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녀들’과 ‘난쟁이’

2024-03-06 (수)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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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예술도 그렇다. 오랜 인류 예술사에서 제도권 밖의 아티스트들은 인정받지 못했고 작품과 함께 이름도 사라졌다. 대표적인 ‘패자’들은 여성, 흑인, 그리고 나치 시절의 유대인 작가들이다.

2014년 영화 ‘빅 아이즈’는 아내의 그림을 남편이 그린 것으로 속여 유명해진 1950년대 미국 화가부부의 실화를 그렸다. 글렌 클로즈가 골든글로브 주연상을 수상한 2018년 영화 ‘더 와이프’는 평생 아내가 쓴 소설로 마침내 노벨문학상까지 받게 되는 남편의 비화를 다뤘다.

두 영화는 1950~60년대만 해도 여성이 작가로 나서면 주목받지 못하기 때문에 커튼 뒤에 숨어야했던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보여준다. 불과 70년 전인 20세기에도 그랬으니, 수천년 역사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 화가, 작곡가, 문학가들이 사장되었을까.


심지어 과학계에서도 여성의 업적은 무시되거나 남자들이 가로챘다. 1962년 DNA구조를 규명한 공로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수상한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여성과학자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찍은 DNA 이중나선구조 사진을 도용해 성공했음을 나중에 시인했다.

여성의 재능이 소실된 역사가 인류 보편적 성차별에 의한 것이었다면, 흑인이 주류 예술계로 진입하지 못한 이유는 노예제라는 미국역사의 나쁜 유산과 인종차별의 결과다. 다행히 2020년 조지 플로이드 사망으로 촉발된 BLM(흑인생명도 소중하다) 운동 이후 흑인예술에 대한 발굴과 재평가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지만 아직도 충분하지 않다고 문화예술계는 주장하고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른 케이스가 유대인 예술가들이다. 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은 1차 대전 이전까지만 해도 차별과 박해가 있긴 했어도 활동에 제약을 받지는 않았다. 멘델스존과 말러, 피카소와 모딜리아니와 샤갈이 모두 유대인이었던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러나 나치정권이 들어서자 이야기는 달라진다. 생과 사의 빗금 사이로 많은 예술가들이 독일과 폴란드를 탈출해 제3국이나 미국으로 망명했다. 유럽을 떠날 수 있었던 사람들은 그래도 다행이었다. 훨씬 더 많은 예술가들이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았다.

문화예술의 불모지였던 미국이 2차 대전 후 세계예술의 중심지로 올라선 것은 이 유대인 망명자들 덕분이었다. 마르셀 뒤샹, 마르크 샤갈, 이브 탕기, 막스 에른스트, 만 레이, 앙드레 브르통, 한나 아렌트 등 미술사의 큰 인물들이 미국으로 건너왔고, 아인슈타인과 미스 반 데어 로에는 미국의 과학과 건축에 지대한 공헌을 남겼다.

작곡가 중에는 아르놀트 쇤베르크, 알렉산더 폰 챔린스키, 쿠르트 바일, 에리히 코른골트 등이 건너왔다. 안타까운 것은 독일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이들의 음악이 고향을 떠난 후에는 거의 잊히다시피 했다는 사실이다. 다행히 21세기 들어 이들의 음악을 복원시키려는 시도가 관심과 호응을 얻고 있는데 그 최전방에 선 사람이 제임스 콘론 LA오페라 음악감독이다.

콘론은 유대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을 발굴하는 데 앞장서왔다. 2007년 LA오페라에서 ‘회복된 목소리’(Recovered Voices) 시리즈를 시작한 그는 챔린스키의 ‘난쟁이’, 프란츠 슈레커의 ‘낙인찍힌 자’, 빅토르 울만의 ‘깨어진 항아리’ 등을 공연해 음악계와 유대계의 주목을 받았으며 지금도 이런 오페라들을 세계 각국에 소개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지난주 LA 오페라가 더블빌(두개의 짧은 오페라를 함께 공연하는 것)로 개막한 ‘하이웨이 1, USA’와 ‘난쟁이’ 역시 제임스 콘론의 프로젝트다. ‘하이웨이 1’은 흑인작곡가 윌리엄 그랜트 스틸(1895-1978)의 오페라로, 미국남부 흑인 가정의 형제간 갈등을 그린 이 작품은 1940년대에 작곡했으나 1963년에야 초연됐고 이내 음악계에서 잊혔다.

특별했던 건 챔린스키의 ‘난쟁이’(The Dwarf)였다. 이 오페라는 챔린스키의 자화상이라고 해도 좋은 작품이다. 키가 작고 못 생겼던 그는 1900년 운명의 소녀를 만나는데 훗날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가 된 알마 쉰들러였다. 자신에게 작곡법을 배우던 알마와 사랑에 빠졌지만 그녀는 챔린스키를 ‘빈에서 가장 못생긴 사내’라 놀렸고, 외모에 대한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했던 그는 그 아픔을 20년 후 이 단막 오페라에 담아냈다.

아름다운 스페인 공주에게 생일선물로 보내진 기형의 난쟁이, 단지 놀이감에 지나지 않지만 공주의 호감을 사랑으로 착각한다. 하지만 처음으로 거울을 보고 자신의 추한 모습에 놀란 그는 너무 상심하여 비극적 죽음을 맞는다는 스토리다. 추남과 미녀의 사랑을 소재로 한 작품은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 ‘노트르담의 꼽추’ ‘오페라의 유령’ 등이 있지만 ‘난쟁이’는 그보다 훨씬 더 내적 상처를 깊게 다룬 순수 비극으로 아리아와 오케스트레이션이 절절하다.

이 공연에서 무엇보다 좋았던 건 17세기 스페인 화가 벨라스케즈의 유명한 그림 ‘시녀들’을 모티프로 삼은 무대였다. 어린 공주보다 난쟁이 시녀가 화폭 전면에 배치된 이상한 그림 ‘시녀들’은 훗날 많은 화가들이 모방작을 남겼을 정도로 화제의 작품인데 오페라 ‘난쟁이’는 이 그림 속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궁정 세트와 의상, 무대를 연출한다. 의상은 한인 디자이너 린다 조의 작품. 3월17일까지 4회의 공연이 남아있다.

아직도 숨어있을 보석같은 작품들이 더 많이 발굴되어 무대에 오르길 바란다.

<정숙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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