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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고 깨끗한 사람이 되라

2024-02-09 (금)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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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시카고 살인사건 범인 앤드류 서(50, 서승모)씨가 징역 100년형을 받고 수감 약 30년만에 모범수로 인정받아 출소했다. 1월26일 오전 일리노이주 서부 키와니의 교도소를 나와 한인 후원자가 건네준 하얀 두부를 한 움큼 베어 먹는 앤드류 서씨, 19세 앳된 나이에 감옥에 들어갔던 그는 삭발한 머리가 하얗게 센 50대가 되어 큰문 밖으로 나왔다.

서씨는 대학 2학년이던 1993년 9월25일 자신의 집 차고에서 누나의 동거남을 총격 살해한 혐의로 1995년 징역 100년형을 선고받았다. 항소심에서 80년형으로, 다시 성실하게 재활프로그램을 이수한 모범수로서 감형 특혜를 받았다.

서씨는 이민 1세나, 2세처럼 군 장교 출신 아버지, 약사인 어머니를 둔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나 두 살 때인 1976년 가족과 함께 시카고로 이민했다. 그런데 이민 9년만인 1985년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어머니도 1987년 강도에 살해된 후 다섯 살 위 누나를 의지하며 살았다.


고등학교 학생회장에 풋볼선수로 활약하여 장학생으로 대학생활을 누리던 그에게 누나는 자신의 동거남이 엄마를 죽였다면서 그를 죽이라 했다. 이것이 어머니의 원수를 갚고 누나를 보호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범행을 저질렀다. 서씨의 누나는 당시 재판에서 가석방 없는 종신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이다.

이에 한인사회는 20여 년간 서씨에 대한 사면청원 캠페인을 벌여왔다. 이날도 시카고 그레이스 한인장로교회 교인들은 새하얀 두부를 그에게 먹였다. 한국 풍습으로 흰 두부를 먹이는 이유는 오랜 시간 복역하고 나온 사람에게 고단백의 영양식을 빨리 먹이고 싶다는 마음, 두부처럼 하얗고 깨끗한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 다시는 콩밥을 먹지 말라는 마음이 담겼다.

서씨는 교도소 내에서 학사학위를 취득, 교사 자격증을 받았으므로 향후 지역사회 청소년 교육자 등으로 활동할 계획이라 한다. 서씨를 보면서 미국에서 범죄를 저질러 수감된 한인들은 얼마나 될까 궁금했다.

2023년 6월 기준 미국 등 해외 52개국에 수감 중인 한국 국적자는 모두 1,017명, 미국 내 한국 국적자 수감자는 2018년 231명, 2019년 184명, 2020년 194명, 2021년 149명, 2022년 114명에 이어 2023년 6월 기준으로 112명을 기록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홍걸 의원 외교부 제출서류 참조)

특히 뉴욕주 교도소에는 20명이 넘는 한인 수감자들이 복역 중인데 범죄 유형별로 강도가 9명으로 가장 많고 살인 8명, 무기소지 2명. 아동 노동착취 1명, 조직폭력 1명 순으로 집계되었다. 이중 살인죄를 저질러 유죄를 인정받은 재소자 8명 중 5명은 종신형을 받았다. (2018년 9월25일 현재 뉴욕주교도국 자료, 한국일보 보도)

더욱이 미국 시민이 아니면 수십 년간 영주권자로 미국에 살았어도 형사사건으로 1년 이상 유죄확정 판결을 받으면 복역 후 무조건 강제추방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2011년 가정폭력 살인미수사건으로 형기를 마치고 추방절차를 기다리다가 2020년 5월 자살한 74세 한인남성이 있다. 고령에 기저질환자였으나 제때 보호를 받지 못해 가족들이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래도 미동부 지역 한인사회에 ‘갇힌 자들의 사역’을 하는 블로그가 있고 최근에는 한인교도소 선교사가 법무부 봉사상을 수상했다. 이들은 전도집회, 식사제공, 성경공부, 상담 찬양 등의 사역을 헌신적으로 한다.

뉴욕·뉴저지에도 수십 년간 뉴욕주 70여개 교도소 한인재소자들을 방문하여 상담 사역, 필수품 차입을 돌아가면서 하는 한인교회들과 선교사들이 있다. 그러나 언어와 문화 차이로 힘들고 외로운 재소자들에 비해 봉사자 수가 턱없이 부족하다.

앤드류 서가 후원자를 껴안고 코가 빨개진 채 감격에 겨워 서있는 사진을 보며 ‘두부를 먹이는 그대들이 있어 다행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가여운 이의 인생에 한인들이 선사한 따스하고도 눈부신 사랑의 햇살을 보았다.

<민병임 뉴욕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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