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샌프란시스코 도심의 노스트롬 유니온스퀘어점이 개점 35년 만에 문을 닫았다. 노스트롬은 미국의 고급 백화점 체인이다. 특히 유니온스퀘어점은 ‘샌프란시스코의 랜드마크’로 불릴 정도로 장사가 잘되는 곳이라는 얘기를 들어왔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비대면 온라인쇼핑이 대세가 되면서 매장을 찾는 고객의 발길이 뚝 끊겼다.
CNN 등에 따르면 노드스트롬 백화점을 찾은 유동 인구는 2019년 970만 명에서 2022년 560만 명으로 42%나 급감했다. 같은 기간 매출도 4억5,500만 달러에서 2억9,800만 달러로 쪼그라들었다. 미국의 최대 오프라인 유통 업체인 월마트도 손실 누적을 이유로 올 4월 시카고 매장 4곳을 폐점했다. 월마트의 전체 시카고 매장 8곳 가운데 절반이 문을 닫은 것이다.
백화점·대형마트의 쇠락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유통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국내 3대 마트인 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의 점포 수는 2019년 423개에서 지난해 396개로 줄었다. 이마트의 영업이익률도 지난해 1.67%로 급락했다. 불과 5년 전인 2017년에 5.13%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감소세가 가파르다. ‘새벽 배송’ ‘로켓 배송’ 등으로 온라인 장보기가 확산되면서 대형마트의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는 추세다.
주요국들은 유통산업 구조의 변화에 맞춰 백화점·대형마트에 대한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고 있다. e커머스(전자상거래) 급성장 등으로 유통 환경이 급변하면서 규제의 실효성이 없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1906년부터 시행해오던 대형 유통 업체의 일요일·야간 영업금지 조치를 2015년 해제했다. 일본 역시 대규모 유통업체의 영업제한 규제를 2000년 없앴다. 일본은 1974년 ‘대규모 점포법’ 도입 후 대형 유통사의 점포 면적, 개점일까지 엄격하게 제한했었다. 미국은 대형 유통 업체에 대한 출점·영업시간·휴업 일수를 규제하는 법안이 없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세계적인 유통 규제 완화 흐름과는 거리가 멀다.
이런데도 더불어민주당은 시대 변화에 눈감은 채 골목상권 보호만 되뇌고 있다. 지난해 12월 대형마트를 대표하는 한국체인스토어협회, 중소상인을 대표하는 전국상인연합회,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는 대형마트의 휴일·새벽 온라인 배송을 허용하자는 데 합의했다. 온라인 판매에 한해 대형마트의 의무휴업 규제를 적용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런 내용을 반영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마련됐지만 민주당은 “골목상권에 큰 피해가 갈 것”이라며 이마저도 발목을 잡고 있다.
10년 전 유통산업 규제가 시작된 후 전통시장이 살아나기는커녕 대형마트·골목상권 모두 뒷걸음질쳤다. 자유기업원의 ‘대형마트 규제 10년의 그림자와 향후 개선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전체 소매시장에서 대형마트 비중은 21.7%에서 12.8%로 급감했다. 전통시장 비중도 13.9%에서 9.5%로 줄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 4월 유통물류 관련 4개 학회 전문가 1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6.9%가 대형마트 규제에 따른 전통시장 활성화 효과는 없었다고 답했다.
58.3%는 대형마트 규제의 혜택을 보는 곳으로 온라인쇼핑을 꼽았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보듯이 모바일 시대에 오프라인 유통 매장은 경쟁력이 떨어지면 자연스럽게 도태된다. 유통 업체의 생존은 대형마트·쇼핑몰 영업시간 제한 여부에 상관없이 시장에서 결정되는 것이다. 온라인으로 빠르게 옮겨가는 거대한 유통 물결을 거스르면 한국은 유통혁명 시대의 구경꾼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 시장은 급변하고 국민들의 소비 행태도 달라지고 있다. 민주당도 ‘대형마트를 막으면 전통시장이 산다’는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
임석훈 서울경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