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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는 포퓰리즘병, 유권자가 ‘치유’해야

2023-04-21 (금)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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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는 1900년대 초반 ‘세계 5대 부국’으로 알려질 정도로 잘살았다. 동남부 광대한 평원 팜파스를 중심으로 대규모 농업과 축산업이 발달했다. 산업혁명으로 부유해진 유럽이 다양한 농산물과 고기를 이곳으로부터 수입하면서 아르헨티나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40여 년간 평균 6%에 달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1946년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이 집권한 후 내리막길을 걷는다. 페론은 과도한 임금 인상, 무상 복지, 산업 국유화 등의 포퓰리즘 정책을 밀어붙였다. 이로 인해 단기적으로는 빈곤율이 낮아지고 빈부 격차가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났다. 하지만 곧 재정이 파탄 났고 경제는 침체에 빠졌다. 페론은 결국 1955년 군부 쿠데타로 쫓겨났다. 지나친 정부의 시장 개입이 비효율을 낳아 ‘정부 실패’를 초래한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이후에도 독재 정권과 페론주의 정권이 번갈아 집권하며 ‘디폴트(국가부도)’를 선언하는 등 위기를 되풀이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의 선심 정책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해마다 1조 원 이상을 투입해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사들이도록 하는 양곡관리법을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농민 표를 겨냥한 이 법안은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재투표에서 부결됐다. 건강보험 재정 파탄을 초래한 ‘문재인 케어’를 유지하기 위해 건보 기금에 재정 투입을 의무화하는 법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위해 5년 동안 19조~71조 원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한다. 협동조합 등 자신들의 지지 기반을 지키기 위해 연 7조 원가량 지원하는 ‘사회적경제기본법’도 밀어붙이고 있다.


대구·경북 신공항 건설 특별법과 광주 군 공항 이전 특별법은 최근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두 공항 건설과 이전에 무려 20조 원의 예산이 들지만 여야는 예비타당성 조사까지 면제하기로 담합했다. 여야 정치권에서는 ‘1,000원 아침밥’ 확대, 반값 대중교통비, 전 국민 1,000만 원 저금리 기본 대출 도입 등 시장경제 원리를 거스르는 매표(買票)성 정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선거 때마다 불거지는 포퓰리즘 경쟁 속에 정부의 관리재정수지가 2008년 이후 15년째 적자를 지속해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지난해 중앙·지방정부의 채무를 합한 국가 채무는 1,067조 원으로 사상 처음 1,000조 원을 넘었다. 2017년 660조 원이었는데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 남발로 5년 새 400조 원 이상 급증한 영향이 컸다. 가계부채는 지난해 1분기 기준 GDP의 104.3%로 주요 36개국 가운데 가장 높다. 기업부채는 116.8%로 이미 외환위기 당시 수준을 넘어섰다. 나랏빚이 과도하게 많으면 국가 신인도 하락을 낳고 경제 위기를 증폭시킬 수 있다. 안 그래도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세수는 줄고 복지 수요는 급팽창해 미래 재정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여야가 예산 퍼주기 경쟁을 벌이면 머지않아 나라 곳간이 거덜 나고 미래 세대는 증세에 허리가 휘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인류가 만들어낸 최선의 정치 시스템이라지만 많은 약점을 지니고 있다. 정치인들이 온갖 ‘사회적 뇌물’을 뿌려대며 국가 권력을 손쉽게 매수하려 들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가 추락하고 그리스 등 남유럽 국가들이 2008년 이후 재정 위기에 내몰린 것은 국민들이 포퓰리즘을 쏟아낸 정치인들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무상’ 정책을 남발하면 국민들의 도덕적 해이와 재정 펑크를 초래하게 된다. 서구의 선진 복지국가들도 기존 정책의 실패를 반성하며 ‘고(高)복지-고(高)부담’에서 복지와 부담을 함께 줄이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유대인들의 고전 탈무드는 “남의 자비에 의존하느니 차라리 가난을 택하라”는 지혜를 전한다. 자비를 폄훼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자조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자유와 시장을 바탕으로 해방과 6·25전쟁 이후 불과 70여 년 만에 선진국으로 도약시킨 성과가 허무하게 무너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도지는 포퓰리즘병이 더 번지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다. 유권자들은 정치인들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지 말고 외려 엄하게 심판해야 한다.

<오현환 서울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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