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많이 오던 작년 9월의 어느 새벽, 부친께서 임종 하셨다. 병원에서 몇 달을
고생하셔서 수척해진 손을 잡고 온 가족이 울음을 터뜨렸고 마음 아파했다. 아버지는
조문객들의 인사를 사진 속의 환한 미소로 답하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지난 20년 동안 많은 분들의 임종을 보고 그 가족들의 마음을 다독여 주는 일을 했지만
이런 커다란 상실 앞에서 나는 심리학 박사가 아닌 그냥 아버지를 갑작스럽게 잃은
사람의 모습일 수 밖에 없었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많은 환자 분들이 지난 몇 해 사이 갑작스런 병으로 떠나갔고
내 주변의 지인 분들도 아파지시거나 임종을 하셨다. 중년의 길목에 들어서서 인생의
하향 선을 걷는 것도 서글픈데 갈수록 늘어나는 나잇살과 전에 없던 주름은 노안을
불구하고 점점 더 뚜렷이 보인다. 거울은 왠만하면 안 보게 되는데 고개를 돌려 뉴스를
보면 세상은 질병과 전쟁, 기후변화에 따른 재해와 사고들로 혼돈과 상실의 시대를 이어 나가고 있다.
어려서 듣던 “말세네 말세야” 하던 어르신들의 말이 이제는 내 입에서 절로 나온다. 범죄와 사기가 만연해 사람을 믿기가 점점 어려워져 가는 지금은 보이스 피싱 전화 한통으로 속아 전 재산을 잃기도 하고, 여차하면 건강에 적신호가 들어오기도 하고, 해가 지날수록 우울증과 불안함의 지뢰밭을 걷는 느낌이다.
중년은 어쩌면 외로움이 당연히 함께 하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젊었을때 상상하던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도 이쯤 되면 이미 깨 진지 오래고, 유지 하고 있는 현실에 감사하며 잃어 버린 꿈과 희망,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상실을 마주하고 하루 하루를 마감한다. 자녀와의 관계도 이제는 마음 같지 않다.
나는 한다고 하며 “사랑과 희생”으로 대했 건만 아이의 눈에는 자기중심적이고 고집만 앞세운 부모만 보인다. 엇나가는 자녀의 모습에 우리는 아예 삶에 대한 회의가 느껴지게 된다. 정신없이 이렇게 지친 몸을 이끌고 한 해를 보내고 나니 다시 한해가 시작되었다.
새해라고 생각하니 어쩌면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문득 생긴다.
이번 해는 살을 좀 빼고 싶다, 돈을 더 벌어보고 싶다, 술 담배를 끊어 보고 싶다,
아이들에게 더 잘해주고 싶다, 더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 직장에서 인정 받고 싶다 하며“ 싶다의 늪”에 빠지기도 하지만 작심 삼일 이라 더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처음 가졌던 마음으로 1월 한 달을 넘기기 조차 어렵다.
그리스 신화에는 시시푸스라는 남자가 나오는데 신의 노여움을 사 지옥에 갇혀 형벌을
받게 된다. 그가 집채 만한 바위를 있는 힘을 다해 산 정상으로 겨우 밀어 올려 놓으면
바위는 다시 굴러 내려오는데 이것을 영원히 반복하는 이 형벌은 끝없는 노력을 하지만 성과를 얻지 못하는 노고와 고난을 비유하는 표현으로 쓰이며 “헛된 희망”의 상징이다.
이 시시푸스는 연말이면 어김 없이 우리의 마음속에 나타나 말한다. “다이어트, 성공할수 있어, 운동을 더 할 수 있고, 돈 도 더 벌 수 있어.” 하지만 1월 중순에서 2월이 되면 우리들 중 반은 추진력을 잃고 주저 앉고 만다. 혹자는 이것을 “False-Hope Syndrome (헛된 희망 신드롬)” 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시시푸스의 부추김은 어려운 변화를 도전해 이루기 위해 꼭 필요한 첫 걸음이다.
결심과 각오 없이는 절대로 변화를 이룰수 없다.
결심이 잘못 된것이 아니라 변화를 추구하는 방법과 현실의 환경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더 높다. 연말마다 우리속에서 깨어나는 시시푸스는 어쩌면 긍정적인 변화를
염원하는 우리 깊은 마음속에서의 울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힘든 가운 데서도 의지를 가지고 버텨내고 이겨내는 사람들은 결국 해내고 만다. 인간은 노력으로 어떠한 변화도 이룰 수 있는 존재다. 그동안 해오던 나쁜 습관을
버리거나 좋은 변화를 이루는 것은 마치 스키나 수영을 배우는 것 처럼 처음에는 어렵고 어색하더라도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익숙해지고 삶의 일부로 만들 수 있다.
어른들도 인생이 힘들지만 아이들과 청소년들은 유래 없는 아동 정신 질환의 대유행
시기를 겪고 있다. 우울증, 불안증, 스트레스, 외로움, 약물 중독과 자살 시도는 해마다
심해지고 있다.
최근 많은 청소년들은 긍정적인 미래 상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은 세상에 대해 절망적이고 암울하게 느끼고 성적에 대한 부담감, 부족한 휴식과 학업에서 오는 번아웃, 왕따, SNS의 폐해 등에 대한 심리적인 무게감을 느끼며 하루 하루를 지낸다.
부모는 다음 세대에게 희망과 긍정의 바톤을 전달해 줄 의무가 있다. 바톤을 주려면
이것을 받으려는 손이 있어야 하는데 무너진 관계는 이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부모는 자녀에게 사랑을 주기 전에 스스로 건강한 자아를 찾아야 한다. 부모의 건강하지 못한 세상 관과 부적절한 욕심은 자녀를 타성에 젖게 만들고 이유도 모르는 번아웃으로 인한 낙오자로 만든다. 부모는 자녀의 성적보다 그들의 올바른 가치관 성립과, 건강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중년의 이슈로 돌아와서 미국 보건 총감은 2023년 5월 공중 보건 비상 대책에 대한 발표를 했다. 질병과 위생의 비상사태가 아니라 외로움과 소외 에서 오는 다양하고 심각한 문제에 대한 이슈를 검토했다. 최근 연구 결과에 의하면 미국의 성인 중 반이 심각한
“외로움”을 경험하고 있으며 이것은 많은 인구의 건강과 지역사회의 유대와 안전에
해악이 된다고 밝혔다.
어떤 대책이나 해결을 위한 지침은 아직 발표되지 않은 상황이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까이에서는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 가족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만드는 노력을 하고 주변의 친구와 이웃을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소통하고 따듯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한편 스스로 우울증과 분노 장애에 시달린다면 만사 제쳐 놓고 스스로의 건강을 회복 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2024년은 청룡의 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십이지 신과 띠에 별로 큰 의미를 느끼지는
못하지만 용이라면 무언가 진취적인, 용기와 도전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막연히 어떤
특별한 행운이 따를 것 같기도 하고 기운이 넘치는 새로운 시작과 성장의 기회가 기대
되기도 한다. 많은 분들이 작년에 겪었던 어려움과 상실을 뒤로 하고 어쩌면 새해에는
우리에게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지 않을 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럼 나는 긍정적인 성장을 위해 새해를 어떻게 맞아야 할까?
첫 번째로, 나는 긍정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자문해야 한다. 나는
긍정적인 단어를 많이 알고 있는지, 그리고 긍정적인 단어를 자주 쓰는지 확인해본다.
혹시 나의 말투에 부정적인 톤이 많이 들어 있지는 않는지 확인한다. 같은 상황에서 “아 귀찮어” 라고 하지 않고 “어렵지 않으니 할 수 있다”로 말하고, “힘들어” 라고 나오는 말을 “괜찮다”로 바꿔 쓴다.
어차피 불평해도 별로 바뀌는 건 없으니 일단은 긍정적인 톤으로 바꾼다.
두 번째로, 긍정적인 것에 집중하는 버릇을 들인다. 현대인들은 부정적인 것에 대단히
예민해 있다. 하지만 거의 모든 상황은 동전의 양면처럼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 긍정의
면을 보는 것을 습관을 들이면 몸에 독으로 들어가는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세 번째로, 감사함을 잊지 않는다. 우리는 모두 쉽게 분노하고, 슬퍼하며, 불안해 한다.
하지만 사실은 우리에게 무한하게 많은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할 일들이 있다.
우리가 어떤 감정을 가질지는 사실은 우리의 결정에 달려있다. 감사한 마음은 방탄 조끼 같아서 우울 감과 불안함으로 부터 보호해주고 의미 있고 만족스러운 삶으로 인도해 줄 수 있다.
새해에는 아무쪼록 건강하시고 숙원하시던 좋은 일을 모두 이루시길 바랍니다.
임상심리학 박사 저스틴최.
(855)614-0614
drcho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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