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냉전(New Cold War)은 이미 시작됐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이 2019년 뉴욕타임스 기고문을 통해 한 주장이다. 이 신냉전이란 개념은 이 때만 해도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그에 따른 세계적인 파급효과를 과장해 포장한 용어정도로 파악됐다.
푸틴의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이를 시진핑의 중국이 지지하고 나섰다. 이와 함께 이는 기존의 미중패권경쟁과 별개인 독립적 사안이 아니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신냉전은 국제정치에서 최대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이라도 하고 있는 것일까. 중국에서는 전쟁의 북소리가 계속 높아가고 있다. 전쟁에 대비해야 한다는 경고의 선전선동이 그치지 않고 있는 것.
그런데 정작 시진핑은 ‘신냉전’이란 말에 경기(驚氣)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런 용어를 사용하는 자체가 ‘냉전적 사고방식의 발로’라는 식의 날선 공격을 하고 있는 것. 왜 그토록 격한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1976년 마오쩌둥이 사망하자 중국공산당은 경제개혁에 착수했다. ‘사상을 해방하고 사실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일치단결하여 앞을 보자’라는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노선을 채택한 1978년의 3중전회(三中全會)가 그 시발이다. 이후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의 전폭적 지원과 함께 중국경제는 비약적 발전을 거듭했다.
중국은 그러면 말 그대로 사상을 해방했을까. ‘사회주의자의 손에 자본주의의 도구를’- 개혁·개방을 바라보는 중국 공산당지도자들의 근본적 시각이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채택한다든지 통치 이데올로기를 바꿀 생각은 전혀 없었다. 목적 달성을 위해 자본주의 방법도 동원한다는 것이 베이징의 개혁·개방정책이었다.
그 개혁과정에서 마오쩌둥식 압제가 다소 완화됐다. 그러자 벌어진 것이 민주화 운동이고 시위의 격랑이었다. 그 한 피크가 1989년의 톈안먼 사태다.
톈안먼 시위의 배후에는 중국공산당과 사회주의 시스템을 전복하려는 반혁명세력이 있고 그 세력을 워싱턴이 돕고 있다. 이 같은 판단과 함께 덩샤오핑은 시위대에 대해 발포명령을 내렸다.
그리고 소련이 붕괴되자 덩샤오핑은 향후 20년 동안 중국의 대전략의 기초를 이루는 지침을 중국공산당에게 제시한다.
도광양회(韜光養晦- 빛을 감추고 어둠 속에서 힘을 키운다)전략이 그것이다. 암암리에 국력과 군사력을 증강해 반혁명 서방 세력에 맞서 싸우라는 지침이다.
이 때가 1992년이다. 그리고 7년 후인 1999년, 그러니까 클린턴 당시 미 대통령이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을 적극 돕고 있을 때 중국 인민해방군의 두 고위 장교는 ‘초한전(超限戰)’, 영어로는 'Unrestricted Warfare; China's Master Plan to Destroy America'란 제목의 책을 펴냈다.
미국을 적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미국을 패배시키는 것을 중국공산당의 최고 목표로 삼았다. 그 목표 달성을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라는 것이 이 ‘초한전’의 골자다.
전쟁수단을 무력과 군사수단으로만 한정하지 않았다. 군사적 수단은 전쟁의 한 부분일 뿐이다. 모든 곳이 전쟁터이고 모든 수단이 무기화 될 수 있다. 심리전^여론전^문화전^법률전^금융전^디지털전에 이르기까지 승리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 것을 이 책은 밝히고 있다.
병불염사(兵不厭詐-용병에서는 속임수를 꺼리지 않는다)로 대변되는 기만술이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로 ‘초한전’은 중국몽이라는 세계패권 달성을 위한 교본으로 받들어 지고 있다.
무엇을 말하나. 소련제국 붕괴와 함께 냉전은 끝났다. 이게 서방세계의 일반적 인식이었다. 중국공산당으로서는 그러나 냉전은 끝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마음속으로 칼을 갈며 지난 20년 이상 계속 은밀하게 냉전을 수행해온 것이다. 어떻게 서방을 무너뜨릴까. 온갖 방법을 동원해 암암리에 전쟁을 수행해온 것이다.
여기서 앞서의 질문으로 되돌아가자. ‘신냉전 운운은 그 자체가 냉전사고방식의 발로다’- 시진핑은 왜 이 같은 날선 발언을 하고 있을까. 그동안 펼쳐온 기만전술이 들통이 나는 데 따른 자기보호성의 반사 신경적 반응이 거짓말로 튀어나온 것은 아닐까.
그 ‘냉전 사고방식 발로’ 표현이 그리고 그렇다. 어딘가 상당히 낯이 익다. 중국의 어두운 면을 조금이라도 들추어내면 바로 나오는 반응은 ‘냉전 사고방식…’이란 예의 그 발언이다. 김정은 집단의 호전성, 비인도적 면을 지적해도 튀어나오는 반응은 똑 같다. 그리고 보면 ‘냉전 사고방식 발로’는 이른바 포스트 냉전시대에 좌파의 일관된 자기방어의 표어같이 들린다.
그건 그렇다고 치고 ‘초한전’을 펼치는 중국공산당의 기만전술은 미국 등 서방국가에서는 이미 들통이 났다. 그 전초기지인 공자학원이 잇달아 폐쇄되고 그 한 갈래인 중국공산당 해외통일전선공작부의 정치공작전도 속속 와해되고 있는데서 보듯이.
문제는 대한민국이다. 굴중친북의 문재인 정부에서 보수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바뀐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그런데도 한국에선 23곳에 이르는 공자학원이 한 곳이라도 폐쇄됐다는 소리가 없다. 오히려 성업(?) 중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한국의 정치권과 학계, 언론을 겨냥한 중국 공산당의 이른바 ‘영향력 공작-Influence Operation)도 여전한 가운데 중국공산당에 찍히지 않으려고 눈치 보기나 하고 있는 전문가란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라는 소식이 들려와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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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