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튀르키예와 인접국 시리아 지역에서 규모 7.8와 7.5의 지진이 잇달아 일어난 후 모처럼 지구촌이 하나가 되고 있다. 대규모 재난에 세계 각국이 앞 다퉈 구조와 복구 지원 의사를 밝히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미국과 러시아, 최근 정찰풍선 격추사건을 놓고 미국과 대립 중인 중국, 수년간 긴장상태에서 관계를 개선 중인 이스라엘, 튀르키예와 앙숙이던 그리스, 최악의 경제난으로 자금난에 쪼들린 레바논도 나섰다.
독일, 일본, 영국, 요르단, 이집트, 인도, 스위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프랑스, 폴란드, 멕시코, 스웨덴 등등 동맹국이든 적대국이든 그동안의 관계를 막론하고 인력, 자금, 장비 등을 급파하고 있다. 한국의 긴급구호대 110명도 현지로 간 첫날 폐허를 헤치고 5명의 목숨을 구했다.
건물 수천 채가 폭삭한 매몰현장에는 피 냄새가 진동하고 사망자 수는 벌써 2만명을 넘어섰고 앞으로 얼마나 늘어날지 예측할 수 없다. 전세계의 안방에서도 영상을 통해 멀쩡히 서있던 건물이 걸어가는 사람 뒤에서 폭삭 주저앉아 먼지로 변하는 것을 보았다.
강진의 피해를 목격한 사람들은 “마치 아마겟돈 같았다”고 표현한다. ‘아마겟돈’은 ‘하르마게돈’의 영어 발음이다. 고대 그리스어 ‘하르마게돈’은 히브리어로 ‘산, 언덕’이란 뜻의 하르와 메기도를 부르는 ‘므깃돈’을 합친 말이다.
메기도는 고대의 성곽 등이 쌓여서 만들어진 언덕으로 기원 전 609년 유다 왕국의 왕 요시아와 이집트의 파라오 네카우 2세 사이의 전투 등 고대에 많은 전투가 있었다고 한다. 메기도는 구약성경에서 열두 차례 등장한다. 요한계시록 16장 16절에는 왕들이 모이는 장소로 하르마게돈이 언급된다. 요한계시록 16장은 마지막 일곱 재앙이 이 땅에 임하는 것을 기록한다. ‘아마겟돈’은 기독교에서 유래한 단어이지만 일반적인 세상의 종말을 말할 때도 쓰인다. 그동안 지구상에 중요한 전쟁이 있을 때마다 아마겟돈의 경고가 있었다. 최초로 원자폭탄이 일본에 투하되면서 아마겟돈은 더욱 구체성을 띠게 되었다. 러시아의 푸틴은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에서 수세에 몰리자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하자 바이든 대통령은 러시아의 핵무기 위협을 ‘아마겟돈’에 비유했었다.
지난 2013년 뉴욕타임스는 ‘규모 7의 지진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32개와 맞먹는 에너지를 갖는다’고 지진의 위력에 대해 설명한 바 있다. 하루 동안에만 14만명이 숨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졌던 핵폭탄 32배 이상이라면, 이번 튀르키예 7.5 강진이 얼마나 강한 위력을 지녔는지 알 수 있다.
세상에 아마겟돈 같은 상황이 닥치면 우리는 은연 중 영웅을 기다린다. 그동안 시대에 따라 영웅의 모습은 달랐다. 화살, 칼, 총의 시대에는 전장에서 적을 많이 죽이고 영토를 넓게 가진 자가 영웅이었다. 이후 ‘람보’ 스타일 영웅, ‘미션 임파서블’ 영웅, 영화 ‘아마겟돈’의 굴착전문가 해리 같은 민간인 영웅이 각광 받았다.
이 시대가 요구하는 영웅은 어떤 사람일까. 튀르키예 지진이 일어나자 선진국, 후진국, 우방국, 적국을 가리지 않고 56개국에서 구조대와 자원봉사자들이 달려왔다. 시리아에 지진이 덮치자 반군 피해지역에 ‘하얀 헬멧’을 쓴 시리아인 민병대가 나타났다. 제빵사, 재단사, 약사, 엔지니어 등 평범한 직업을 가진 자원봉사자들이 수색 및 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구조대와 구조장비를 기다리다 못해 맨손으로 잔해를 파헤치고 조난자를 찾느라 손에 피멍이 든 자, 잠잘 곳, 먹을 것이 없는 이에게 주린 배를 채워주고 따뜻한 모포를 건네준 이, 가까이 있는 이웃을 돌보고 미래의 영웅을 키우고 후원하는 사람, 그래서 지구촌을 하나로 만드는 이들이 오늘의 영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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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임 뉴욕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