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남을 의식하는 실패자

2024-03-12 (화) 성소영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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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소영 임상심리학 박사의 강철 멘탈 클래스

2024년 2월 폭설이 쏟아진 강원도 발왕산에 있는 스키장에 왔습니다. 평창 올림픽이
있었던 장소라 감회가 새롭기도 하고 생전 처음 와 본 고국의 스키장이라 더욱 감동이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스키를 타다가 얼어 버린 몸을 녹이며 치즈 버거 대신 순대와
떡볶이를 먹을 수 있고, 후렌치 어니언 스프 대신 오뎅국을 떠 먹을 수 있는 이곳이 너무나 정 스럽 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신기한 광경이 눈에 띕니다. 형형색색 명품 스키 복장을 차려 입고 도시로부터 쏟아져 나온 이 개성 많은 사람들이, 막상 스키를 타는 모습은 모두 한결 같은 포즈로 똑같은 기술을 가지고 일률적으로 스키를 타고 있어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가지 않습니다. 마치 한 가지의 정답이 있어 그것만이 옳은 듯, 그것을 배우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인데 왠지 즐거워 보이지 않습니다.

제멋대로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지고 아름다운 자연과 어우러지며 즐거움으로 가득 찬 미국의 스키장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참 진지해 보입니다. 다시 볼 일 없는 타인과 혼자만의 경쟁을 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남에게 무시를 당하지 않는 것이고, 그러려면 남보다 더 잘해야 한다’ 라고 이렇게 열심히 경쟁하며 행복을 추구하고 살아가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가정 교육과 학교 교육을 통해 이렇게 배워왔습니다. ‘인생에서
성공은 성취해야 하고, 타인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하며, 항상 도전하고 자신을 좀 더
채찍질해야 하며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성공하는 사람들은 늘 최악을 준비하며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완벽하게 해내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그런 훌륭한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항상 최선을 다해 성실히 살아야 한다’ 고 말입니다. 그러다 보니 남들이 6시간을 잘 때 나는 5시간을 자야 하고, 남들이 이만큼 노력할 때 나는 그보다 두 배를 노력하는 것이 훌륭한 인생 철학이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훌륭한 행동 철학이 그리 훌륭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많이 느껴왔습니다. 피할 수 없는 인생의 역경을 겪을 때, 막상 이러한 행동 철학이 그 사람의
중심을 잡아 주기는 커녕 ,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발생 시키고 있다는 것을 제 치료 현장에서 종종 보아 온 것입니다. 즉, 무엇 인가를 실패했을 때 또는 타인에게 비판의 의견을 들었을 때, 대부분 자신에 대한 실망감과 자괴감으로 상대에 대한 심한 분노와 우울증을 겪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실패와 비판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인생의 불 만족을 느끼며 불행하게 살고 있는 경우들도 보게 되었습니다. 물론 인생의 비젼과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무시 받지 않기 위해 무의미한 승리에 집착하고 정말 의미 있는 것들은 놓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철저한 자아 비판과 완벽한 자기 관리를 통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는 것이 우리 심리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실 심리학 연구를 통해 알려진 바로는 자아 비판이 강하고 부정적인 사람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관대한 사람이 더 많은 것들을 성취해 나가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택사스 대학교의 크리스틴 네프 교수는 타인과의 경쟁에서 승리했을 때만 자신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람일수록 자기 자신에 대한 자신감이 낮고 매우 불안정한 심리를 가지고 사는 사람인 경우가 많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이 연구에서 승리하는 것에 집착을 하는 사람일수록 타인과의 경쟁에서 패배하거나 실패를 경험하게 되면 심한 자기 비하에 빠져 고통스러워 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비판적인 말을 하거나 부정적인 말을 하게 되면, 심하게 자신을 방어하려 하고 감정이 상하거나 상대를 공격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또한, 이런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도전에 부딪히게 되면 오히려 쉽게 포기하고 결국
낙오자로 서 의 삶을 살아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우리는 ‘올바른 경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하고 판단해 볼 겨를이 없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 세상이 가르쳐 준 그 경쟁 속에 빨려 들어가, 무시 받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게다가 자신이 이루지 못한 자신의 승리를 우리 자녀들에게 요구하고 너의 인생을 위한다는 말로 포장해 무의미한 경쟁의 대물림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이런 경쟁은 사회적 분리와 소외를 가져옵니다.

‘지면 무시 받는다’는 의미는 무의식적으로 상대와 적대 관계를 형성하게 되고, 협력 보다는 나의 승리와 안녕 만을 챙기고 피해 의식이 많은 이기적인 성향의 소유자가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진짜 경쟁에서 최후의 승리 자가 되기 위해서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가능합니다.

또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에서 소속감을 가지고, 많은 이들과 연결되어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이며 자아 비판적 태도가 강한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적으로 소외당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목표를 성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 같습니다.

또한 우리 자녀들에게도 가르쳐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을 지키는 것은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요. 남보다 더 갖고 남보다 더 잘 해내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수학 경시 대회에서, 테니스 시합에서, 학교 토론에서 지고 돌아온 아들 딸에게, 이번 학기 F를 맞아 재 수강을 해야 하는 자녀에게 여러분은 어떤 말을 해주고 계십니까? 혹시 “이기지 못할 꺼 면 때려 쳐!” 라는 말로 필요 없는 경쟁을 부추기고 모멸감을 주입해 피해 의식을 키우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이제는 더 이상 우리 젊은이들이 타인의 눈을 의식해 혼자만의 무의미한 경쟁을 하느라 아름다운 인생의 순간들을 놓치고 살아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 입니다.

ssung0191@yahoo.com

<성소영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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