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이 집중된 세계의 숱한 지정학적 위기 가운데 잠재적 위험성이 가장 높은 미국과 중국의 불편한 관계가 긍정적으로 전환되고 있다. 유라시아 그룹 창업주인 이안 브레머는 “최근 몇 달 사이에 미-중 관계가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보좌관과 중국 최고위 외교관 왕이의 비공식 회담은 고성이 오갔던 2021년의 앵커리지 회담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잔뜩 얼어붙었던 양국 관계가 해빙기를 맞고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양국 군 수뇌부의 회담이 재개됐고,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지나 레이몬도 상무부장관도 모처럼 건설적인 중국 나들이에 나섰다.
미국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바이든과 시진핑이 마주 앉은 지난해 11월 이후 중국 전투기의 위협적인 근접비행이 중단됐다고 전했다. 2021년 가을 이후 2년 동안 미국과 우방국 함정을 겨냥한 중국 전투기의 위협비행 건수는 300여 건에 달했었다. 게다가 중국이 원하던 결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미국과 중국은 대만 선거를 신중하고 성숙하게 다루었다.
이 모두는 좋은 일이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2년간 상호불신과 잘못된 의사소통 및 접촉결여로 점철된 양국 관계는 지켜보기 힘들만큼 아슬아슬했다. 양국의 라이벌 관계는 인공지능에서 우주무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고삐 풀린 무한경쟁을 불러오고, 글로벌 경제를 박살내는 것은 물론 1945년 이후 첫 강대국 사이의 전쟁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강한 우려를 자아냈다.
다행히 양국 모두 자세를 바로잡았다. 더 큰 변화를 보인 쪽은 워싱턴이 아닌 베이징이었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여파 속에 권력의 정상에 오른 시진핑 주석은 미국의 국력이 기울고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공공연하게 “동방은 뜨고, 서방은 진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미국에 대한 경제 의존도를 줄이고, 미래의 신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싶어했다. 그의 야심찬 외교정책은 점점 공격적이 되었다.
여기서 몇 달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시 주석은 미국의 대기업 중역들을 향해 중국은 미국을 대신하기 위해 글로벌 패권을 추구할 의도가 없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했다. 시 주석과 왕이 외교부장은 미국과 중국 사이의 협력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시 주석은 샌프란시스코에서, 리창 총리는 스위스의 다보스에서 미국 기업들에게 각각 구애의 손짓을 보냈다. 이같은 태도 변화의 많은 부분은 중국 경제가 흔들리는데 비해 미국 경제는 활기를 보인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보다 큰 맥락에서 베이징은 중국의 ‘늑대 전사’ 외교가 실패로 끝났고, 이로 인해 인도에서 호주와 독일에 이르기까지 여러 국가들의 외면을 샀다는 사실을 눈여겨보았을 것이다. 최근에 나온 퓨 리서치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24개 서베이 대상국 가운데 22개국이 중국보다 미국에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워싱턴 역시 미-중 관계가 제 코스를 크게 벗어나면서 양국 사이의 위험스런 반목과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타이완 문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현상유지를 원하는 대만 인들을 비롯한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글로벌 경제의 틀 안에서 깊숙이 엮어진 미-중 관계의 개선은 양국 보두에게 실익을 안겨준다. 워싱턴의 많은 우방국들은 미국의 안보지원을 계속 추구하겠지만 중국 역시 그들의 최대 경제 동반자로 남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물론 지금의 모든 상황이 따스하고 호의적인 것만은 아니다. 언제건 새로운 위기가 고개를 치켜들 수 있다. 저렴한 중국산 전기차가 유럽시장 뒤덮은 터라 일부 서방국가들 사이에서 어떻게 대응할지를 두고 뜨거운 논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독일에게 중국은 자동차 산업의 구세주였다. 중국이 독일이 수출한 자동차의 상당부분을 사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산 자동차는 독일의 동일 산업에 가장 큰 위협이다. 의약품산업과 바이오테크 상품을 둘러싼 긴장도 고조될 조짐을 보인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워싱턴과 베이징 사이의 협력관계라는 안정된 틀 안에서 일어날 것이다.
워싱턴의 태도변화를 가능케 한 부분적 이유는 중국이 10피트의 키를 지닌 거인이 아니라는 자각이다. 워싱턴의 정책 결정자들은 1980년대의 일본처럼 중국 역시 대약진을 할 것이라는 전망에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독일의 격언처럼 “나무는 하늘에 닿을 만큼 자라지 못한다.” 중국의 성장은 크게 둔화됐고, 잇따른 정책실수로 최근 몇 년 사이에 상황은 더욱 악화됐다. 경제 성장의 두 축이었던 노동연령대 인구와 생산성은 크게 약해진 상태다. 중국은 여전히 강대국이지만 세계 패권국의 지위를 넘겨받지는 못할 것이다.
80여 년 전에 시작된 미국 패권시대가 지니는 특성은 그 틀 안에서 다른 국가들도 성장과 번영을 누릴 수 있는 안보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국제질서를 해치려 들지 않는 한 이들은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또한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번영을 누릴 수 있다. 이런 태도는 라이벌 국가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을 것이라는 미국의 자신감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워싱턴은 이같은 경쟁이 지정학적 우열다툼으로 전환된다면 상생해법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고, 글로벌 시스템은 깨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이 룰을 준수한다면 워싱턴도 베이징에 일부 여지를 주어야 한다. 미국의 경제력이 전진을 거듭하면 다른 국가들도 자신감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잘 해낼 것이고, 비관과 실망이 아닌 정확한 전제에 바탕해 외교정책을 수립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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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