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견 근무 인기 예전만 못해
▶귀임 시 자리 보장도 불투명
▶ 원화 약세·고물가 생활 부담
▶기업들 지원자 줄어 ‘애먹어’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지역을 따지지도 않고 서로 해외 지사 주재원으로 나오려고 난리도 아니었는데 이젠 해외 주재원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 한국에 본사를 둔 한 한국 기업의 LA 지사장의 말이다. 해외 주재원으로 나오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던 과거와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했다. 이 지사장은 “그나마 환경이 좋은 편인 LA도 예외는 아니어서 LA 주재원으로 나오려는 지원자의 수가 점차 떨어지고 있는 추세”라며 씁쓸해했다.
기업에서 엘리트 코스라 불리며 승진의 필수 조건으로 여겨진 해외 주재원에 대한 인기의 열기가 식어가고 있다. 비교적 생활 및 교육 환경이 양호해 ‘꽃 보직’이라고 불리던 LA 주재원도 고물가로 각종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지원자의 수가 줄어들고 있어 해당 기업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16일 LA에 진출한 한국 기업 관계자들에 따르면 해외 주재원의 인기가 전만 못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의 유명 건설기계 기업의 경우 벨기에와 미국 지역 주재원을 모집하는데 지원자가 크게 줄어 모집 기간을 연장해 간신히 자리를 채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기업 LA 지사 관계자는 “벨기에는 차지하더라도 미국 LA인데 제때 지원자를 찾지 못해 당황스러웠다”며 “해외 주재원에 대한 생각이 바뀐 것을 새삼 느꼈다”고 말했다.
같은 미국이라도 비인기 지역의 주재원의 인기 하락의 속도는 가파르다. 제조업계 한국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LA 주재원은 “미국 내 중남부 지역의 지사에 주재원 지망자는 없는 편”이라며 “비인기 지역에 주재원 지원자는 더욱 상황이 나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사실 LA를 비롯해 해외 주재원은 승진으로 가는 소위 ‘꽃 보직’으로 통했다. 과거에는 해외 주재원으로 선발되면 기업에서 능력을 인정 받았다는 인증서로 임원 승진의 지름길로 꼽혔다. 이 때문에 해외 주재원으로 지원하는 직원들이 늘면서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현재 한국 내 대기업의 임원들의 상당수가 LA를 포함해 해외 주재원 경험들을 갖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2000년 중반을 거쳐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해외 주재원에 대한 인기는 급격하게 식어갔다. 해외 여행과 교육의 기회가 넓어져 해외에 대한 ‘로망’이 줄어든 데다 해외 근무로 인해 본사 내 인맥과 유대 관계가 적어 승진 불이익에 대한 우려감도 커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LA는 해외 근무지로 인기 지역에 속하지만 지원자 수가 감소하고 있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고물가에 생활비와 교육비 부담이 커진 탓이다. 한 국적항공사 미주 본부에서 근무하는 주재원은 “항공사라는 특수성 때문에 LA 주재원에 대한 선호도는 높은 편이지만 고물가에 렌트비와 교육비가 비싸 급여 외 돈이 들고 있다”며 “해외 급여 기준이 과거에 만들어진 것이라서 부족한 부분이 많은 게 흠”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LA 타임스가 캐나다 여론조사업체 리거(Leger)와 함께 지난달 말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캘리포니아 주민들의 87%가 생활 물가가 너무 올랐다고 답할 정도여서 LA 주재원들이 느끼는 체감 물가는 한국에 비해 ‘살인적’일 수밖에 없다. 달러 강세로 인해 원화로 받는 급여의 가치가 크게 감소해 생활비 부담이 더 늘었다.
여기에 한국 기업들이 경기 침체로 해외 주재원 파견 규모를 줄이면서 인력 부족에 따른 업무 부담이 커진 것도 해외 주재원을 기피하는 또 다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해외 주재원의 인기 하락은 비단 사기업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의 LA 사무소 주재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1년 전 사업계획에 따른 예산은 ‘킹달러’로 인한 원화 가치가 하락하면서 사무실 운영 경비와 급여가 줄어 들어 애를 먹고 있는 상황이다. 공무원 신분이라서 해외 근무에 따른 승진 특혜가 상대적으로 적고 원래 직무로 복귀하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보니 해외 주재원으로 나오려는 지원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다. 한 지자체 LA사무소 소장은 “고물가에 환율까지 높아 사무실 운영에 애를 먹고 있다”며 “한인 사회가 잘 형성된 LA이니까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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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