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중동 위기는 국제 무대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현실적인 위치를 여실히 보여준다. 워싱턴의 영향력이 예전같진 않을지 몰라도 미국을 대신해 국제무대에서 중심적 역할을 담당할 마땅한 “대타”가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이같은 영향력을 유지하려면 미국은 지금보다 현명하게 행동해야 하고, 이제까지 해온 것 이상을 해내야 한다.
하마스의 공격으로 시작된 중동 위기 이후 러시아와 중국의 움직임은 눈에 띄지 않는다. 지난 수 년 동안, 양국은 다양한 방법으로 중동지역에 진출했다. 러시아는 이스라엘과 우호관계를 구축했고,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외교관계 재개를 촉진하는데 힘을 보탰다. 그럼에도 가자 위기가 터진 이후 러시아아 중국 가운데 그 어느쪽도 긴장 해소나 해법 제공에 이렇다할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미국은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개입했다. 바이든은 먼저 하마스의 테러공격을 규탄하고 이스라엘과의 연대를 강조했다. 이처럼 미국의 분명한 입장을 밝힌데 이어 바이든은 “조심스런 충고”로 중심축을 이동했다. 그는 이스라엘을 향해 분노에 사로잡혀 성급하게 행동해선 안된다고 강조하고, 9/11 사태를 예로 들어가며 “전대미문의 테러공격으로 분노와 두려움에 사로잡힌 워싱턴은 성급한 대응으로 참담한 실수를 저질렀다”고 시인했다.
이스라엘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길 바란다. 바이든의 지적대로 9/11 이후 일련의 참담한 결정을 내린 미국은 아직도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고 있다. 당시 미국은 수 십만명의 인력과 스물 네 개의 기구를 하나로 아우르는 “국토 안보” 관료시스템을 급조했다. 이와 함께 대통령의 권한을 극적으로 확대했고, 정부 기밀을 추가했으며, 테러리스트 피의자들에 대한 고문을 사실상 허용했다.
워싱턴의 군사전략 역시 처음부터 결함을 보였다. 9/11을 직접 계획하고 실행한 사람들에 초점을 맞추는 대신 그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야심찬 접근방식을 취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말을 빌리자면 “테러리스트들과 그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자들” 사이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 결국 미국은 알카에다뿐만 아니라 탈레반과도 전쟁을 치러야 했다. 워싱턴은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다시는 통치하지 못하도록 차단하기 위해 장장 20년간 전쟁을 치렀지만 끝내 패했다.
물론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와도 전쟁을 벌였다. 이처럼 전쟁과 관료제 확대 등으로 압축되는 미국의 9/11 대응에는 무려 8조 달러의 가격표가 붙었다.
이스라엘이 취해야할 교훈은 분명하다. 가자에 지상군을 투입하는 것은 하마스의 테러공격에 대한 감정적 반응이다. 이스라엘은 단순대응 차원을 넘어 대담하고 극적인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점을 과시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그것이 현명한 방법일까? 가자에서 지상전을 벌일 경우 이스아엘군은 미로 같은 골목과 동굴에서 테러분자들을 상대로 위험천만한 소탕전을 펼쳐야 한다. 또한 이스라엘 지상군 투입은 가자지역에 참혹한 인도주의적 비극을 초래해 아랍국가들을 격앙케하는 것은 물론 세계 여론마저 이스라엘에 등을 돌리게 만들 것이다.
설사 이 모든 과정을 거쳐 전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이스라엘이 얻는 것은 무엇일까? 하마스 이후에 누가 가자를 다스리게 될까? 이곳에 들어선 새로운 자치정부와 이를 인정하지 않는 저항세력 사이의 무력다툼을 누가 수습할 것인가? 이런 일에 개입할 아랍국이나 유럽국가는 단 한 곳도 없을 것이다 결국 이 모든 뒤치다꺼리는 온전히 이스라엘의 몫이 된다. 이스라엘의 전설적 전사이자 극우파 정치인이었던 아리엘 샤론이 가자에서 손을 뗀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테리리즘의 노림수는 과잉반응을 유발하는 것이고 이에 대한 최상의 대응은 자제력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을 과거 테러 공격을 당했을 때, 시간을 벌어가며 실제로 테러를 계획하고 실행한 인물들을 집요하게 추적해 살해했다. 1972년 뮌헨 올림픽 학살을 자행한 팔레스타인의 테러 조직인 “검은 9월단”에도 같은 방식으로 대응했다. 만약 워싱턴이 알카에다를 상대로 이와 유사한 접근법을 구사했다면 지금 미국이 처한 형편이 훨씬 나아졌을 것이다.
조심스런 대응을 촉구한데 덧붙여 바이든은 독립국가 수립이라는 팔레스타인의 열망 달성을 위한 정치적 경로를 제공하도록 이스라엘 정부에 압력을 가해야 한다. 수 십년 동안, 미국은 집권당에 상관없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효과적인 중재자로 활동했다. 팔레스타인 관리들은 마틴 인디크, 데니스 로스와 에드워드 제레지안과 같은 미국의 외교관을 전폭적으로 신뢰했다. “협상을 통한 팔레스타인 국가 수립”이라는 목표를 위해 지칠줄 모르는 노력을 기울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테러리즘을 포기하고 이스라엘을 인정하라고 압력을 행사했지만 그와 동시에 이스라엘에게도 정착촌 건설을 중단하라는 압박을 가했다.
이런 모든 노력은 팔레스타인 수뇌부의 이기적이고 우유부단한 태도와 연이어 들어선 이스라엘의 우익 정부가 두 국가 공존 해법을 거부하고, 정착촌을 확대하는 등 팔레스타인이 처한 조건을 외면하면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끝이났다. 이 때문에 하마스는 비폭력 협상을 통한 해법은 없으며 테러행위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을 펼칠 수 있었다.
이제 미국은 다시 중동의 적극적인 중재자로 나서야 한다. 물론 무리한 외교적 주문이겠지만, 이에 대한 대안은 위기를 방치하는 것밖에 없고, 이 경우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끔찍한 폭력이 이어질 것이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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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드 자카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