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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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샌티스의 트럼프주의

2023-08-23 (수)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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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정책 의제를 그대로 가져오되 극적인 요소를 걷어내고, 효율적인 집행을 강조한다.”

공화당 대통령후보 경선 주자들이 예비선거 유권자들에게 다투어 제시하는 정책 및 행동강령이다. 한마디로 트럼프를 따라하되 감정과잉과 준법정신 결여 성향을 배제함으로써 생명존중, 헌법준수, 작은 정부와 지출억제, 종교의 자유를 중시하는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의 표심을 잡는다는 계획이다.

안된 말이지만 제 아무리 스타일에 변화를 준다 해도 트럼프식 의제에 매달리는 한 전통적 보수주의자들이 존중하는 원칙을 충족시킬 수 없다. 트럼프의 아젠다는 모든 원칙을 단 하나의 목표에 종속시킨다. 진보진영을 비롯, 눈 밖에 난 집단들을 뒤흔들어놓는 게 그의 목표다.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가 밀어붙이고 있는 아젠다가 좋은 본보기에 속한다. 디샌티스는 트럼프에 비해 월등한 정책 실행력을 보유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독성 높은 트럼프의 아젠다를 능률적으로 추진할 경우 전임 대통령의 무능 덕에 간신히 명줄을 보존한 보수주의적 가치는 심각하게 훼손될 수밖에 없다.


지난달 효력을 발생한 디샌티스의 새로운 반이민법을 예로 들어보자. 그의 극단적인 반이민법은 이전 트럼프 행정부보다 유능한 공화당 정권이 들어선다면 전임 대통령이 미처 끝내지 못한 경제적, 문화적 아젠다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그러나 이제까지 나온 증거로 볼 때 디샌티스의 반이민법은 보수주의자들이 옹호하는 핵심가치를 오히려 약화시킨다.

플로리다주에서 시행 중인 반이민법의 여러 극단적인 내용 가운데 가장 눈에 뜨이는 대목은 병원 측이 모든 외래 환자의 법적 체류신분을 확인해 주정부에 보고해야한다는 조항이다. 물론 이 조항은 이민자들과 그들의 가족이 잠재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치료마저 꺼리게 만드는 ‘냉각 효과’를 가져온다.

플로리다 이민자연합의 레나타 보제토 부국장은 반이민법 시행이후 병원진료를 받아도 괜찮은지 묻는 이민자들의 핫라인 상담전화가 쇄도했다고 전했다. 보제토 부국장은 새로 시행된 법이 서류미비 환자들의 진료를 허용하는지 확실치 않다는 이유로 의료서비스 제공자가 최소한 두 건의 예약을 취소한 최근 사례를 소개했다.

분명히 말하건대, 서류미비 환자도 병원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반이민법이 무엇을 허용하고, 무엇을 금지하는지에 대한 잘못된 정보가 판을 치고 있고, 이들 대부분이 고의적으로 유통되고 있다고 보제토 부국장은 주장한다. 그녀는 불법이민자들을 위축시키는 ‘냉각효과’가 반이민법 지지자들이 추구하는 목표라고 지적한다. 보제토는 “플로리다 반이민법은 연방정부에 의해 관리되어야할 법을 주정부가 집행하려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라며 “이를 둘러싼 혼란은 주정부의 정책이 연방정부의 정책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연방대법원은 이민법은 주정부가 아닌 연방 정부의 소관이라고 판결한 바 있다. 연방대법의 판례는 현재 진행중인 플로리다 반이민법에 대한 위헌소송에 법적근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디샌티스와 그의 아류들은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듯 보인다. 다른 공화당 대통령 경선후보들과 마찬가지로 디샌티스도 제14차 수정헌법에 명시된 ‘출생시민권’ 폐지를 공약한 바 있다.

또한 새로운 이민법은 플로리다주의 재정과 경제적 이점을 갉아먹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예를 들어 플로리다 주정부는 새 이민법에 따라 남쪽 국경으로 밀려든 중남미 망명신청자들을 버스에 태워 민주당성향이 강한 ‘블루 스테이트’로 보내는데 납세자들의 혈세를 사용한다.

한편 플로리다주의 고용주들은 반이민법과 정치 지도자들이 주 전체 노동인력의 1/4 이상을 차지하는 이민자들을 적대시하는데 대해 강한 우려를 표시한다. 아직 포괄적인 자료가 나오지 않았지만 고용주들은 주의회가 이민법을 통과시킨 이후 일부 외국태생 직원들이 출근을 하지 않거나 아예 플로리다주를 등졌다고 푸념한다. 직장에서 혹은 그들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불법이민자로 체포되는 게 두렵기 때문이다. 새로운 이민법이 특정 주에서 발급받은 운전면허증의 효력을 정지시켰기 때문에 발이 묶인 근로자들도 적지 않다.


현지의 이민옹호론자들은 직장을 그만두거나 타주로 떠난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합법적으로 미국에 거주하며 일할 수 있는 자격을 갖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로리다를 등진 이유는 그들과 함께 지내는 가족 중 누군가가 행여 위험을 당할까 두려웠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플로리다주의 일부 공화당 정치인들조차 노동인력의 엑소더스로 건설과 곡물수확에 큰 차질이 빚어지는 것을 우려했다.

이같은 정책 변화는 단지 플로리다 주의 기업들에게만 해를 끼친 게 아니다. 공화당 정치인들이 늘 최고의 우선순위를 부여한다고 주장해온 종교인들도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멜버른 나사렛예수제일교회의 담임목사인 조엘 툴리는 지난주 열린 플로리다 중부지역 구역회의에서 여러 명의 목사들로부터 반이민법 시행이후 교인 수가 급감했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말했다. 농촌지역의 한 교회는 최근 수개월 사이에 신도의 95% 가량을 잃은 것으로 알려졌다.

비이민 신자들도 플로리다주의 새로운 법에 우려를 표명했다. 이 법은 특정한 상황에서 서류미비자에게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행위를 중범으로 다스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최근까지 공화당원이었던 툴리 목사는 당적을 버리고 무소속으로 돌아섰다며 해당 법조문은 신도들의 일반적인 활동에 족쇄를 채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많은 목사들과 마찬가지로 그 역시 신도들에게 차가 없는 다른 교인들이 식료품점이나 학교를 오갈 수 있도록 도와주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차량서비스는 대부분 주일예배 참석자들에게 제공되고, 이들 중 상당수가 서류미비자, 즉 불법이민자들이다.

이제 이같은 신앙 표현은 믿는 자들을 중범자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 모두는 야심만한한 정치인들이 백악관으로 가는 길을 닦아주기 위한 봉사행위로 변질된다.

캐서린 램펠은 주로 공공정책, 이민과 정치적인 이슈를 다루는 워싱턴포스트지의 오피니언 칼럼니스트이다. 자료에 기반한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램펠은 프린스턴대학을 졸업한 후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바 있다.

<캐서린 램펠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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