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 대응 ‘원년’ 돼야
2024-01-06 (토)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
“킬리만자로는 높이 1만 9,710피트(5,885m)의 눈에 뒤덮인 산으로 아프리카 대륙의 최고봉이다. 서쪽 봉우리는 마사이어로 ‘누가예 누가이’, 즉 신의 집이라는 뜻이다. 이 서쪽 봉우리 가까이에는 얼어붙은 표범의 사체가 하나 있다. 도대체 그 높은 곳에서 표범이 무엇을 찾고 있던 것인지 설명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세계적 문호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1936년 발표한 단편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의 첫 단락이다. 킬리만자로는 적도 바로 아래인 남위 3도에 있는데도 산꼭대기는 만년설로 덮여있다.
만년설로 뒤덮인 킬리만자로도 기후 위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2020년 10월 이 산에 큰 불이 발생했다. 산불의 주요 원인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자연발화 가능성이 지목된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지표면의 평균온도는 0.6도 높아졌다. 이로 인해 각종 생물 분포 지역이 이동하고 빙하도 녹아내리면서 해수면이 상승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태평양 도서국들은 급격한 해수면 상승으로 국가 소멸 위기에 몰렸다. 지난해 8월 미국 하와이 마우이섬은 뜨거운 대기가 촉발한 산불로 섬 전체가 잿더미가 됐다.
기상이변은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달 30일 서울에 12㎝가 넘는 기습 폭설이 내렸다. 12월 기준으로 42년 만에 가장 많은 눈이 짧은 시간에 쏟아지면서 크고 작은 사고들이 속출했다. 지난해 6~7월에는 전국에 극한 호우가 28차례나 내렸다. 특히 지난해 7월 13~17일 충남·충북·경북 등에 최고 570㎜가 넘는 기록적인 호우가 쏟아졌다. 충북 청주에서는 ‘100년 빈도 강우량’를 바탕으로 쌓은 임시 제방이 붕괴돼 많은 인명 피해가 났다.
세계 과학계에서는 “수년 후에는 이상 고온과 재난이 새로운 표준이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기후 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경고가 잇따르는 와중에 지난달 13일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에서 의미 있는 합의가 이뤄졌다. 총회에서 발표된 합의문에 화석연료로부터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ing away)’이라는 표현이 처음으로 포함된 것이다. 2021년 영국 글래스고 합의문은 석탄만 특정해 ‘단계적 감축(phase down)’이라는 문구를 넣었지만 이번에는 석탄과 석유·천연가스 등을 아우르는 화석연료라는 단어가 들어갔다. 애초 합의문에 담겼다 빠진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 out)’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지구온난화에 대응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대다수 국가가 서명한 COP 합의문은 새로운 국제 질서가 될 것이다. 이를 실행하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의 국제 위상은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기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은 환경을 넘어 경제·기업의 미래를 좌우하는 요인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원자력발전을 포함하는 무탄소 에너지를 활용해 전력 수급을 충족하는 ‘무탄소에너지연합(CFE 이니셔티브)’을 전 세계에 제안했다. 이 구상이 탄력을 받으려면 제안국인 한국 정부와 국회·기업이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탄소 중립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지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도 신년사에서 “기후변화와 같은 수많은 문제가 우리 앞에 놓여있다”며 여러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들이 더 적극적으로 나서자고 역설했다.
정부도 정책 입안 때부터 저탄소 개발에 대한 고민을 해야 한다. 민관이 원팀이 돼 한국 실정에 맞는 무탄소에너지 관련 기술의 연구개발 기반 조성을 적극 지원하고 에너지 시스템 전반에 걸친 전환과 혁신에 나서야 한다. 디지털 기술에 기반해 보다 빠르고 정확한 이상 기온 예보 시스템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올해 새로 구성될 22대 국회 역시 기후변화 대응 입법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21대 국회에서 유명무실화된 기후위기특별위원회를 되살려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법·제도를 종합적으로 정비해야 할 것이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 청룡의 해는 지속 가능한 지구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더 생각하고 실천하는 원년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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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