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동네 산책길에 낯익은 얼굴을 많이 만난다. 팬데믹 이후 개와 함께 걷는 젊은이들이 많이 눈에 띄지만 ‘레귤러’(단골)들은 여전히 노인이다. 그러나 내 또래 단골보다 더 반가운 대상은 어쩌다 마주치는 아기들이다. 동네 자체가 늙어선지 아이들 얼굴을 보는 기회가 가뭄에 콩 나듯 드물다.
산책코스 중간쯤에 이르면 저절로 눈길이 가는 집이 있다. 세살배기 노랑머리 ‘오웬’네 집이다. 엄마가 미는 유모차를 타고 나들이할 때부터 예뻐해줬더니 이젠 걷거나 롤러보드를 타고 다니면서 우리 부부를 만나면 먼저 “하이”하고 손을 흔든다. 엄마가 뿌듯해한다.
요즘 아기 부모들은 뻐길 만하다.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아무나 아기를 낳지 않는다. 미국의 출산율은 10여년째 내리막길이다. 2020년 출생한 아기는 가임연령 여성(15~44세) 1,000명당 55.8명이었다. 2007년의 69.5명에 비해 20%가 줄었다. 한 여성이 평생 낳는 예상 합계출산율도 2007년 2.12명에서 2020년엔 1.64명으로 줄었다. 최소한 2.1명은 낳아야 현재 인구가 유지될 수 있다.
미국에서 2020년 출생한 아기는 모두 360만명 남짓했다. 역대 최저로 전년대비 4% 줄었다. 백인은 줄고 흑인과 히스패닉은 늘어나는 것 같지만 출산율을 보면 그렇지 않다. 백인여성과 흑인여성의 출산율은 똑같이 4%씩 줄었고, 히스패닉 여성은 3% 줄었다. 반면에 원주민인디언 여성은 6%, 한인을 포함한 아시아 여성은 8%나 줄었다. 가뜩이나 소수인종인데 아기까지 가장 적게 생산했다.
미국은 출산율이 인구유지 선을 밑돌아도 크게 걱정하지 않는 기색이다. 이민자 영입이라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속수무책이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았다. 평균적으로 여성 한명이 평생 한명도 낳지 않는다는 의미다. 지난해 태어난 아기는 24만9,000여명으로 10년 새 절반이 줄었다.
결혼 자체가 줄었다. 지난해 총 혼인은 19만2,000건으로 반세기만에 가장 적었다. 바늘구멍 취업, 일과 육아의 병행곤란, 여성 경력단절, 비싼 집값,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젊은이들이 결혼과 출산율 꺼린다. 정부는 2021년까지 16년간 저출산 극복에 380조원을 쏟아 부었다. 하지만 지난해에도 출산율은 세계 꼴찌를 면치 못했다. 서울 출산율은 전국평균 0.78에도 훨씬 뒤지는 0.59명이었다.
한국만이 아니다. OECD 회원국의 평균 출산율도 고작 1.59명이다(그래도 한국보다 2배 높다). 싱가포르와 홍콩이 1.1명으로 꼴찌서 두 번째다. 세계에서 가장 늙은 나라인 일본이 1.4명, 캐나다가 1.5명, 러시아와 독일이 1.6명, 미국, 중국, 영국, 호주가 1.7명이다.
아이들이 줄어 걱정이지만 그와 반비례로 노인들이 증가하는 건 더 큰 문제다. 미국은 2034년까지 65세 이상 노인이 7,700만명으로 늘어나 18세 이하(7,650만명)를 사상 처음으로 앞지르게 된다. 모든 베이비부머 세대가 65세를 넘기는 2030년부터 노인이 전체인구의 21%를 점유하는 ‘초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일본은65세 이상이 전체 인구의 29%로 이미 18년전에 초고령사회가 됐다.
한국도 2년 후 초고령사회가 된다. 작년에 65세 이상 고령자가 927만명으로 전체인구의 18%를 넘었다. 이미 여성은 20.1%로 초고령사회에 골인했다. 최근 서울 광진구 화양초등학교가 문을 닫았다. 학생이 줄어서다. 아이는 점점 귀해지고 노인은 가파르게 늘어난다. 한국의 모든 유치원들이 양로원으로 둔갑할 듯하다.
한국에선 벌써 노인 ‘지공님’(지하철 공짜손님)들이 세금을 축내는 얌체족으로 몰리고 있다. 노인도 살리고 아기도 살리는 건 인륜적 문제인데 미국도, 한국도 별로 관심이 없는 듯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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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여춘 전 시애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