 확산됐다. 물론 경제를 장밋빛으로 보는 시각이 아직까지 그리 많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긍정적 인식은 폭을 넓혀갈 것이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자. 주말에 나온 월스트리트 저널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체 유권자의 31%는 지난 2년간 경제가 호전됐다고 답했다. 작년 12월에 비해 무려 10% 포인트가 늘어난 수치다. 마찬가지로 CBS뉴스, 유거브와 뉴욕타임스-시에나 칼리지가 지난 주 발표한 다른 서베이도 전반적인 경제상황과 응답자 개인의 재정상황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음을 보여주었다.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바이든의 재선 가능성이 탄력을 받을 수 있다. 버락 오바마도 경제상황이 호전된 덕에 2012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잘 나가는 경제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유권자들의 인식전환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바이든의 국정수행 지지도는 벌써 몇 달째 30% 후반에 머물고 있다. 바이든의 경제정책 지지율도 말뚝처럼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의 심기를 거북하게 만드는 응답자들의 반응은 따로 있다. 공화당 대통령후보 지명이 확실시되는 도널드 트럼프와의 일대 일 가상 맞대결에서 현역 대통령인 조 바이든이 뒤진다는 점이다. CBS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권자들은 지금의 경제보다 트럼프 시절의 경제상황이 더 좋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트럼프 집권 마지막 해의 실업률이 경기대침체 이래 최고수준에 도달했다는 사실은 까맣게 잊혔다.

트럼프의 정책이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었다는 응답이 바이드노믹스의 효과를 경험했다는 대답보다 두배 이상 많다는 뉴욕타임스-시에나 공동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재선에 성공한다면 둘 가운데 누가 물가를 끌어내리거나 올릴 것으로 보느냐는 질문에 유권자들은 2:1의 비율로 트럼프가 물가를 안정시킬 것이라는 견해를 보였다.

이건 상당히 충격적이다. 물론 전반적인 물가수준은 내려가는 법이 거의 없다. 얼마나 서서히 오르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여론조사 설문의 오류를 무시한다 해도 트럼프가 공약으로 내건 경제정책 아젠다는 인플레이션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러면 이쯤에서 경제와 관련된 그의 공약을 살펴보자.

미국에 들어오는 수입품 전체에 일률적으로 10%의 글로벌 추가 관세를 부과한다. (중국 상품에는 여기에 보태 60%의 수입관세를 추가로 적용한다). 전에 필자가 인용한 바 있는 네 건의 독립적인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관세’의 비용은 가격인상을 통해 대부분 소비자들이 부담했다.


불법 및 합법 이민을 축소한다. 트럼프는 서류미비 농업 인력의 상당수를 추방하고 계절 농업 노동자의 합법적 입국을 허용하는 비자프로그램을 폐기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노동력 공급이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

대체재원 없이 기업세 및 양도소득세를 인하한다. (기업세와 양도소득세의 최대 수혜자는 고소득층이다). 이 경우 연방적자 확대가 불가피하다. 트럼프의 팬데믹 전 기록으로 보아 연방지출 또한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연방준비제도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 원칙을 폐기한다. 정치적으로 독립된 미국의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을 유지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

바이든의 인플레이션 대응을 어떻게 평가하건 간에 (예컨대 필자는 바이든이 전임자의 정책 가운데 상당부분을 폐기하거나 뒤집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불만스럽다) 트럼프가 제안한 조치들은 하나같이 인플레를 악화시킬 것이다.

내 말을 믿지 못하겠는가? 위에 언급한 트럼프의 3개 공약을 분석한 투자금융회사 에버코어 ISI의 애널리스트들은 트럼프 재집권 시 (바이든이 재선에 성공한 경우에 비해) 인플레 압력을 상쇄하기 위해 높은 수준의 금리 인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마찬가지로 골드만삭스 이코노믹 리서치도 트럼프 2차 집권에 성공하면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되면서 인플레이션 리스크가 높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는 (기록적인 주식시장 강세를 포함해) 경제와 재정상태가 이제껏 지속적으로 개선된 것은 자신의 영향력 때문이거나 최소한 그가 재집권할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어이없는 주장이지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헛소리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이들은 트럼프의 임기 말년이 어땠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 환자들이다. 백악관에 재입성한 트럼프가 어떤 일을 벌이건 아랑곳하지 않을 자들이다.

이런 모든 상황은 언론인들의 각성을 촉구하는 자명종이 되어야 한다. 그들에겐 “미래를 결정지을 선택”에 관해 제대로 설명을 해주어야할 책임이 있다. 그와 동시에 유권자들에게는 올 가을 선거에서 누구를 국정의 사령탑에 앉혀야할지 신중하고도 냉철한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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