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사병집단이 발호할 때…

2023-01-24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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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국가(failed state), 혹은 파탄국가라고 하던가. 정부가 통치능력을 상실해 국가로서 일체성을 유지하기가 힘든 국가를.

실패국가의 징후는 무엇으로 먼저 파악될까. 국가가 ‘폭력의 독점’을 상실했을 때란 것이 일찍이 막스 베버가 내린 진단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정부가 국가와 국민의 안보를 지키기 위한 군사력을 전 국토에 투사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 이것이 실패국가의 특징이다.

이 때 날뛰는 것이 사설무력집단, 혹은 사병(私兵)이다. 국가가 제정한 군제에 편성되어 있지 않고, 개인 혹은 사적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군사 집단이 바로 사병이다.

사병은 중앙정부의 통제력이 약화되고 국가 제도가 문란해지는 시기에 주로 나타난다. 한국 역사에서는 통일신라 말기와 고려 초기, 무신 집권기,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에 사병의 구체적인 양상이 집중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중국역사에서도 이른바 난세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이 사병집단이다. 그 최근의 예는 1912년 청 제국 멸망이후 30여 년 동안 이어진 군벌할거시대다.

‘푸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2년째를 맞아 러시아는 실패국가가 될 조짐이 농후해지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패퇴를 거듭하고 있는 것과 반비례 해 3개의 사병집단이 날 로 세를 더해가고 있는 현상과 관련해 미 의회 전문지 더 힐이 내린 진단이다.

정규군에 편입돼 있지 않다. 법적 스테이터스가 불분명하다. 이 무력집단의 실력자들은 하나 같이 푸틴의 측근이다. 그 때문인지 정부의 재정지원도 받고 있다. 이게 러시아 사병집단의 특징이다.

그들의 세력이 날로 강화되면서 ‘국가의 폭력 독점’상황이 러시아에서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 3개 사병집단 총수의 하나는 람잔 카디로프 체첸 공화국 수장이다. 그가 이끄는 1만2,000여 체첸병력은 기술적으로는 러시아국가방위사령부 소속으로 돼 있다. 그러나 푸틴에서 카디로프로만 명령체계가 이루어진 직계 사병집단이다.

또 다른 하나는 와그너그룹이다. 이 조직의 수장은 일명 푸틴의 요리사로 불리는 예브게니 프리고진이다. 이 와그너그룹은 1만에서 2만에 이르는 정예 용병조직으로 최근에는 4만여 명에 이르는 죄수들을 멋대로 징집, 우크라이나 전선에 투입했다.

세르게이 쇼이구 국방장관이 별동대 격으로 이끌고 있는 ‘패트리엇’이란 무력집단이 세 번째 사병집단이다. 이 집단은 도네츠크지역에 주로 투입돼 와그너그룹과 경쟁을 하며 전투를 벌이고 있다.

이 3개 사병집단과 러시아정부군은 아직까지는 원활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3개 집단 간의 관계도 경쟁관계이긴 하나 폭력적 관계는 아니다.


러시아군의 패퇴가 계속되어 전사자가 ‘20만 고지’를 넘는다. 경제는 계속 악화, 법질서 유지가 어려워진다. 이럴 때 상황은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전개될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카드로프나, 프리고진이나, 쇼이구. 이들 모두 푸틴 옹호에 나서는 게 아니라 등 뒤에서 칼을 꽂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그러니까 스스로 ‘킹(king)’이 되거나 최소한 킹메이커 역할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다.

그런데다가 비러시아계 자치공화국에서 무장봉기라도 발생할 경우 러시아 전역이 화염에 휩쓸릴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는 거다. 과연 그런 사태가 올까.

애틀랜틱 카운슬이 167명의 전문가를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47%가 2033년께면 러시아는 연방해체와 함께 천하대란의 상황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는 예측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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