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사는 수달인 해달(sea otter)은 지구상에서 크기에 비해 가장 털이 많은 동물이다. 평방 인치 당 15만개가 넘는 털이 있는데 이는 인간 머리털 밀도의 1,500배에 달한다. 이처럼 털이 많기 때문에 해달은 알래스카의 혹한에도 끄덕없다.
이로 인해 해달로 만든 코트는 서양인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지속적인 남획으로 멸종 직전까지 갔다. 1911년 미국과 러시아, 영국과 일본 등이 더 이상 해달의 사냥을 금지하는 조약에 서명했지만 한 때 10만 마리가 넘었던 해달 인구는 고작 1,000마리까지 줄어들었다.
무너진 것은 해달만이 아니었다. 북태평양 해안의 생태계는 켈프라 불리는 거대 해조류 숲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성게는 이 켈프를 먹고 사는데 성게의 천적인 해달이 없어지자 성게는 켈프를 모두 먹어 치웠고 이에 의지하던 다양한 생물 종이 사라지면서 해안이 사막으로 변한 것이다.
다행히 사냥 금지와 함께 해달 수는 1950년대 3만 마리로 늘어났고 이들을 퍼뜨리는 작업이 진행되면서 현재는 12만 5,000마리까지 증가했다. 이와 함께 성게의 수는 급감했고 이에 비례해 켈프 숲도 복원돼 지금은 생태계의 다양성이 회복됐다.
해달과 같이 생태계 질서에 결정적 역할을 하는 종을 ‘쐐기돌 종’(keystone species)이라고 부른다. 이는 1960년대 워싱턴 주 동물학자 밥 페인이 인근 해변의 불가사리를 연구하면서 만들어낸 개념이다. 페인은 밀물과 썰물이 교차하는 바닷가 풀에 살고 있는 동식물 중 불가사리와 홍합의 관계를 연구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두 종이 공존하고 있을 때는 다양한 생태계가 유지되지만 여기서 홍합의 천적인 불가사리를 제거하면 풀안의 먹이를 홍합이 모두 차지해 생태계는 파괴되고 홍합만 남게 된다. 불가사리가 ‘쐐기돌 종’인 셈이다.
동물 중 늑대만큼 인간에게 미움을 받는 것도 드물다. 근대 이전까지 인간 대부분이 살던 농촌 부근에 살면서 가축과 주민들을 수시로 해쳤기 때문이다. ‘크고 나쁜 늑대’(Big Bad Wolf)란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미국 대륙도 한 때는 늑대로 넘쳐 났지만 이제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미국은 물론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우스톤은 1872년 공원으로 지정된 후 늑대 박멸 작업을 벌여 1924년 마지막 늑대가 제거됐다.
그러나 늑대의 소멸과 함께 평화와 풍요가 찾아올 것이란 기대와는 달리 일어난 것은 생태계의 교란이었다. 늑대의 먹잇감인 사슴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새싹을 해치웠고 이로 인해 숲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던 새와 비버 등의 생존이 위협받게 됐다. 풀이 자라지 못해 홍수가 나면서 토양이 유실되는 등 생태계 파괴가 잇따랐다. 결국 공원 당국은 90년대 옐로우스톤에 늑대를 다시 들이기 시작했고 그 후 사슴 수는 줄어들고 숲은 늘어나면서 생태계는 안정을 되찾고 있다.
늑대 소멸로 인한 사슴 숫자의 증가 문제는 옐로우스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20세기 초 50만 마리에 불과하던 흰꼬리 사슴은 이제 3,000만 마리에 이르고 있으며 이로 인해 매년 1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교통 사고로 부상당하고 10억 달러가 넘는 재산 피해가 발생한다. 이들의 왕성한 식욕 때문에 생태계가 위협받고 있지만 이제 와 늑대를 전국적으로 풀어놓을 수도 없는 일이기 때문에 당국은 해결책에 고심하고 있다.
시냇물에 사는 피라미와 농어의 관계도 비슷하다. 시냇물을 막고 농어를 제거하면 피라미가 모든 것을 먹어 치워 그 시내는 사막화 된다. 다시 농어를 풀어놓으면 피라미 숫자가 줄어들면서 생태계는 건강을 회복한다.
이런 현상은 자연계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시장 경제를 바탕으로 하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도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시장의 기율’(market discipline)이라는 것이다. 시장은 소비자가 원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만들어내는 생산자와 기업에게는 부와 번영을 가져다 주지만 그렇지 못한 물건을 만들거나 비효율적인 방식을 고집하는 기업은 몰락하게 만든다. 그렇게 문 닫은 회사의 자산은 해체돼 다시 생산적인 사업에 쓰여지게 된다. 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creative destruction)가 그런 것이다.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는 사슴을 물어뜯어 죽이는 늑대와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싸게 만들어 경쟁 회사를 문닫게 만드는 기업은 당하는 입장에서는 악당으로 보일 것이다. 그러나 마차 산업을 망하게 한다고 자동차를 못 만들게 하고 가내 수공업을 멸종시킨다며 공장을 못 짓게 했다면 우리는 아직도 손으로 직물을 짜며 마차를 타고 다니는 시대에 살고 있을 것이다. 자연은 겉으로 잔인해 보이는 것이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기 위한 필요악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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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경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