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34조원 메가딜…몸집 불리는 석유공룡들
2024-02-14 (수)
김경미 기자
▶ 엑손모빌·셰브런 인수전 이어
▶美다이아몬드백, 엔데버 구입
▶ 몸값 70조원 공급량 톱3 올라
▶글로벌 에너지 새판짜기 경쟁
글로벌 석유 공룡들의 블록버스터급 인수합병(M&A)이 잇따라 성사되고 있다. 국제유가가 고공 행진한 덕에 역대급 수익을 얻게 된 석유 기업들이 원유 생산량을 늘리는 동시에 원가를 절감하려는 목적으로 미국 내 민간 시추 업체들과의 합병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어서다. 중장기적으로 원유 공급량이 줄어 유가가 일정 가격 이상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도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과감한 ‘메가 딜(초대형 거래)’을 부추기는 것으로 분석된다.
12일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에 따르면 미국 석유 회사 다이아몬드백에너지는 미 텍사스주 최대 원유 생산 지역인 퍼미안 지역의 민간 원유 시추 업체 엔데버에너지리소시즈를 260억 달러(약 34조 5600억 원)에 사들이기로 했다. 인수 대금은 180억 달러 상당의 주식과 80억 달러의 현금으로 치른다. 합병사의 지분은 다이아몬드백 주주들이 60.5%, 엔데버 주주들이 39.5%씩 나눠 갖게 되고 매각 절차는 올 4분기께 마무리될 예정이다. 인수 전 270억 달러의 가치를 지녔던 다이아몬드백은 이번 인수를 통해 530억 달러(약 70조 4000억 원) 규모의 대형 원유 기업으로 거듭나게 된다. 합병사의 하루 원유 생산량은 약 81만 6000배럴로 공급량 기준 엑손모빌(130만 배럴)과 셰브런(86만 7000배럴)을 잇는 ‘톱3 석유 공룡’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번 거래는 지난해 가을부터 잇따르는 ‘메가 딜’의 연장선에 있다. 지난해 10월 엑손모빌이 파이어니어내추럴리소스를 600억 달러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주 뒤 경쟁사인 셰브런이 90년 역사의 헤스를 530억 달러에 사들였다. 약 두 달 뒤인 12월 옥시덴털페트롤리움이 크라운록을 120억 달러에 샀고 올해 1월 체셔피크에너지가 천연가스 기업 사우스웨스트에너지를 74억 달러에 인수했다.
글로벌 에너지 기업들의 잇따른 인수합병은 증산과 원가 절감 등 생산 효율화를 위해서다. 실제 피인수 기업 대다수는 대규모 유전 개발권이나 미 시추 광구를 다량 보유하고 있는 시추 업체이다. 원유 시추는 대상 지역이 넓을수록 원가 경쟁에서 불리하다. 다이아몬드백은 이번 거래를 통해 원유 생산 원가를 40달러 아래로 떨어뜨릴 것으로 보고 있다.
퍼미안 분지에 대한 지배력을 확보하려는 노력이 ‘메가 딜’로 나타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퍼미안 분지는 자원 층이 풍부해 앞으로도 고품질 원유를 대량 시추할 것으로 기대되는 지역이다. 피인수 기업인 파이어니어·크라운록·엔데버 등은 모두 퍼미안 지역을 중심으로 석유를 생산해온 기업들이다. 엑손모빌 등 석유 공룡들은 2017년부터 퍼미안 지역 진출을 시도했지만 저유가로 수익성이 악화해 기업 인수를 위한 자금 마련이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지난 2년여간 기록적인 수익을 냈고 공격적인 인수전을 펼칠 수 있게 됐다. 미 에너지 정보 업체 엔버러스의 앤드루 디트마르 부사장은 “다이아몬드백의 엔데버 인수는 퍼미안 분지를 둘러싼 ‘M&A 퍼즐’의 마지막 주요한 조각 중 하나”라며 “올해 최대 업스트림(원유 생산) 거래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세계 각국 정부가 친환경 에너지로 전환을 꾀하고 있지만 화석연료 수요가 급감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메가 딜’의 배경으로 꼽힌다. 현재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배럴당 70달러 선을 오가며 지난해 가을 고점 대비 15% 이상 하락했다. 이와 관련해 업계에서는 경기 침체로 중국 내 수요가 줄면서 단기적인 공급 과잉 상태에 빠졌을 뿐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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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