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치러진 터키 총선에서 야당의 신속하고도 완전한 승리를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터키가 세계적인 추세로 자리잡아가는 자유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로의 행진에서 벗어나길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는 빗나갔다. 아마도 우리는 “자유선거”라는 외형에 속고, 민의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 속절없이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사실 이번 터키 총선은 자유 민주주의의 부상이라는 세계적 추세를 뚜렷하게 보여준 가장 우려되는 케이스였다.
현직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아직 완전히 재선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과반득표자가 나오지 않은 총선투표 결과는 그의 승리로 받아들여진다. 에르도안은 각종 여론조사의 예상과 달리 선전하며 맞수인 야당 후보를 멀찍이 따돌렸다. 과반득표에는 실패했지만 28일로 예정된 결선투표에서 완승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터키가 치솟는 물가로 경제적 재앙에 치인 점을 감안하면 이번 선거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게다가 에르도안 행정부는 선거가 치러지기 몇 개월 전에 발생한 지진 피해 수습과정에서 총체적 무능을 드러내며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런 결과나 나왔는지 터키 총선의 감춰진 뒷면을 들춰보자. 에르도안의 대항마로 나선 야당 후보 케말 클로츠다로울루는 카리스마도 말재간도 없는 무미건조한 관료출신이다. 그러나 야당에겐 그 외엔 달리 대안이 없었다. 야당의 기대주였던 에크렘 이마모울루가 여당의 공작정치에 손발이 묶여 출마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케말 클로츠라오울루와 같은 당 소속인 아마모울루는 2019년 압도적인 표 차로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인이다. 에르도안이 이스탄불 시장직을 발판삼아 권력의 최고봉에 올랐다는 사실과 맞물리면서 유능한 정치인의 이미지를 지닌 아마모울루는 현직 대통령의 잠재적 라이벌로 떠올랐다.
그러나 아르도안의 소속정당은 이스탄불 시장선거에 부정이 있었다며 선거위원회에 재투표를 요구했다. 두 번째 투표에서도 압승을 거둔 이마모울루는 재선거 과정에서 공권력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돼 재판정에 섰다. 여당 지지자들로 채워진 사법부는 예상대로 움직였다. 지난 9월, 법원은 그의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3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마모울루는 즉각 항소했으나 대통령선거 출마가 불가능해졌다.
터키의 정치마당은 에르도안 쪽으로 심하게 기운 상태이다. 중앙정부는 에르도안의 지지자들에게 자금공세를 퍼붓고 있고, 언론은 정부의 대변인이 된지 오래다. 사옥을 비롯한 터키의 주요 언론사 소유 부동산은 에르도안을 지지하는 기업인들이 모조리 사들였다. (대통령과 거리를 유지해온 거대 비즈니스그룹은 느닷없이 세금사기 혐의로 기소위기에 처했고, 결국 소유 언론사의 지분을 정부 지시에 순종하는 새로운 오너에게 넘겼다.)
터키의 주요 뉴스 공급원인 관영 TV는 에르도안과 여당의 치적을 선전하느라 여념이 없다. 지난 4월, 관영 TV는 32시간을 에르도안 관련 보도에 할애한 반면 그의 정적에 관한 보도는 단 32분에 그쳤다. 터키는 세계의 민주국가들 가운데 가장 많은 언론인을 감옥으로 보낸다. 2020년 한해동안 “대통령 모독죄”로 기소된 언론인만 3만여명에 달한다.
에르도안 행정부는 조직적으로 법원과 선거관리기구를 장악했다. (만약 5월28일 결선에서 야당후보가 승리하면 에르도안은 선거결과에 불복할 것이고 선거관리 당국은 이스탄불 시장선거에서 그랬듯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현직 대통령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릴 것이다.) 터키 현지의 비정부기구들(NGOs)은 정부의 강도 높은 조사와 감시 탓에 활동에 제약을 받고 있다. 연이은 법 제정을 통해 소셜 미디어에 대한 단속도 대폭 강화됐다. 한 예로 트위터는 선거를 앞둔 주말동안 열두 명에 달하는 반정부 인사의 계정을 동결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지난 2월의 지진 이후, 소셜미디어에 정부의 무능을 비난하는 여론이 쇄도하자 정부는 가입자들의 트위터 접근을 한동안 차단했다.
이게 바로 자유 민주주의의 다음번 혁신 방향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대통령과 총리는 다수의 지배를 앞세워 선거구 조정 등 정치적인 구조적 이점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법을 만든다. 지지자들에게 정부 자금으로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독립적인 언론 그룹에 대해서는 세금 비리나 규정 위반을 꼬투리삼아 제재를 가한다. 강도 높은 수사로 눈엣 가시같은 언론인들과 NGO의 발목에 족쇄를 채우고, 독립적인 기구와 법원을 길들여 여당의 앞잡이로 만든다. 이런 사전정지 작업을 끝낸 다음 “자유” 선거를 실시한다.
많은 민주국가 시민들에게는 에르도안의 전술이 그다지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한때 독립적인 언론의 근거지로 꼽혔던 인도의 경우를 보라. “국경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인도는 국가별 순위 161위로 추락했다. 헝가리의 대다수 언론매체는 정부와 친정부 기업들의 수중으로 들어갔고 여당의 하수인으로 전락한 사법부 감독기구는 유럽연합의 눈총을 받고 있다. (사법부 감독기구의 초대 수장은 빅토르 오르반 총리 장남의 대부였다.) 멕시코의 사정도 비슷하다. 멕시코 대통령은 독립성을 자랑하는 선거감독기구 무력화를 줄기차게 시도했다.
이런 상황에서 선거가 치러지면 투개표과정에서 문제를 발견하지 못한 국제 선거 참관인단은 이를 공정한 선거로 인증하게 된다. 역설적으로 국제 선거참관인단이 온갖 편법과 불법을 통해 선출된 대통령과 총리의 정통성을 확인해주는 셈이다. 우리는 이같은 현상을 정의하는 새로운 어휘를 필요로 한다. 이것이 과연 자유선거인가? 기술적으로는 그렇지만 속속들이 불공정한 선거이기도 하다.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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