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에 맥주를 함께 마시는 한국만의 독특한 풍습을 ‘치맥‘이라고 한다. 치맥이 인기를 얻자 뼈를 발라먹는 것도 귀찮다는 소비자들 때문에 아예 뼈 없는 순살치킨이 한국 먹거리의 대세가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순살이라는 단어가 최근 아파트에도 붙어 한국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다. 즉 새로 대두된 신조어, 철근이 빠진 아파트를 두고 하는 말이다.
일반인의 생각으로 건물구조에 철근이 빠졌다? 이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일이다. 여하튼 이를 무량판공법이라고 한다. 이게 말장난이 아닌지… 상식적으로 볼 때 철근의 수를 최소화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안전에 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문제는 그 도를 넘어 이 공법으로 이미 시공된 정부주도 공공임대주택 아파트 중에 안전에 해가 될 정도로 철근을 빠뜨린 단지가 15개나 되는 것으로 드러난 점이다. 정부는 부랴부랴 민간 아파트들도 전수조사에 들어간다고 했다. 5곳은 이미 사람이 살고 있는 단지여서 붕괴하는 불상사가 벌어지면 대규모 인명피해가 불가피할 것이다.
대들보가 없는 무량판 구조는 기존 방식에 비해 인건비가 적고 층고도 낮아 공사비가 덜 든다는 장점 때문에 이를 통해 이윤을 극대화하다보니 화근이 된 게 아닐까.
얼마전 발생한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 사고와 관련, 문제의 건설사는 사고가 난 아파트 단지 전체를 전면 재시공한다고 밝혔다. 단지 전체를 재시공하다니, 그야말로 농담이 아닌 현실이다. 세계강국 반열에 들어갔다고 자랑하는 한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건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어느 신축 아파트들은 물이 샐 정도로 부실하게 지어진 결과가 신문에 도배가 되고 있다. 어느 빈곤국가의 소식도 아니고, 60년 전 못살았던 나라, 그 옛날 한국의 뉴스가 아니다. 선진국이라고 떠드는 바로 지금의 한국 실정이다. 하나에서 열까지 총체적인 부실이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게 비단 아파트업계만의 문제일까.
지난 8월초부터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대회도 가까스로 종료됐지만 이미 안전불감증에서 야기된 불만은 전세계에서 폭주했다. 수백명이 열 탈진 증상을 보여 병원으로 이송되고 기본적인 청결 수준도 지켜지지 않아 전 세계 학부모들로부터 불만이 쇄도한 것이다.
잼버리 대회는 한국 문화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세계 속에 알리겠다며 유치한 행사였다. 그런데 왜 배수처리도 잘 안 되는 간척지가 선정되었을까. 5년 전부터 준비해왔다지만, 8월 폭염에 대한 기초적인 대비도 제대로 안된 모양새였다. 한낮의 기온은 35도를 웃도는 가마솥더위인데, 그것도 예측 못하고 물이 안 빠지는 간척지에 텐트를 쳤다니… 무슨 일이 생길지 예측할 그런 두뇌도 없었단 말인가.
매일 온열질환자가 속출하다보니 그 당시는 대회 일정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런데 기껏해야 국무총리가 대회 공동조직위원장인 여가부 장관에게 “대회가 끝날 때까지 현장을 지키며 159개국 참가자 4만3,000명의 안전을 확보하라”고 지시한 것뿐이었다.
현장을 지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능력 있는 책임자들을 뽑아 체계적으로 잘 준비해야 될 일 아니었나. 온통 나라 망신으로 끝날 일을 그나마 보다 못한 국민이 적극 나서 전국으로 분산 수용하여 가까스로 국제적 망신은 면했다.
순살을 좋아하는 한국은 정말 말 그대로 뼈 없는 순살국가가 되어 버렸나. 군인들이 주도하던 권위주의 시절에나 있을 법한 일들이 여전히 자행되고 있다. 지금은 민주화를 노래한지 십수년이 지났고, 새 정권이 들어온 지 2년이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다. 도대체 서로 손가락질하기만 좋아하지 뼈대는 어디에 묻어놓은 것일까. 체통도 없고 뼈도 없는 그야말로 흐물흐물 순살국가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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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 뉴욕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