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상승률이 급강하했고, 모두가 원하는 경제 ‘연착륙’도 가시권에 들어왔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하 연준)에 감사해야할 일이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을 지닌 좌·우 진영의 정치인들은 앞으로 연준이 이같은 위업을 재연하지 못하도록 중앙은행을 흔들어댄다.
2022년 9%선까지 치솟았던 물가상승률은 연준의 목표치인 2%에 바짝 다가섰다. 실업률도 기록적인 저점 근처를 맴돈다. 많은 전문가들이 두려워했던 경기침체는 현실화하지 않았다. (2024년에도 침체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좌파 정치인들과 그들의 참모진은 이것이 자신들의 성과인양 의기양양해 한다. 하지만 정부가 이단적 좌파 사상가들이 건의한 인플레 억제 도구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그들의 공치사는 코웃음을 자아낸다. 연준은 (가격통제, 불로소득세, 자사주 환매금지 등) ‘기업의 탐욕’을 조준한 기괴한 징벌적 조치 대신 좌파 정치인들이 한사코 반대했던 고리타분한 금리인상 조치로 인플레이션에 맞섰다.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연준의 연이은 금리인상을 호되게 질책했다.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민주-매서추세츠)을 비롯한 일부 정치인들은 연준이 근로자들을 일터에서 몰아내려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이들에 따르면 경기 침체는 금리인상의 의도치 않은 결과물이 아니라 힘없는 근로자들을 해치려는 의도적 ‘계획’이다.
포퓰리스트 그룹에 속한 정치인들은 ‘연준 혼내기’를 멈추지 않는다. 예를 들어 로 칸나 하원의원(민주-캘리포니아)은 최근 제롬 H. 파월 연준 의장에게 즉각 금리인상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트윗을 날렸다. 그녀는 “이를 거부할 경우, 파월 의장은 도널드 트럼프의 백악관 재입성을 가능케 만든 장본인으로 기억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통화정책 결정과 당파색이 짙은 정치적 결과물을 하나로 엮는 것은 트럼프와 그의 모방자들이 동원하는 수사와 상당히 유사하다. 그같은 시도가 우파에서 나오건, 좌파에서 나오건 위험하기는 매일반이다. 그 이유는 이렇다.
최근 몇 달 사이에 물가상승률이 둔화된 데에는 복합적인 이유가 있다. 헝클어진 글로벌 공급망의 꼬인 매듭을 푸는 것은 저절로 일어난 것이었을 수 있지만, 나머지 두 요인은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또 그렇게 보이게끔 만드는 연준의 능력을 요구한다.
연준과 관련된 첫 번째 요인은 명확하다. 높은 금리는 수요를 ‘냉각’시킨다. 금리를 올리면 새 차나 주택 구입을 위한 대출 비용이 올라간다. 이자율 인상은 부수적 피해를 불러오기 때문에 인기가 없기 마련이다. 경기침체 경고는 주로 이에 대해 언급한다. 힘들고 까다로운 금리인상 결정을 의회가 아니라 단기적인 선거결과에 영향을 받지 않는 기술관료(technocrats)에게 일임하는 이유다. 이처럼 독한 약은 아무나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놀랍게도 연준의 처방은 이렇다 할 부작용 없이 예상보다 큰 효과를 보였다. 이유가 무얼까?
이 질문에 답하려면 금리인상과 더불어 연준이 적절히 활용한 ‘기대 인플레이션’을 살펴보아야 한다. 서베이는 인플레이션이 실시간으로 상승중이라 하더라도 미래의 물가상승률에 대한 장기적인 기대치는 상대적으로 밋밋하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연준의 정책결정자들은 잠재적인 경기침체 위험과 욕설 공세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인플레이션 잡기에 전념하는 믿음직한 자세를 유지했다. 그리고 대중은 연준을 믿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연준은 금리를 더 높은 수준으로 올릴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UC버클리 경제학 교수인 에미 나카무라는 텍사스에서 열린 전미경제학회 연례회의에서 “연준은 미묘한 방식으로 기대 인플레이션을 안정시킨 공로를 인정받아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연준의 이같은 조치는 “이번 디스인플레이션이 이전에 비해 덜 고통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큰 차이를 만들어냈다”고 강조했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만약 물가상승률을 낮추려는 연준의 확고한 의지를 믿지 않는다면, 예컨대 5년 만기 거래를 협상하는 기업들은 계약서에 빠른 물가상승을 반영시키려 들 것이다. 이는 단기적인 물가 충격이 인플레이션을 고착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준다. 기대가 스스로를 충족시키는 셈이다.
아르헨티나처럼 정치적 중립이 보장된 중앙은행이 없는 국가에서는 이런 일이 반복된다. 미국에서도 연준이 인플레이션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있다.
1970년대에 연준의 정치적 독립성은 지금처럼 강하지 않았고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한 극약처방에 미온적인 태도를 취했다. 정치적 압박에도 종종 굴복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재선을 노리는 리처드 M. 닉슨 대통령이 당시 연준 의장이었던 아서 번스에게 협조 요청을 했다고 믿는다. 얄궂게도 칸나 하원의원은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 캠페인을 돕기 위해 파월 의장을 압박하면서도 그를 아서 번스에 견주어 가며 모욕을 가한다.
번스 시대 이후 수십 년 간, 연준은 독립성을 재구축하려 노력하는 한편 인플레이션을 다스리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이들의 노력은 지난 2년 동안 힘을 발휘했다. 그러나 상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대통령이 연준에 무능한 심복을 빨대처럼 꽂아놓는다거나 의회가 앞장서 유권자들의 입맛에 맞는 금융통화정책을 추진하도록 연준의 팔을 비틀 수도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최소한 한번은 일어날 법한 얘기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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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