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찢어지게 가난했던 옛날 촌뜨기 코흘리개였던 나에겐 탄피치기가 최고 아웃도어 놀이였다. 상대방 탄피를 내 탄피로 맞춰 따먹는 ‘다마(구슬)치기’의 변형이다. 6·25 직후였던 당시엔 탄피가 지천으로 흔했다. 물론 그 시절에도 부잣집 아이들은 탄피 아닌 장난감 권총을 가지고 놀았다. 빨간색 화약종이를 ‘장전’하고 방아쇠를 당기면 ‘딱’하고 터지며 화약 냄새를 풍겼다. 그래서‘딱총’으로 불렸다.
부자나라요 카우보이 나라인 미국 아이들은 딱총 아닌 진짜 권총을 가지고 논다. 종이화약이 아닌 실탄이 장전된 권총이다. 열흘 전 인디애나폴리스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탄피치기 할 나이도 못되는 기저귀 찬 4살 남자아기가 권총을 꼬나들고 아장아장 걸어다녀 아파트 주민들이 혼비백산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방에서 낮잠 자고 있던 아기의 전과자 아버지를 총기관리 소홀혐의로 체포했다.
미국에선 이런 사건이 어쩌다 일어나는 해프닝이 아니다.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어린이들이 총기를 우발적으로 격발한 사건이 2,070건이었고, 그로 인한 사망자가 765명에 달했다. 가장 최근인 2021년 집계에서도 그해 8월까지 259건이 발생해 104명이 숨지고 168명이 다쳤다. 2017년엔 사건발생 383건, 사망자 156명으로 역대최악을 기록했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총기사고는 약과다. 지난해 미국에서 총격당해 사망한 사람은 총 2만138명으로 추산됐다. 자살자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 중672명은 다중총격사건(4명 이상 표적)의 희생자였다. 2,700여명의 부상자도 낸 다중총격사건이 지난 한해 648건이나 발생했다.
엊그제 섣달그믐 밤에도 터졌다. LA 한인타운에서 머지않은 몬터레이 파크 중국타운에서 괴한이 반자동소총을 난사해 다운타운 댄스홀에서 새해맞이 축제를 즐기던 10명이 숨지고 10명이 부상당했다. 아시안으로 파악된 범인은 설날 아침 토랜스에서 경찰에 포위돼 버티다가 자기 밴 안에서 자살했다. 몬터레이 파크는 인구 6만여명 중 65%가 아시안 이민자들이다.
LA지역의 다중총격사건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산타클로스로 위장한 괴한이 코비나의 한 가정집에 권총 5자루를 들고 들어가 전 부인 등 9명을 살해한 후 자살했다. 1984년엔 샌이시드로의 맥도널드 식당에서 고객 등 21명이 괴한의 반자동소총 세례를 받고 숨졌다. 2015년 샌버나디노에서 14명, 2018년엔 다우전옥스의 한 식당에서 12명이 희생당했다.
지난해 LA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은 382건이다. 최악이었던 전년의 402건에서 5% 줄어 역대 2위다. 살인무기의 절대다수(74.3%)가 총기였는데 소유주 불명의 ‘유령총(ghost guns)’이 많았다. 스마트 폰처럼 개인번호(PIN)를 입력해야 발사되는 ‘스마트 건’을 만들라는 항변이 거세지는 이유다.
LA에서 지난해 발생한 총기강도 사건은 2,780건이었다. 하루 8건 꼴로 2012년 이후 가장 많다. 경찰에 신고된 전체 강도사건 9,228건 중 30.1%가 권총 등 총기를 들이댄 강도였다. 신체무기인 주먹을 사용한 강도(40.1%)에 이어 두 번째 많다. 칼 등 쇠붙이를 휘두른 강도는 19%였다. 지난해 피살된 LA한인 3명 중 자영업자 2명은 각각 업소에서 강도의 칼에 찔렸고 나머지 한명은 집 앞에서 총격 당했다.
LA만이 아니다. 역시 열흘 전 시애틀에서 3인조 강도가 테리야키 식당업주 김한수(58)씨를 총격 살해하고 달아났다. 시장, 시의원, 카운티 의원이 각각 애도성명을 발표했고 경찰국장이 달려와 범인 체포를 다짐했다. 식당 앞엔 김씨의 명복을 비는 꽃과 촛불과 카드가 빼곡하다. 모금 웹사이 트‘고펀드미’를 통한 부조금이 지난 주말 7만달러를 넘어섰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유족의 슬픔을 달래줄 수는 없다.
<
윤여춘 / 전 시애틀 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