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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손·음성으로 제어 공간 컴퓨터…혼합현실 신세계

2024-02-07 (수)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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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플 ‘비전 프로’ 써보니

▶ 2,300만 화소 밀집시킨 디스플레이
▶‘순간이동’한 듯한 몰입감 선사
▶무게감 있지만 착용감 나쁘지 않아
▶앱 아이콘 꼬집기만 하면 바로 실행

애플의 ‘혼합현실(MR·Mixed Reality)’ 헤드셋, ‘비전 프로’가 2일 미국에서 정식 출시됐다. 2015년 출시된 애플워치 이후 애플이 9년 만에 내놓은 주요 신제품이 마침내 소비자들과 만난 것이다.

애플은 지난해 6월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비전 프로를 처음으로 공개하며 “최초의 공간 컴퓨터”라고 칭했다. 마우스와 자판기를 통해 입력하고 평평한 모니터를 통해 결과물을 출력하는 기존 컴퓨터와 달리, 눈과 손 그리고 음성을 통해 제어하고 눈 바로 앞의 디스플레이로 3차원(3D) 이미지와 영상을 보여준다는 의미다.

3일 미국 실리콘밸리의 한 애플 매장에서 30분간 직접 체험해 본 비전 프로는 ‘공간 컴퓨터’라는 수식이 딱 들어맞는 기기였다. 눈으로 응시하고, 두 손가락 끝을 꼬집듯이 맞닿게 하기만 하면 ‘클릭’이 실행되는 등 직관적이고 쉬운 사용법이 최대 강점이었다. 2,300만 화소를 밀집시킨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는 마치 초능력을 써서 ‘순간 이동’을 한 듯한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했다. 그러나 구매를 주저하게 만드는 단점 역시 분명한 제품이었다.


그간 사진으로만 봐 왔던 비전 프로를 실물로 접했을 때 처음 든 인상은 ‘묵직하네’였다. 비전 프로처럼 스키 고글 형태의 헤드셋들은 무거워서 장시간 이용할 수 없다는 게 단점으로 꼽혀 왔는데, 이 제품 역시 배터리를 제품과 별도로 분리하는 등 무게를 최소화하려 했음에도 무게감이 느껴졌다. 다만 실제 착용했을 때의 무게는 생각보다 부담이 크지는 않았다. 얼굴에 닿는 부분은 부드러운 천 소재로 돼 있어 착용감도 나쁘지 않았다.

비전 프로를 처음 켜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눈, 손의 움직임과 비전 프로를 일체화시키는 작업이다. 눈앞에 떠 있는 점을 응시하고 두 손가락으로 꼬집는 것을 18번 이상 해야 한다. 점의 위치는 계속 달라진다. 이 과정을 거쳐야 비전 프로가 눈동자의 움직임을 오차 없이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사전 설정을 마친 뒤 만나는 것은 여러 기본 애플리케이션(앱)이 가지런히 배치돼 있는 이른바 홈 화면이다. 앱 아이콘을 바라보고 꼬집기만 하면 바로 앱이 실행된다. 신기한 것은 손가락을 굳이 아이콘 가까이 갖다 대지 않고 꼬집듯 ‘까딱’만 해도 된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애플은 비전 프로 안팎에 무려 12개의 카메라와 5개의 센서를 달았다. “손을 등 뒤에만 두지 않으면 무릎 위에 있든 머리 위에 있든 상관없이 손가락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다”고 애플 직원은 설명했다.

다른 사용법 역시 매우 간단하다. 예를 들어 화면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고 싶으면 두 손가락으로 스크롤을 잡은 뒤 스크롤을 내리기만 하면 된다. 또 사진이나 영상을 줌 인·아웃 하고 싶을 때는 양손의 두 손가락으로 해당 콘텐츠를 잡은 뒤 팔을 넓히고 좁히면 된다.

비전 프로는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눈앞 현실에 가상 요소를 덧입혀 보여주는 것) 모두를 구현하는 혼합현실 헤드셋이다. VR과 AR을 왔다갔다 하며 사용할 수 있다는 뜻으로, 화면 전환은 비전 프로 상단에 달린 ‘디지털 크라운’이라는 이름의 단추를 통해 가능하다. 가령 영화에만 집중하고 싶을 때는 디지털 크라운을 VR 쪽으로 돌려 시야를 완전히 차단하면 된다. 반면 비전 프로를 통해 레시피를 보면서 요리하고 싶다면 주변 환경이 다 보이는 AR 모드로 바꾸면 된다.

비전 프로의 가치는 3D 영상을 볼 때 극대화하는 듯했다. 이날 체험에선 애플이 비전 프로 홍보를 위해 특별 제작한 약 5분짜리 영상을 볼 수 있었는데, 몰입감이 커서 정말 실제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축구장 골대 뒤편에서 촬영한 듯한 축구 경기 장면이 나올 때는 정말 골대 바로 뒤로 순간 이동을 한 것 같았다. 동물원에서 코뿔소가 가까이 다가올 때는 나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게 될 정도였다.

제품 체험을 다 마친 뒤 든 생각은 ‘역시 애플이 작심하고 만든 제품답다’는 것이었다. 직관성과 몰입감은 여태껏 이용해 본 다른 제품들보다 확실히 뛰어났다.

그러나 제품 이용을 마친 뒤 한동안 어지럼증에 시달렸다. 애플 역시 VR·AR 기기의 고질적 단점으로 꼽혀 온 어지러움은 완전히 해결하지 못한 듯했다. 착용 후 얼굴에 기기 자국이 그대로 남는 것도 거슬렸다. 무엇보다 배터리가 외장인 점, 제품 자체의 무게가 600g에 달한다는 점에서 ‘집 밖’에선 이용하기 어렵겠다는 것이 아쉬웠다.

비전 프로의 가장 큰 한계는 무려 3,499달러에 달하는 비싼 가격이다. 편리하고 신기한 제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개발자나 애플 마니아가 아니라면 500만 원 가까운 돈을 지불하기는 쉽지 않을 듯했다.

<실리콘밸리=이서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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