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는 재집권할 경우 공권력을 동원해 정적들을 벌주겠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공언했다. 유권자들이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야 할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그는 전에도 특정 개인과 단체 및 기업을 향해 공권력을 행사한 바 있다. 당시 그의 전횡에 제동을 건 것은 법원의 판결과 참모들의 비협조였다. 둘째, 지금 그는 재집권 후 정적 제거의 토대가 될 인적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 주 유니비전과의 인터뷰에서 백악관에 재입성하면 자신의 반대편에 섰던 적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연방수사국(FBI)을 비롯한 법무부의 기구들을 총동원해 그를 ‘박해’한 정적들에게 보복하겠다며 “나를 심하게 핍박한 사람들을 샅샅이 조사해 기소할 것이고, 그들은 업계와 정계에서 모두 밀려나게 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았다. 그로부터 며칠 후 베테런스 데이 연설에서도 그는 “대통령에 당선되면 공산주의자, 마르크스주의자, 파시스트와 급진좌파 폭력배 등 이 나라의 모든 해충을 박멸하겠다”고 밝혔다. ‘해충’ 발언은 순간적인 충동에서 비롯된 말실수가 아니다. 그는 소셜 미디어에도 동일한 견해를 남겨놓았다.
과거 독재자들이 눈에 거슬리는 집단을 ‘해충’에 비유했던 전례를 돌이켜보면, 트럼프의 발언은 설사 문자 그대로 해석하지 않는다 해도 소름이 돋게 만든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자신에게 쏠리는 관심을 지지율 성장동력으로 활용하는 트럼프의 특성상 그가 내뱉은 발언의 추악함을 목청 높여 알리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재집권 후 트럼프가 달성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의 발언은 ‘속이 빈 협박’이거나 비슷한 성향의 남성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나누는 ‘은밀한 잡담’이 아니다. 트럼프의 발언은 선거 공약이고, 당연히 그렇게 취급되어야 한다.
그의 발언이 빈말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대통령 재임시의 행적을 살펴보라.
올해 초, 트럼프의 비서실장이었던 존 F. 켈리는 진술서에서 국세청(IRS)을 비롯한 연방기관들을 동원해 2016년 대선전 당시 트럼프 선거 캠프와 러시아 사이의 관계를 조사한 두 명의 FBI 관리를 혼내주라는 대통령의 지시를 받았다고 밝혔다.
이와는 별도로 트럼프는 존 브레넌 전 중앙정보부(CIA) 국장, 힐러리 클린턴과 아마존 창업주이자 워싱턴포스트 소유주인 제프 베조스 등 그가 적대시하는 인사들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감사와 FBI의 수사를 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켈리는 뉴욕타임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은 트럼프의 이같은 계획에 동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켈리의 태도에 격분한 트럼프는 이후 보좌관들에게 법무부를 움직여 자신의 비서실장을 조사하겠다고 말했다. )
트럼프는 또한 정부의 막강한 행정력을 이용해 충성도가 떨어지는 것으로 여겨지는 기업들을 규제했다. 일부 자동차 제조사들이 연료효율성 표준을 이전 수준으로 끌어내리는데 반대하자 트럼프 행정부는 느닷없이 단합금지규정 위반혐의로 이들을 조사했다. 이외에도 트럼프는 그를 비판한 CNN을 벌주기 위해 백악관 경제보좌관들에게 CNN의 모회사였던 타임워너와 AT&T의 합병을 방해하도록 지시했다
그게 전부가 아니다. 국무장관이 그를 ‘멍청이’로 불렀다는 보도가 나가자 트럼프는 해당 방송사들의 면허 취소를 거론하고 나섰다. 그러나 이때에도 ‘아랫사람들’은 그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그의 엄포는 불발탄으로 끝났다.
트럼프는 정부의 물품조달 과정에서 아마존에 타격을 입히려 시도했다. 짐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의 최고위 참모는 후일 회고록을 통해 “트럼프가 매티스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아마존을 국방부의 납품계약 경쟁 입찰 과정에서 제외시키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계약은 아마존의 경쟁사가 따냈지만, 곧 소송에 휘말렸고 결국 문제의 납품 계약은 취소됐다.)
좌경화된 판사들과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국정농단 세력, 즉 ‘딥 스테이트’가 자신을 가로막았다고 주장하는 트럼프는 재집권에 성공할 경우 1차 재임중 그가 직접 임명한 수백명의 판사들이 ‘사법 호위무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는 또한 자신의 야망을 효율적으로 실현하는데 앞장설 차기 예비내각의 인력 확보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전 행정부가 미처 끝내지 못한 작업을 재집권할 경우 일사천리로 밀어붙이려는 준비작업을 착착 진행 중인 셈이다. 2020년 말, 트럼프는 공무원 보호규정을 폐지하는 행정명령을 발령함으로써 수천명의 경력직 공무원들을 솎아낼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그러나 그의 공무원 숙청계획은 임기 종료로 실행되지 않았다. 이어 바이든 대통령이 공무원 보호규정을 원상복구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트럼프의 시도는 물거품으로 끝났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계획을 재추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자신의 뜻을 따르지 않는 공무원들은 트럼프에겐 반드시 박멸해야 할 ‘해충’이다.
숙청당할 공무원들의 자리를 채울 변호사와 충성스런 지지자들의 명단을 작성한 트럼프와 그의 우군들은 이들에 대한 개별적인 검증작업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의 재집권에 대비해 최측근 보좌관들을 주축으로 우익단체들이 연합해 조직한 ‘프로젝트 2025’는 수천명에 달하는 ‘일꾼’들의 이념과 충성심을 사전심사하고 있다. 사전인선 작업에 나선 보수단체들은 트럼프에게 고언을 들려줄 ‘집안의 어른’을 찾으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는다. 이들이 벌이는 인적 인프라 구축작업은 트럼프가 지닌 독재자 성향을 역겨워하기는커녕 이를 반기고 열광하는 하수인들을 찾으려는 노력이다. 그의 탈선을 막을 가드레일을 만드는 게 아니라 폭주하는 열차의 바퀴에 기름칠을 할 일꾼이 이들이 찾는 2차 트럼프 행정부의 공무원이다.
내년 11월 대선에서 트럼프를 선택하는 유권자들은 바로 이런 정부를 선택하게 된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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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