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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양국서 소외된 中교민, 새해엔 희망 있길

2023-01-05 (목) 김광수 서울경제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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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겠습니까? 이게 다 중국에 살아서 그렇죠. 내년(2023년)에는 좀 더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새해를 앞두고 만난 한 재중 교민은 자신이 중국에 사는 게 죄인 같다고 말했다. 수교 직후 중국에 넘어와 30년 가까이 지났지만 갈수록 살기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코로나19 그늘 아래 전 세계가 고통 받은 3년이다. 어느 누구 하나 힘들지 않은 이가 없었지만 그중에도 최악은 중국에서 생활한 사람이다. 재중 교민들이 겪은 것에 비할 바가 못 되지만 개인적으로도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누구보다 강하게 맞았기에 2023년 팬데믹의 종식이 누구보다 기다려진다.


2020년 1월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때문에 예정된 중국 연수를 중도 포기하고 한국으로 쫓기듯 귀국했다. 2022년 12월 특파원 부임을 받아 다시 중국에 올 때까지도 코로나19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비자 발급 과정은 애가 탈 정도로 오래 걸렸고 백신 접종,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 증명 등 까다로운 요구도 모두 거쳤다. 공항 도착과 동시에 격리시설로 보내져 3주간 갇혀 지낸 뒤에야 겨우 중국 생활이 가능했다. 이후에도 1년간 거의 매일 PCR 검사를 받고 제로 코로나의 통제 속에 살아왔다.

재중 교민들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컸다. 한국에 다녀오려면 감옥과 다름없는 시설에서 격리를 해야 했다. 운이 좋으면 괜찮은 호텔에서 지내기도 했지만 2주에서 길게는 두 달 넘게 격리됐던 사람도 있다. 3년간 격리로만 6개월 가까이 보낸 경우도 봤다. 수시로 코를 찌르던 PCR 검사, 한때는 굴욕적인 항문 검사까지 이뤄졌고 제공된 식사도 부실했다. 격리 비용도 모두 자비 부담이었다. 줄어든 비행편에 비용과 시간도 늘어나자 한국행을 포기한 사람이 대다수였다.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해지면서 함께 지내던 가족들을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혼자 남기도 했다. 그렇게 꼬박 3년을 중국에서 외로이 버틴 경우가 허다하다. 어쩔 수 없었다. 주재원·유학생·교민으로 중국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한국인이라고 예외는 없었으니까.

위드 코로나로 전환하면서 희망이 보이나 싶었지만 재중 교민들은 여전히 고통받고 있다. 오랜만에 한국에 가려 했으나 이제는 한국에서 중국발 입국자를 차단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쌓아 올린 ‘방역 장벽’은 무너졌는데 오히려 한국의 장벽이 더 높아졌다. 한국인에게만 예외를 둘 수 없다고 이성적으로는 이해하지만 심정적으로 아쉬움을 떨칠 수가 없다.

특히 지난 3년간 한국 정부로부터 별다른 도움을 받지 못한 점이 교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전임 주중대사는 코로나19 발생 초기 전세기를 띄운 것을 치적처럼 내세우지만 정부 입장에서 그것도 못 했다면 비난을 받아야지 생색낼 일이 아니다. 오히려 코로나19 상황에 우리 교민들이 어떤 피해를 겪고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최근 상황도 심각했다. 당장 베이징만 봐도 교민들이 똘똘 뭉쳐 코로나19를 이겨냈을 뿐 대사관의 역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해열제와 감기약을 못 구해 걱정하던 한국인들을 위해 베이징 한인회 주도로 한국에서 의약품을 공수했다. 기숙사에 갇힌 대학생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도 졸업생 선배들이 약을 구해다 줬다. 감염자를 상담해주던 한국인 의사들은 자신들마저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지만 일손을 놓지 않았다. 박기락 베이징 한인회장을 비롯한 교민들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손사래를 쳤지만 한국인의 정이 없었다면 이겨내기 쉽지 않았을 시기였다.

중국 내 여건이 악화되며 재중 교민들의 수는 갈수록 줄고 있다. 힘들지만 이들은 각자 사정 때문에 중국에 살 수밖에 없다. 중국 표현으로 ‘한국과 중국은 떨어질 수 없는 이웃’이다. 2023년, 코로나19의 그늘에서 벗어나 중국에서 생활하는 모든 한국인에게 희망이 깃들기를 바란다.

<김광수 서울경제 베이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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