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간수가 오면 나는 내 혀를 두꺼운 책 속에 감추어둔다

2024-03-11 (월) 김준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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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준철 시인의 한 문장의 생각

이 글은 김혜순 시인의 시집<날개 환상통> (문학과 지성사)에 실린 ‘10센티’라는 시의 한 줄이다.이 시집은 2019년 3월에 출간된 시집이다. 책장에서 우연히 눈에 들어와 다시 읽어 보았다. 참 쉽지 않은 시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하지만 어렵다는 것은 새롭다는 말도 될 수 있다. 읽을 때마다 새로운 해석과 새로운 영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집을 읽다가 다시 이것저것 검색하는데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K 문학’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그녀의 시집이 작년에 영문판으로 번역되어 출간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울러 미국 전미 도서 비평가 협회 상 시 부문과 바리오스 번역 부문 최종 후보(숏리스트)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미국에서 시인, 번역가로 활동하는 최돈미 시인이 번역해 지난해 출간되었고 앞서 지난해 말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시집 5권’에도 포함되었다고 한다.


앞서 바리오스 번역 부문 1차 후보에는 정보라의 ‘저주토끼’를 번역한 것으로도 잘 알려진 안톤 허가 옮긴 이성복 시인의 시론집 ‘무한화서’가 포함되기도 했다는 것이다.어느새 K 문학의 위상이 이렇게 올라갔다는 것에 글을 쓰는 필자도 어깨가 으쓱 올라갔지만, 반면 그 안에서 경쟁할만한 작품을 만들지 못하고 있음에 자책이 드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각설하고 근래 들어서 김혜순, 한강, 마영신, 이성복, 김숨 등의 작가들이 세계적 명성이 있는국제문학상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문학번역원의 사업비는 전년대비 20%나 삭감되었다는 소식도 접하게 되었다. 다행인 것은 번역원장이신 곽효환 시인께서 이러한 한국 문학의 세계화에 진심임을 잘 알기에 적은 예선에도 좋은 작품을 선별하여 지원 하시 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와서 위에 언급한 ‘간수가 오면 나는 내 혀를 두꺼운 책 속에 감추어둔다.’라는 싯구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필자의 눈에 이 문구가 걸린 것은 아마도 지금은 현 시대적 환경과 맞대어진 탓 이리라 생각된다.

현대의 많은 계층의 많은 사람이 이런 꼴이 아닌가 싶어서 하는 말이다. 이 시 전체를 아우르는 설명이나 시 전문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찾아보기 바란다. 이 자리에서는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이시대 ‘혀의 부재’ 를 잠시 생각했으면 한다.사회, 경제, 정치를 포함한 문화 예술계 안에서도 ‘혀의 부재’는 만연한 것 같다.

오래전, 한국의 경우 타의 적 눌림으로 인한 침묵이 이어졌었다. 강제적 외압에 의한 일이었다.그리고 얼마 전부터는 자발적 침묵으로 변했다. 이기적 사회의 고의적 암묵으로 이루어진 무관심의 침묵이 된 것이다. 하지만 근래에는 계층 별, 나이 별, 세대 별을 넘어 성별, 색깔 별, 이념 별 등등 온갖 구별 법으로 타의 적, 자의적 형태의 침묵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단순한 침묵이 아닌 반대편에 서 있는 이들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난 또한 선을 넘고 있다.

예를 들어 댓글 폭력이 그러할 것이다. 전후 사정은 무시하고 닥치는 대로 비수를 폭탄처럼 퍼붓는 행태는 말하지 않아도 아시리라 생각된다. 일반적 상식선의 이해나 관용, 협력과 화해는 그 틈에서 찾아볼 수가 없는 것이 더욱 걱정스럽게 한다. 중용의 마음으로 양 끝의 이들을 저울질해 줄 어른이 이 사회에 없다는 것이 또 큰 문제이다.


그것은 이민 사회에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1세대와 2세대의 단절이 그러하다. 수십 년을 이어오는 1세대 단체 중에는 이런 단절로 인해 더 어쩌지 못하고 어려움을 호소하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만나게 된다.

이제 우린 생각하고 결단해야 한다. 혀의 논리가 아닌 몸의 언어로 더 가까이 더 적극적으로 끌어안고 소통해야 한다. 우리 사회가 어른을 만드는 일을 해야 한다. 이미 멀리 떨어진 건너편 이들의 소리를 경청하고 또 맞은 편에서는 말의 무거움을 알고 터져 나오는 소리를 줄이는 작업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다.

부디 자만을 버리고 타인을 들여다보며 말의 책임을 느껴보길 바란다.

<김준철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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