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끊임없이 계속되는 루저의 패배

2024-02-20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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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루저 도널드는 자기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는 너무 많이 이겨 “이기는 것이 지겹게 될 것”(sick and tired of winning)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는 그 후 2016년 대선에서 단 한 번 이겼다. 그것도 총 유효표에서 300만 표 지고도 18세기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낡은 선거제도 덕이었다.

그리고는 2018년 중간 선거에서 지고 2020년 대선에서 지고 2021년 조지아 연방 상원 의원 보선에서 지고 2022년 중간 선거에서 또 졌다. 그가 진 것은 선거에서만이 아니다. 그는 E 진 캐럴이 90년대 자신을 성추행했다며 낸 소송에서 져 500만 달러를 배상하라는 판결을 받았고 그 후 그녀를 모욕했다 다시 피소돼 이번에는 8,300만 달러를 물어주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들 패배보다 더 그의 가슴을 아프게 했을 판결이 지난 주 나왔다. 뉴욕 법원의 아더 엔고론 판사는 뉴욕주 검찰이 루저 도널드가 재산 가치를 의도적으로 부풀리는 방식으로 사기 행각을 벌여왔다며 제기한 민사 사기 재판에서 루저 도널드는 4억5,000만 달러의 벌금을 뉴욕 주정부에 납부하라고 판시했다. 거기다 루저 도널드는 앞으로 3년간, 그의 아들들은 2년간 트럼프 조직 일에 관여할 수 없으며 이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을 감시할 특별 감시관까지 채용할 것을 명령했다.


엔고론 판사가 이처럼 천문학적 액수의 벌금을 때린 것은 루저 도널드의 사기 행각이 오랫동안 광범위하게 이뤄졌고 이를 입증할 증거가 뚜렷한데도 루저 도널드가 말도 안되는 변명으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엔고론 판사는 판결문에서 “4년간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이 인정한 것이라고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트럼프 타워 펜트하우스의 면적을 3배로 부풀린 것뿐”이라며 “그들의 완전한 참회와 후회의 결여는 병에 가깝다”고 밝혔다.

루저 도널드가 돈을 번 수법은 잘 알려져 있다. 자기 재산의 가치를 부풀려 은행과 투자가들로부터 돈을 끌어들인 후 그 돈은 자기가 챙기고 회사는 파산 신청을 해 빚을 터는 것이다. 그를 상대로 지금까지 걸린 4,000건의 소송과 6번의 파산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의 말대로 부동산 가치에 대한 감정은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 그러나 보통은 1만 스퀘어피트짜리 펜트하우스 크기를 3만 스퀘어피트라고 수많은 문서에 허위로 기재하지는 않는다.

사실 루저 도널드가 진 재판은 이것만이 아니다. 2020년 대선에서 진 후 그는 자기가 근소한 차이로 진 주 선거는 모두 부정이 개입됐다며 이를 무효로 해달라는 소송을 수없이 제기했으나 모두 패배했다. 이들 판결을 내린 판사 중에는 민주당 성향도 있고 공화당 성향도 있다. 누가 봐도 말이 안되는 주장을 하기 때문에 그의 편을 들어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는 것이다. 그가 재판마다 판판이 지는 것은 아무 말이나 막해도 그냥 넘어가는 정치판과 달리 재판에서는 증거라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것은 민사 재판 판결이었지만 포르노 배우와의 스캔들이 터지는 것을 막기 위해 돈을 주고 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뉴욕주 검찰이 기소한 사건에 관한 재판이 올 3월 열리는 것을 시작으로 2020년 대선 결과를 조작하려 한 혐의로 조지아주 검찰이 기소한 사건은 애틀란타, 국가 기밀 문서를 밀반출하고 돌려주지 않은 혐의 재판은 플로리다, 2020년 대선에서 지고 폭도들을 선동해 평화적 정권 교체를 방해하려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은 워싱턴 DC에서 열릴 예정이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들 재판만으로도 지쳐 나가 떨어질텐데 루저 도널드는 대통령에 출마해 전국을 누비며 선거운동까지 하고 있다. 그의 열렬한 지지자들은 그가 이들 재판에서 모두 이기거나 대통령이 돼 재판 자체를 무효화시킬 것으로 굳게 믿고 있지만 지금까지 그의 선거 성적표나 재판 결과를 보면 이는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보인다. 하긴 루저 도널드나 그 지지자들이 언제 근거를 가지고 사리를 판단한 적이 있기나 했는가.

지금 여론 조사로는 루저 도널드가 약간 우세한 것으로 나오지만 1984년 이후 한번 빼고 모든 대선 결과를 맞춘 앨런 릭트먼 교수는 올 대선은 바이든의 승리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했다. 그는 2016년 대선 때 드물게 루저 도널드가 승리할 것으로 전망한 사람이다. 아직 대선까지 긴 시간이 남았고 결과는 알 수 없지만 루저 도널드의 공허한 약속과는 달리 2016년 이후 지난 8년은 끊임없는 패배의 연속이었다. 과연 올 가을 그가 루저 딱지를 뗄 수 있을 지 두고 볼 일이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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