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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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는 우방국들

2023-06-05 (월)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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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치러진 터키의 총선을 취재하던 중 필자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터키의 최고위 공직자인 술레이만 소이루 내무장관이 관저의 발코니에서 군중을 향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터키에 어려움을 안겨주는 대상을 모조리 치워버릴 것”이라며 “거기에는 미군도 포함된다”고 외쳤다. 이에 앞서 소이루는 “친미 노선을 추구하는 자들을 반역자로 간주할 것”이라는 으름장까지 놓았다. (미군 기지가 위치한) 터키는 70년 전 나토에 가입했다.

에르도안도 종종 반서방적인 수사를 구사한다. 대통령 선거 1차 투표 1주일 전에 그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어린 아이를 살해하는 테러리스트들, 혹은 서방국들을 향한 나의 엄중한 경고를 야당후보는 입에 올리지 조차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에르도안이 서방세계를 향해 극단적인 태도를 취하는 대표적인 인물일지 몰라도 유일한 인물은 아니다. 숱한 논객들이 지적했듯 세계 인구의 대부분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항하는 서방국들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우크라이나전은 거대한 인구를 지닌 파워풀한 개발도상국 사이에서 반서방, 반미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는 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지난 브라질 대통령선거에서 전통적 중도좌파 성향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가 변덕스런 포퓰리스트로 통하는 자이르 보우소나르를 제치고 당선되자 서방측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취임 후 불과 몇 개월만에 룰라는 서방측을 맹렬히 비난하고, 미국의 달러 패권주의에 분노를 표출하는가 하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이번 전쟁의 책임을 동등하게 져야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번 주 잔인한 강권통치로 악명이 높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주엘라 대통령을 브라질리아로 초청해 정상회담을 가졌다. 마두로 정권이 들어선 이후 지금까지 수백만 명의 베네주엘라 인들이 그의 학정을 피해 해외로 빠져나갔다. 룰라는 독재자인 마두로에게 아낌없는 찬사를 퍼붓고, 마두로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제재를 가한 워싱턴을 맹렬히 비난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은 실리적이고 기업친화적인 온건주의자로 서방측과 돈독한 관계에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그가 이끄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갑작스레 기수를 돌려 러시아와 중국의 궤도권에 접근했다. 남아공 정부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난하지 않았고, 러시아와 중국 해군과 불러들여 합동 해상훈련을 실시했으며, 워싱턴으로부터 러시아에 무기를 제공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남아공은 이 같은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인도는 우크라이나전 개전 초기부터 러시아의 반대편에 설 의사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러시아는 인도 최대의 첨단 무기 공급원이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균형 잡힌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는 인도의 거듭된 의사표시가 나오자 미-인도 관계 전문가인 애쉴리 J. 텔리스는 앞으로 베이징과 미국 간에 위기상황이 발생할 경우 인도가 워싱턴 편에 설 것으로 섣불리 가정해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미국이 거대 개발도상 국가들과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가 무얼까? 이들의 태도는 필자가 2008년 “나머지의 선전”으로 정의한 현상에 뿌리를 대고 있다. 지난 20년 사이에 국제 체제에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한때 인구는 많지만 빈곤했던 국가들이 세계의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이동했다. 글로벌 경제의 미미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쳤던 그들이 세계 경제의 절반을 담당하는 “떠오르는 시장”으로 변신했다. 말 그대로 “나머지” 기타 등등 국가들이 뜬 셈이다.

경제와 정치가 안정되면서 문화적 자부심으로 부풀어 오른 이들은 급속히 민족주의 열기에 사로잡혔고, 이는 국제 체제를 지배하는 세력, 즉 서방에 대한 반감으로 나타났다. 대부분 열강의 식민지였던 이들은 자신들을 하나의 동맹체나 그룹으로 묶으려는 서방의 시도에 강한 혐오감을 드러낸다.


러시아 전문가 피오나 힐은 우크라이나전이라는 맥락에서 살펴보면, 이 같은 불신의 또 다른 요소는 이들 거대 개도국들이 미국이 외치는 룰에 기반한 국제질서를 믿지 않는데서 온다고 지적한다. 한마디로 이들은 워싱턴을 “오만과 위선”의 결정체로 바라본다. 숱한 군사개입과 일방적인 제재를 통해 미국은 다른 나라에 엄격히 적용하는 규정을 스스로 깨뜨린다. 다른 나라를 향해 열린 무역과 통상을 촉구하면서도 자의적으로 그 같은 원칙을 저버린다.

새로운 세계는 미국의 쇠락이 아니라 (필자가 2008년에 말했던) 나머지 국가들의 부상으로 규정된다. 한때 장기판의 말이었던 지구상의 방대한 지역들이 이제는 스스로 선수가 되어 자기이익을 위한 선택을 한다. 이들은 더 이상 쉽게 겁을 집어먹거나 외부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다. 이제는 말뿐인 국외용 슬로건이 아니라 실제로 국내에서 시행하는 실질적인 정책으로 이들을 설득해야 한다. 새로운 국제질서를 헤쳐 나가는 것이 미국 외교가 직면한 가장 큰 도전이다. 워싱턴은 과연 눈앞의 과제를 처리할 능력을 갖추고 있나?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파리드 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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