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국립 도서관은 지난 주부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을 1973년 ‘동양의 보물전’ 이후 50년만에 일반에 공개한다고 한다. 1377년 백운 화상이 집필한 이 책은 19세기말 프랑스인에 팔려 넘어갔는데 이번 ‘인쇄하다! 구텐베르크의 유럽’ 전시회 품목중 하나로 선보이게 된 것이다. 서양 최초의 금속 활자본인 ‘구텐베르크 성경’이 나온 것이 1455년이니까 이보다 78년 먼저 만들어진 것은 틀림없다.
한국이 출판 강국이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또 있다. 1966년 석가탑을 보수하다 나온 ‘무구정광 대다라니경’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인쇄물이다. 당나라 측천무후 때만 사용되었던 ‘무주제자’란 특별한 한자가 사용돼 제작 연대는 8세기 초로 추정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1443년 창제된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이며 뛰어난 문자라는데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없다. 이 때 떠오르는 한 가지 의문은 이처럼 훌륭한 문자와 인쇄술을 가지고 조선은 500년 동안 무엇을 했나 하는 점이다.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은 르네상스와 종교 개혁과 과학 혁명 등 서양 발전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조선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대표적 사례로 도자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한국에서는 1592년 일본의 침략전쟁을 ‘임진왜란’으로 부르지만 일본에서는 이를 ‘도자기 전쟁’으로 부른다. 침략한 왜군이 제일 먼저 한 일은 우수한 도공을 납치해 일본으로 끌고 간 것이다. 당시 일본은 도자기를 만드는 기술이 없었고 ‘잘 만든 도자기는 성 한채와도 바꾼다’는 말이 돌 정도로 귀하게 대접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장 중에서도 사쓰마의 시마즈 요시히로와 히젠의 나베시마 나오시게가 특히 도공 납치에 열을 올렸다. 대표적 도공 중 히젠으로 끌려간 사람이 이삼평, 사쓰마로 간 이는 심당길이다. 공주 출신으로 알려진 이삼평은 히젠 아리타 인근에서 양질의 백토를 발견하고 여기다 가마를 지어 백자를 생산했다. 이곳에는 ‘도자기의 조상’ 도조 이삼평을 신으로 모시는 ‘도산신사’가 있고 1917년에는 그가 도자기를 만든지 300주년을 기념해 ‘도조 이삼평 비’까지 세웠다.
일제 강점기에 세워진 비임에도 “이삼평은 우리 아리타의 도조임은 물론, 일본 요업계의 큰 은인이다. 현재 도자업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 은혜를 입고 있어 그 위업을 기리어 여기에 모신다”고 쓰여 있다. 아리타 도자기는 유럽으로 날개 돋친듯 팔려 나가며 천문학적 수입을 가져다 줬다.
150년 전인 187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만국박람회에 처음 참가한 일본은 조선 도자기를 일본식으로 변형한 ‘사쓰마 야키’를 선보였다. ‘야키’는 ‘구웠다’는 뜻이고 사쓰마는 일본 열도 최남단에 위치한 지역 이름이다. 이 도자기는 유럽인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사쓰마는 이 도자기를 대량 수출해 엄청난 돈을 벌었다.
이 도자기를 만든 사람이 심수관으로 그는 임진왜란 때 끌려온 도공 심당길의 12대 후손이다. 사쓰마가 조슈와 함께 에도의 막부를 타도한 후 메이지 유신의 주역으로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이렇게 마련한 풍부한 자금 덕이었다. 12대부터 그 후손들은 심수관이란 이름을 물려받아 아직도 그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에서는 납치된 도공을 데려오려고 사신을 보냈으나 대부분은 귀국을 거절했다. 조선에서는 천민 취급을 받았지만 일본의 호족들은 이들을 사무라이급으로 대접하고 도자기 개발과 생산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기술과 자산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조선의 지배 계급이 기술자들을 무시하고 ‘공자왈 맹자왈’만 되뇌는 사이 일본은 남의 것을 훔쳤지만 이를 토대로 부를 축적, 메이지 유신을 일으켜 근대화에 성공한 후 자신에게 기술을 가르쳐 나라를 병탄했다는 사실은 가슴 아픈 역사의 아이러니다.
예나 지금이나 한 나라의 부를 좌우하는 것은 그 나라가 가진 기술력이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기술 가진 사람을 우대하고 기술 개발을 후원하는 것이다. 조선 500년 동안 양반들이 몇자리 되지도 않는 관직에 오르겠다고 머리 싸매고 과거에 올인하는 대신 그 우수한 인쇄술과 한글을 이용해 천하지대본이라고 부르던 농업은 물론 요업을 비롯한 각 분야의 기술과 지식을 개발하고 보급하는데 힘썼더라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요즘 좀 식었다고는 하나 청년들의 공무원 지원율이 수십대 일에 달하고 일류 공대에 들어간 학생들까지 중퇴하고 의대로 몰리는 현상은 한국의 앞날을 걱정스럽게 한다. 가장 오래된 금속활자와 목판 인쇄물을 갖고 있음을 자랑하는 것도 좋지만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을 정책을 세워 집행하는 것이 더 시급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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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