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니카라과에서 온 소년

2024-02-28 (수)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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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가 ‘무사히’ 돌아왔다. 이 칼럼에 가끔 등장하는 줄리는 중남미의 가난한 나라 니카라과에서 여성과 아이들 돕는 일을 18년이나 꾸준히 해온 친구다. 니카라과를 제집 드나들 듯 했던 그녀가 그런데 지난 몇 년간은 자주 가보지를 못했다. 다니엘 오르테가 독재정권이 들어선 후 언론과 종교계, 비영리단체들에 대한 탄압과 추방이 계속되고 있어서 자칫 그녀의 작은 사역에도 영향이 미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올해 초, 아무래도 1년 반 만에 한번 다녀와야겠다고 나섰을 때 주위에서는 걱정들을 많이 했다. 그래서 무사하다는 신호로 매일 페이스북에 니카라과에서의 근황을 올리고, 만일 포스트가 며칠 올라오지 않으면 무슨 일이 난 걸로 알고 찾아 나서기로 했던 것이다.

그런 줄리가 한 달여 만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혼자가 아니라 ‘혹’을 하나 달고 왔다. 알민톤이라는 이름의 열아홉 살 청년, 영어도 거의 못하고 미국에 일가친척 하나 없는 혈혈단신 젊은이를 데려온 것이다.


언젠가 줄리가 미국에 너무나 오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어서 초청수속을 밟고 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나는 펄쩍 뛰었다. 어쩌려고 함부로 외국아이 재정보증을 서느냐, 미국 와서 잘못되면 그 책임을 어떡할거냐, 걔 데려오면 다른 아이들도 미국 오겠다고 줄을 설 텐데 대책이 있느냐… 면서 뜯어말렸던 것이다. 그때 줄리가 오래전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3년 전이던 2011년, 줄리는 바닷가마을 엘 트란시토에서 아트센터(ETCA)와 도서관을 짓고 있었다. 에트카에서는 동네여자들에게 재봉기술을 가르쳐 인형과 액세서리를 만들게 하고, 바로 옆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읽고 놀고 공부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혼자 힘으로 무거운 건축 재료들을 실어 날랐고 벽돌 하나씩 올려 건물 틀을 갖춰나가던 고된 나날이었다.

그날도 자재를 사러 고물 픽업트럭을 몰고 수도 마나과에 갔다. 그런데 신호등에 멈춰 섰을 때 앞차가 손짓 하길래 내려서 보니 차에서 기름이 줄줄 새고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간신히 물어물어 바디샵까지 갔지만 수리에 이틀이나 걸린다는 소리를 듣고는 또 망연자실했다.

다행히 엘 트란시토까지 하루 딱 두 번 다니는 버스가 있다고 했다. 다시 물어물어 정거장을 찾아갔고, 땡볕에 한참을 기다려 일명 ‘치킨버스’라 불리는 마을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치킨버스는 차 안에 닭들이 돌아다니고 온갖 잡상인이 올라와 호객행위를 하는 낡은 버스, 정거장에 설 때마다 운전수와 차장이 세월아 네월아 놀다 떠나는 버스를 말한다.

직접 운전하면 1시간 반 거리를 3시간 넘게 걸려 엘 트란시토에 도착했을 때, 해는 뉘엿뉘엿 지고 온몸은 녹초가 돼있었다. 그런데 웬일인지 사람들이 모두 밖에 나와 서성이고 있었다. 동네에 전기가 다 나갔다고 했다. 온몸이 움직이기 힘들 정도로 피곤했던 줄리는 전기고 뭐고 숙소로 올라가 쉴 생각뿐이었다. 그 순간 엄청나게 큰 경보가 울리기 시작했다.

“한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언덕 위로 대피하라”는 경보였다. 동일본대지진으로 일어난 거대한 쓰나미가 태평양을 건너 니카라과 해변으로 닥쳐오고 있으니 빨리 피하라는 소리였다. 사람들이 난리와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다들 차를 타거나 뛰어서 언덕 위 학교와 교회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줄리는 도망은커녕 손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곧이어 어둠이 내려앉았고 정전이 된 마을은 쥐새끼 한 마리 없이 칠흑 어둠에 휩싸였다. 피난경보가 계속 울려댔다. 여기서 꼭 필요한 것만 들고 가야한다면 무엇을 챙길까, 아무리 생각해도 컴퓨터 한 대 외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하지만 너무 지친 나머지 그조차도 포기한 채 줄리는 그냥 앉아있었다.


쓰나미가 오면 어떡하지? 이대로 죽는건가? 죽는다 해도 더 이상 도망은 못 치겠어. 하나님이 오라시면 그냥 가야지… 그 순간 처음으로 ‘절대고독’이 몰려왔고, 그런 한편 이런 때 일어날 수 있는 약탈과 범죄에 대한 두려움으로 식은땀이 흘렀다.

바로 그때 온통 깜깜한 바깥세상 멀리서부터 자동차 헤드라잇 두 줄이 내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도둑인가? 강도인가? 어디로 숨지? 가슴이 두근거리는데 차가 바로 에트카 앞에 섰다. 그리고 “도냐 줄리, 도냐 줄리!”하는 외침이 들려왔다. 깜짝 놀라서 내려가 보니 에트카에서 일하는 엘리자베스가 발을 동동 구르며 빨리 함께 차를 타고 피난가자고 했다. “어떻게 내가 혼자 남았는지 알았느냐?”고 묻자 아들 알민톤이 피난지를 돌아다니다가 도냐 줄리가 없다며 빨리 데려와야 한다고 엉엉 울더란다. 그래서 그녀를 데리러 차를 타고 내려온 것이었다.

너무 감격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지던 순간, 계속 울려대던 경보가 그쳤다. 그리고 이어서 “쓰나미 위험이 해제됐으니 다들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메시지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이제 피난을 안 가도 되었지만 그런 해프닝이 없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목숨을 건’ 아이와 엄마의 사랑에 눈시울이 뜨거워진 사건이었다.

그때 여섯 살이던 아이가 열아홉이 되었고, 늘 미국에 오고 싶다고 해서 초청하게 되었다고 했다. 나 같아도 그랬겠다 싶은 마음이 들자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번에 가서는 그때 알민톤과 함께 매일 와서 살다시피 했던 아이들을 도서관 직원으로 채용했다고 한다. ‘그때와 지금’ 사진을 보니 천진한 아이들이 처녀들이 된 모습이 감격스럽다. 무슨 일이든 꾸준히 하면 한 바퀴 풀 서클을 돌아 열매를 거두게 된다. 자랑스런 나의 친구 줄리! 모쪼록 알민톤이 미국에서 꿈을 이루기 바란다.

<정숙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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