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왕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아마도 아더 왕일 것이다. 아더 왕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것은 12세기 웨일스의 성직자 몬마우스가 ‘영국 왕의 역사’를 쓰면서부터다.
그에 따르면 영국 왕 우더 펜드래곤이 틴타젤의 성주 골로이스의 아내 이그레인에 반해 성을 공격하던 중 마법사 멀린의 도움으로 골로이스로 변장해 성으로 들어가 이그레인을 임신시킨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아더는 훗날 우더가 죽자 영국 왕이 돼 전국을 통일하고 로마까지 쳐들어간다. 그러나 조카 모드레드가 아내 기네비어와 왕좌를 동시에 차지했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캄블람 전투에서 모드레드를 죽이지만 자신도 죽는다.
아더 왕 이야기는 전설이지만 그가 수태된 틴타젤이나 사망한 캄블람 모두 영국의 남서쪽 변방인 콘월에 있다. 전남 해남에 ‘땅끝 마을’이 있듯이 이곳에도 ‘땅끝 마을’이라는 뜻의 ‘Land’s End’라는 곳이 있다. 왜 하필 이런 변두리를 전설의 무대로 설정한 것일까.
해답은 고대에는 이곳이 변방이 아니라 영국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고대인 중 영국을 가장 먼저 탐험하고 기록을 남긴 사람은 그리스인 피시아스다. 그는 기원전 325년 영국을 한바퀴 돈 뒤 이곳 원주민들이 스스로를 ‘브레타니케’라고 부른다는 기록을 남겼다. 켈트족 말로 ‘그림’ 또는 ‘색칠’이라는 뜻으로 원주민들이 파란 물감으로 얼굴을 색칠하는 관습이 있어 그런 말이 붙었다. 이것이 지금 ‘영국’을 뜻하는 단어인 ‘브리튼’의 어원이다.
피시아스가 영국을 간 이유의 하나는 당시 가장 귀한 광물의 하나인 주석(tin)을 찾아서였다. 모든 주요 고대 문명은 청동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데 청동을 만들기 위해서는 구리와 주석이 필수 요소다. 구리는 비교적 널리 퍼져 있지만 주석은 매우 귀했다. 그 귀한 주석이 콘월에 대대적으로 매장돼 있었던 것이다. 콘월에서는 고대부터 사용되던 대규모 주석 광산과 고대 주민들이 상당한 부를 축적했음을 보여주는 유적이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로마가 망하면서 영국으로 몰려든 게르만계 앵글과 색슨족과 원주민인 켈트족과 싸움이 벌어졌는데 이 때 켈트족을 이끈 부족장의 기억이 한데 섞여 아더 왕의 전설이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결국 켈트족은 패했고 영국은 앵글과 색슨족의 차지가 됐다. 영국을 뜻하는 또 하나의 이름인 ‘잉글랜드’는 ‘앵글족의 땅’이란 뜻이다.
영국의 가장 위대한 왕은 왕 중 유일하게 ‘대’자가 붙은 알프레드 대왕(Alfred the Great)일 것이다. 9세기 중반 웨섹스의 왕 에델울프의 4번째 아들로 태어난 알프레드는 형들이 차례로 죽는 바람에 왕이 되기는 했지만 바이킹이 쳐들어와 다른 앵글로 색슨 왕국이 모두 망하고 웨섹스 하나만 남는다. 알프레드는 게릴라 전으로 바이킹을 괴롭히다 에딩턴 전투에서 대승을 거둬 바이킹을 몰아낸다. 그 후 해군을 창설하는가 하면 교육과 문예를 장려해 영국의 수준을 높이는데 성공한다.
그 다음으로 주목할 왕은 ‘정복왕 윌리엄’이다. 바이킹의 후손으로 노르망디에 정착한 노르먼 족인 윌리엄은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영국 왕 해럴드를 죽이고 영국의 새 주인이 된다. 그러나 그런 왕도 프랑스에서 죽자마자 자식들이 왕위를 먼저 차지하겠다고 영국으로 달려가는 바람에 시체가 썩은 뒤에야 장례를 치르는 수모를 당한다.
대영제국 이전 가장 많은 영토를 가졌던 왕은 헨리 2세다. 아버지 앙주 공이 갖고 있던 땅에다 남프랑스 아키텐의 영주이자 한 때 프랑스 왕비였던 엘리노어와 결혼하면서 그 땅까지 차지, 프랑스 영토가 프랑스 왕보다 많았다. 그러나 그런 그도 다섯 아들이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비참하게 죽었다.
영국 왕 중 행복한 삶을 산 왕은 별로 없지만 그중에서도 찰스 1세는 최악의 경우다. 사사건건 의회와 맞서다 1649년 크롬웰에 의해 참수형에 처해졌다. 겨우 목숨만 건져 프랑스로 도망간 그의 아들은 훗날 크롬웰이 죽자 찰스 2세라는 이름으로 왕이 되지만 아버지가 죽자 자신을 벌레 보듯 하던 인간들이 왕이 되자 온갖 아첨을 떠는 모습을 보고 인간에 대한 환멸을 느껴 허랑방탕한 삶을 살다 죽었다.
찰스 3세가 지난 주 대관식을 마치고 영국 왕이 됐다. 9살인 1958년 왕세자가 된 찰스는 어머니 엘리자베스 2세가96세까지 사는 바람에 장장 65년을 기다려야 했다. 하마터면 아버지가 너무 오래 살아 왕이 돼보지도 못하고 죽은 장수왕의 아들이나 루이 14세의 아들과 손자(증손자가 즉위)처럼 될 뻔 했다. 영국 왕실에서 찰스라는 이름이 300년 가까이 쓰여지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과연 찰스 3세가 찰스라는 이름을 가진 전임자들과 달리 행복한 삶을 살게 될 지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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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