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놀라운 성량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틱함과 편안함을 동시에 느끼게 해주는 소프라노 Hera Hyesang Park!

2024-02-27 (화) 박기한 음악 칼럼니스트
크게 작게

▶ 박기한의 음악이 있는 인생 2 막 혹은 3 막

이번에는 어떤 음악을 독자들과 함께 탐구해 볼까...? 늘 고민이 되는 문제가 아닐 수 없다!사실 다른 음악과 아티스트를 돌아보는 글로 정해서 막 글을 쓰려하기 직전에 급하게 여기 소개하는 우리나라가 배출한 또 한 명의 자랑스러운 소프라노 Hera Hyesang Park(박혜상)의 이야기로 급 선회하게 되었다.

그녀의 Deutsche Grammophon에서 나온 2024년 신작 [Breathe]를 듣게 되고 나서는 곧바로 소개를 꼭 해야 할 것 같은 '즐거운 의무감'에 사로 잡히게 되어서 이다. 그만큼 그녀와 그녀의 새 앨범의 매력은 필자에게는 거의'충격적'으로 다가왔다!

한겨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자의 질문 중 서양 오페라를 하면서 동양인으로서 핸디캡 같은 게 없었느냐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대답을 했다. “언어 표현에는 장벽이 있는데 감정 표현에는 강점이 있어요. 한국인 특유의 ‘한’과 ‘흥’이 내게도 흐르는 거겠죠.
그래서 인지 내가 부르는 아리아엔 뭔가 다른 게 느껴진다 고들 합니다...!”


정말 그렇다...! 뭔가 정말 다르다...! 감정 뿐만 아니라 목소리 그 자체, 성대의 구조 자체에도 서양인들과는 뭔가 다름이 있는 건 아닐까...?. 우리에게는 주변에서 들리는 흔한 대화에서 들을 수 있는 목소리 같은 친숙하고 편안한 톤으로도 느껴질 수 있다. 박혜상만이 가지고 있는 터져줘야 할 때는 폭발적으로 터져줄 수 있는 놀라운 성량을 바탕으로 한 드라마틱함과 함께 말이다...!

다시 말해 다이나믹 레인지가 놀라울 정도로 넓다는 것이다.그런 특성은 신작 앨범 [Breathe]의 첫 곡 에서 부터 극명하게 드러난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온전히 남아있는 기록된 음악, '세이킬로스의 비문'을 가사로 했다는 호주의 작곡가 Luke Howard의 마음을 사로잡는 매력적인 'While You Live' 라는 곡으로 앨범은 시작되는데 느리게 연주되는 오케스트라와 속삭이듯, 한탄하듯 나오는 낮은 숨소리 효과음, 그리고 박혜상의 아름다운 목소리로 빌드업이 되다가 점점 고조되어 간다.

3분이 넘어가는 시점에 터져나오기 시작하는 목소리는 살짝 소름이 돋을 정도로 짜릿함을 준다! 그 뒤를 잇는 트랙은 폴란드의 대표적 현대 음악 작곡가 Henryk Górecki의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유대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쓴 시종 비통하고 어두운 느낌의 '교향곡 3번'의 2 악장 이다.

이처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생소하다고 할 수 있는 곡 들 (Henryk Górecki의 '교향곡 3번'은 90년대 초반 클래식 음악 계에 꽤 화제가 되었던 소프라노 Dawn Upshaw와 지휘자 David Zinman이 함께했던 레코딩으로 어느 정도는 알려진 곡이라고 하지만...)을 초반에 포진 하였다 는게 그녀의 아티스트로서의 자신감과 클래식 음악의 메이저 레이블인 Deutsche Grammophon의 이 아티스트에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막상 들어보면 곡자체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과 더불어 이 곡들 만큼 박혜상의 깊이 있는 음색과 독특한 음악성, 그리고 넓은 다이나믹 레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곡들도
흔치 않을 듯해서 여러모로 기가 막힌 선곡이었다고 본다!

그 뒤를 이어서는 Carl Orff의 장엄하고 긴장감 넘치는 합창 부분으로 유명한 'Carmina
Burana'중 잘 알려진 아름다운 소프라노 독창 부분인 'In trutina'로 이어지는데 이 앨범을 들을 때 가장 먼저 이 곡부터 듣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앨범 내내 흐르는 거의 '신성함'이 느껴지는 분위기를 가장 편안하게 대변해주는 트랙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신성함'을 대변하는 또 하나의 강력 추천 트랙이 있다...! 바로 Verdi의 세익스피어의
비극을 오페라로 옮긴 'Othello'의 수록곡 'Ave Maria, piena di grazia'이다. 마치 주문을
외우는 듯한 기도 문이 낭송 되며 이어지는 아름다운 멜로디는 필자로 하여금 몇 번이고 이 곡을 반복하여 재생하게 만들었다.


그밖에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수록곡은 한국 작곡가 우효원의 Requiem aeternam (어이가리)이다. 2020년에 발표했던 첫 앨범 [I Am Hera]에서는 나운영과 김주원의 작품을 실었던 박혜상은 이번 두 번째 앨범에서도 한국의 작곡가를 위한 자리를 마련하였다. 박혜상 본인이 자신의 강점이라고 언급했던 바로 그 한국인 특유의 ‘한’의 정서가 지극히 한국적인 악기 아쟁 연주와 함께 은은히 퍼져 나온다.

이렇듯 이제 고작 두 번째 솔로 앨범을 발표하는 레코딩 경력이 오래되지 않은 성악가의 앨범치고는 과감하고 야심 찬 선곡 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타이스의 명상곡'이라는 제목으로 더욱 잘 알려진 Massenet (마스네)의 오페라 'Thaïs'의 'Ave Maria, gratia plena'와 Delibes (들리브)의 오페라 'Lakmé' 중 'Flower Duet' 등등 같은 안전한 선택인 잘 알려진 곡도 잘 안배를 하고 있다.

박혜상이라는 아티스트를 소개하면서 당연히 그녀의 2020년도 Deutsche Grammophon
데뷔 앨범인 [I Am Hera]도 함께 추천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음반이라는 매체에 그보다 앞서 인 2019년 최초로 담겨지게 된 중국계 미국 감독 Lulu Wang의 영화TheFarewell’의 사운드트랙도 꼭 추천하고 싶다.

그 사운드트랙에서 박혜상은 감독의 부탁으로 이탈리아 고전 가곡 ‘카로 미오 벤(Caro Mio Ben)’을 불르게 된다. ‘사랑스러운 나의 연인’이라는 뜻의 이 노래는 음악 교과서에 실려서 실기 평가 곡 으로도 친숙한 곡이지 않나...! 이 레코딩에서 정말 여태 까지 듣던 이 곡의 다른 레코딩들 과는 다른 차원이 느껴지는 이 박혜상 이라는 소프라노의 재능을 다시금 전율이 느껴지도록 확인하게 된다!

1988년생으로서 올해 만 35세인 아직도 한참인 그녀가 두 번째 앨범 만에 성숙미의 정점에 서서 K-클래식 계의 새로운 에이스로 부상 한 것에 축하를 보내고 앞으로의 행보를 기쁜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박기한 음악 칼럼니스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