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ICC체포영장 적시된 푸틴 범죄 ‘현재진행형’… “대놓고 납치”

2023-03-1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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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고아원·학교서 명단 얻어 조직적으로 이주시켜

▶ 대피루트 차단한 채 대피령…구조·의료·입양이라 자부하기도

작년 가을 우크라이나 헤르손에서 러시아가 철수한다는 소문이 돌자 지역 병원 의료진들이 가장 먼저 취한 조치는 신생아들의 진단서를 조작하는 일이었다. 러시아군이 들이닥쳐 '아동 납치극'을 펼칠 것을 대비해 신생아들을 "옮기기 어려울 정도로 위중한 상태"로 꾸민 것이다.

헤르손 지역 전문의 올하 필랴르스카는 이 같은 '위장술'을 통해 신생아 14명을 지켜냈다.

18일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 영장에 적시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아동 불법 이주'는 현 시점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아동 납치는 우크라이나 아동을 러시아에 강제 데려간 뒤 위탁 가정에 맡기고, 궁극적으로 러시아 시민으로 정착시키는 게 목표다.

주로 구조나 의료 처치, 입양 프로그램을 명목으로 삼아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헤르손의 지역 관리들과 목격자 등에 따르면 러시아군은 점령 직후 먼저 현지 친러 지도부와 협력해 병원과 고아원, 학교에 있는 아동들의 명단을 확보한다.

작년 10월 현지 보안 카메라에 러시아군이 한 고아원에 들어가는 장면이 포착됐으며 실제 해당 고아원에서 아동 50명이 납치됐다.

최근에도 우크라이나 남부 전역에서 친러 지역 당국 주도로 '대피령'이 선포되고 있는데, 이는 사실상 강제 이주 계획의 선제 조치로 통한다.

러시아 점령지에서 우크라이나 통제 지역으로 가는 길목이 모두 차단돼 또 다른 러시아 점령지나 러시아 본토로 대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에 옮겨진 아이들은 현지 방송에서 종종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행방을 알기가 힘들다.


러시아 국기 색칠하는 아이
러시아 국기 색칠하는 아이
[EPA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유엔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현재까지 아동 70만명을 포함해 우크라이나인 290만명이 러시아로 이주한 것으로 추산했다.

다만 그중 강제로 이주당한 경우가 어느 정도인지는 파악되지 않고 있으며 부모와 떨어지게 된 아동의 수 또한 정확히 집계되지 않았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아동 2천여명을 보호자 없이 러시아로 이주시켰다고 밝힌 바 있고, 우크라이나는 아동 1만6천명이 이주당했다고 주장했다.

카림 칸 ICC 검사장은 "우리가 확인한 사건에는 최소 수백명의 우크라이나 아동이 고아원과 아동보호시설에서 납치돼 강제로 이주당한 사실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러한 아동 이주 계획은 '인도적 절차'일 뿐이라며 이를 멈출 생각이 없다는 점을 숨기지 않고 있다.

푸틴의 체포 영장에 함께 이름이 적힌 러시아 아동인권 담당 위원 마리야 리보바-벨로바도 대규모 이주 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을 자랑스럽게 밝혀왔을 뿐 아니라, 영장 공개 직후 "이 일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 세계형사사법국 수장으로 일했던 스티븐 랩 전 대사는 "그들은 대놓고 범죄를 저질렀고 자부심을 드러내기까지 했다"고 NYT에 설명했다.

유엔난민기구는 러시아가 1936~1952년 소련 시절에도 최소 300만명을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에 강제 이주시켰다고 추정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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