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J S 바흐는 65년의 삶을 사는 동안 1,100편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 질로는 말할 것도 없고 양으로도 필적할 상대가 없는 수준이다. 그가 많이 남긴 것은 작품만이 아니다. 그는 2명의 아내(전처 사망)에게서 20명의 자식을 낳았다. 그러나 이중 절반이 어려서 사망하고 어른이 된 것은 10명에 불과하다. 그가 활동하던 18세기 유럽인의 평균 수명이 30세 정도이던 이유다.
유럽만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현생 인류가 탄생한 20만년 전부터 18세기까지 인간의 평균 수명은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30세 남짓이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시적인 의학 수준과 식량 부족으로 태어나서 얼마 살지 못하고 죽는 아이들이 어마어마 하게 많았기 때문이다. 정치학의 창시자 토머스 홉스는 자연상태에서 인간의 삶은 “외롭고 가난하고 짐승같고 열악하고 짧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사실이었던 셈이다.
인간의 수명이 늘기 시작한 것은 18세기 중반 영국이 산업혁명에 성공하면서 먹을 것이 풍부해지고 의학이 발달하면서부터다. 영국인의 평균 수명은 지난 200년 동안 2배 이상 늘었고 산업화 확산과 함께 세계인의 수명도 증가하고 있다.
수명이 늘어났을뿐 아니라 고령이 반드시 노약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님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나오고 있다. 소위 ‘블루 존’이라 불리는 장수 마을에는 90세는 말할 것도 없고 100세까지도 건강하게 사는 노인들이 많다. 이들 지역은 이탈리아 사르데냐, 그리스 이카리아, 일본 오키나와, 코스타리카 니코야, 남가주 로마 린다 등 멀리 떨어져 있지만 이곳 주민들은 야채와 해산물, 올리브 오일과 견과류가 들어 있는 지중해식 식단을 선호하고 부지런히 몸을 움직이며 사회적 유대가 강한 공통점이 있다.
지난 주 나이 80으로 미 역사상 최고령인 조 바이든이 재선 출마를 공식 발표했다. 그가 재선에 성공해 2029년까지 임기를 마치면 86세가 된다. 1984년 당시 73세였던 레이건이 재선에 도전하자 나이가 문제가 됐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당시 레이건은 TV 토론에서 “나는 나이를 캠페인 이슈로 삼지 않겠다. 정치적 이유로 상대 후보의 젊음과 경험 부족을 이용하지 않겠다”고 말해 월터 먼데일 민주당 후보를 비롯한 관중들의 폭소를 자아냈다.
지금 바이든의 지지율은 42%로 역대 대통령과 비교해 매우 낮다. NBC 조사에 따르면 미 국민의 71%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미 국민의 70%가 바이든의 재선 출마를 원하지 않고 있으며 민주당에서도 이를 지지하는 사람은 1/3에 불과하다.
거기다 인플레는 40년래 최악이고 이로 인해 미국인의 실질 임금은 바이든 취임 이후 오히려 낮아졌다. ‘형사 정의 위원회’에 따르면 살인율은 2019년에서 2022년 사이 미 23개 도시에서 평균 39% 증가했고 ‘약물 남용 국립연구소’에 따르면 마약으로 인한 사망자는 2019년에서 2021년 사이 40%가 넘게 늘었다. 미국민들이 미래를 비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럼에도 바이든과 민주당은 2024년 대선 승리를 자신하고 있다. 그 이유는 공화당 대선 후보가 도널드 트럼프가 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 때 최다 대의원 주인 가주 공화당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에 두 자리 수로 앞서 가던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 주지사는 최근 밀리는 모양새다. 에머슨대 여론 조사에서는62대 16으로, 팍스 조사에서는 53대 33세로 트럼프에 뒤졌다.
이렇게 된 것은 최근 트럼프가 포르노 배우와의 성관계 사실을 입막음하려다 서류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MAGA 등 열성 트럼프 지지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공화당 전체가 이를 ‘정치적 기소’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다른 후보들은 눈치만 볼뿐 트럼프를 공격하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민주당이 손쉬운 트럼프를 상대 후보로 만들기 위해 기소를 서둘렀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트럼프는 비교적 경제가 괜찮았던 2020년 11월에도 바이든에 패했다. 그 후 계속 말도 안되는 선거 부정을 외치면서 2021년 1월 6일 폭도들의 연방 의사당 난입을 부채질했고 2022년 중간 선거에서 자신의 부정 선거 주장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후보들을 내세웠다가 참패했다. 앞으로도 의사당 난입 선동과 조지아 대선 결과 조작 압력, 기밀 서류 반출 등과 관련한 수사가 계속되고 있어 언제 추가 기소될 지 모른다.
그런데도 공화당이 그를 대선 후보로 뽑으려 하고 있다니 할 말이 없다. 바이든은 여러모로 부족한 후보지만 최악 저질인 트럼프를 막기 위해 현재로서는 대안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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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