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술 담배 자동차 그리고 총

2023-03-21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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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가주 몬트레이 팍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터진 지 한 달이 되었다. 지난달 21일 밤, 음력설 전야를 맞아 축하파티에 나섰던 중국계 노년층 11명이 몬트레이 팍 사교댄스홀에서 목숨을 잃었다. 댄스홀 단골이었던 72세의 베트남 태생 중국계 남성이 반자동 소총을 들고 나타나 미친 듯이 쏘아댄 결과이다. 그가 어떤 분노에 사로잡혀 어떤 복수를 하려던 것이었는지, 총격범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니 자세한 내막은 영원히 알 수가 없다.

졸지에 가족친지를 잃은 중국 커뮤니티는 여전히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주민들의 정겨운 나들이 장소였던 댄스홀은 이제 상실과 고통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사람이 자기 수명을 다 하는 것이 복이라는 사실을 나이 들수록 깨닫는다. 고종명(考終命) 즉 제명대로 살다가 편안히 죽음을 맞는 것이다. 수명이 길고(壽), 재산이 넉넉하며(富), 몸과 마음이 건강해서(康寧), 덕을 좋아하며 베풀다가(攸好德) 수명을 다 하고 죽는 것을 오복이라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수명만큼 사는 것이 무에 어려울까 싶지만 그게 쉽지만은 않다. 살면서 스스로 수명을 깎아내기도 하고 남이 수명을 깎아버리기도 한다.


현대인의 고종명을 막는 대표적 요인들은 술, 담배, 자동차. 거기에 미국에서는 하나가 더 추가된다. 바로 총이다. 제명을 다하지 못하게 하는 이런 요인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그 사람, 그 가정, 그 사회의 안녕에 직결된다.

우선 총기로 수명이 끊기는 케이스는 미국에서 연간 4만 여명. 자살과 피살을 포함하는 이 수치는 지난 2021년 4만 8,000명으로 기록을 세웠다. 인구보다 총이 많은 환경에서 분하고 억울하면 총부터 잡고 보는 것이 이 나라의 풍토이다. 그렇다고 총을 모두 없애는 것은 불가능하고, 총기소지의 권리를 막을 수도 없는 일. 그러니 위험을 줄일 방안을 찾는 것이 해법이다. 술 담배 자동차에 적용하는 규제를 총기에도 적용해야 한다.

스스로 제명을 깎다니,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 있을까 싶지만 사실은 대단히 많다. 우선은 술. 적당한 음주는 심신의 긴장을 풀고, 혈액순환을 좋게 하면서 행복감을 주지만 문제는 ‘적당한’ 이다. 하루 한두 잔은 적당하다고 하는 연구도 있고, 단 한잔도 건강에 해롭다는 연구도 있다. 사람에 따라서 ‘적당’의 선이 다를 수 있겠지만, 분명한 사실은 연간 14만명이 알콜로 사망한다는 것. 대개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이다. 우리 몸의 화학공장인 간이 알콜을 분해하고 분해하다 지쳐서 망가진 것이다. 그렇다고 정부가 금주령을 내릴 수는 없으니 가능하면 술을 덜 마시도록 규제를 강화했다. 리커 라이선스 제도, 알콜 주세, 21세 이상으로 구매연령 제한 그리고 음주운전 처벌 강화 등이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피해를 많이 줄이고 있다.

다음은 담배. 흡연자들은 담배연기 내뿜으며 인생의 온갖 비애와 스트레스를 함께 뿜어낸다고 믿는다. 그런 효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지만 대신 폐를 비롯한 장기들이 대가를 치른다. 폐암을 비롯, 흡연으로 인한 사망은 연간 48만명(간접흡연 사망 4만1000명 포함). 총으로 죽는 사람의 10배에 달한다. 그래서 나온 것이 담배광고 제한, 담배세 부과, 포장에 경고문 의무화, 21세 이상으로 구매연령 제한 아울러 금연 캠페인 등이다. 그 결과 한때 멋져 보이던 흡연은 어느새 빛을 잃었다. 1965년 이후 흡연율은 3분이 2가 줄었다.

각종 안전규정을 강화한 덕분에 피해가 줄어든 것은 자동차도 마찬가지. 과거 미국에서는 총보다 자동차사고로 인한 죽음이 더 많았지만 이제는 반대이다. 총에 대한 규제가 너무 약한 탓이다. 미국인들의 고종명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총기규제이다. 자신이나 다른 이들에게 위협을 가할 가능성이 있는 위험분자들의 손에 총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것은 상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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